<이웃집 좀비>는 유독 눈에 확 들어오는 옴니버스 영화다. 총 여섯 조각의 에피소드로 나뉘어 있고 각 이야기들이 별도의 색을 갖지만, <이웃집 좀비>의 여섯 이야기들은 서로를 보듬는 단단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한 이야기의 끝과 다른 이야기의 처음이 명확하게 이어지고, 이로 인하여 전체 이야기의 틀이 스크린 안에 세워진다.

자연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같은 방향을 향한다. 어떻게 좀비가 대한민국에 등장했고, 어떻게 치유가 되며 그 이후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여섯 가지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영화 자체가 좀비 탄생의 전과 후를 꿰뚫는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보이는 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시작은 '틈 사이'부터다. 피규어를 수집하는 것을 좋아하는 피규어광이 어떻게 좀비로 변하는가에서부터 시작하는 "틈 사이"가 영화의 서막 역할을 한다면, 를 따르는 "도망가자"와 "뼈를 깎는 사랑"은 좀비가 대한민국 사회에 도래한 이후 어떤 혼란을 불러왔는가를 보여 주는 본론 격이다. 그 뒤를 따르는 "백신의 시대"와 "그 이후...미안해요"는?  본격적인 백신의 등장으로 어지러움이 정리되고 뒷수습이 시작되는 시점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이후... 미안해요" 중에서 _ ⓒ Kino Mangosteen

영화의 시놉시스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이웃집 좀비>는 단순히 좀비가 창궐한 세계를 비추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안에 영혼을 심어 두었다. 어머니가 좀비로 변한 것을 바라보며 눈물지으면서도 구석에서 먹이를 마련하기 위해 자기 손가락을 자르는 딸("뼈를 깎는 사랑")이나, 좀비로 변해가는 남자친구를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여자친구의 이야기("도망가자")의 모습은 이를 전적으로 증명한다.

물론 이렇게 심어 놓은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틈 사이"는 좀비 탄생의 서막을 비추었다기에는 약간 얄팍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도망가자"는 관객의 마음을 한 번쯤 잡아두기 충분하지만 그 이상의 공감을 형성하지 못한다. 전체적으로 신파 드라마의 성격도 갖고 있는 영화여서 다소의 낯간지러움도 존재한다.


"백신의 시대" 중에서 _ ⓒ Kino Mangosteen

그러나 "뼈를 깎는 사랑"부터 "그 이후... 미안해요" 까지 이어지는 세 가지 에피소드는 하나하나 나름의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그 이후... 미안해요"는 (흡사 <디스트릭트 9>에서의 외계인들처럼)좀비 바이러스가 치유되고 살아남은 살아남은 좀비 출신(?) 인간들이 살아남는 과정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잘 펼쳐냈고, "뼈를 깎는 사랑"은 다소의 낯간지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딸의 심리를 나름 열심히 전달하고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빛이 난다.

특히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이야기는 "백신의 시대"다. 좀비 백신이 개발되고 이를 둘러싼 인간들의 군상을 다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차분하게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돋보인다. 특히 이성을 가진 마스크 좀비와 클리너의 대결 시퀀스는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충만하여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이웃집 좀비>의 성과는 확고하다. 그것이 썩 훌륭한 성과는 아닐지라도 좀비라는 소재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알고, 그것을 스크린에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를 안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게 이끌어 내려는 욕심이 돋보이니, 이 정도면 한 번쯤 주목해 볼 만한 영화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지 않을까. 당장은 성공적이지 않더라도, 이 주목할 만한 89분짜리 영화가 앞으로 쏟아질 '어떤 한국 장르 영화'의 바탕이 될 것을 믿어 본다.

Rate 7/10
"틈 사이" _ 4/10
"도망가자" _ 5/10
"뼈를 깎는 사랑" _ 7.5/10
"백신의 시대" _ 9/10
"그 이후...미안해요" _ 8.5/10
"폐인킬러" _ 7/10


"폐인 킬러" 중에서 _ ⓒ Kino Mangosteen

* 홍대 시네마 상상마당에서 본 첫 번째 영화. 상상마당 사이트에서 예매하여 봤는데 운 좋게 예매 이벤트에 당첨되어 PIFAN 단편걸작선 DVD 한 장과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를 경품으로 받았다. 의외의 수확이라고 할까.
상영관 바깥 북카페는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상영관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종종 애용할 극장이 될 것 같다. :-)

** 각 포털에 소개되고 있는 이 영화의 캐스트를 보자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아예 캐스트를 따로 정리했다. 한시네마나 네이버 영화란이 그나마 충실하긴 한데 세그먼트 숫자로 표기해 놓아서 보기 불편한 감이 없지 않다.
그래서 잠깐 손을 댔는데 혹여 틀린 점이 있다면 지적을 해 주셔도 좋다. 참고로 캐스트 정보는 한시네마에 올라온 자료 기준.

열어주세요!


  1. 2010/02/23 01:17 [Edit/Del] [Reply]
    Found it by randomly..
    was fun to read World of Warcraft Thing :)
  2. 2010/02/23 11:50 [Edit/Del] [Reply]
    좀비 영화는 좀비 영화인데, 막 무섭거나 한건 아닌거 같네요.
    신파적인 신이 있다는 것도 의외고. 후후.
    좀비하면 전 왜 바이오하자드 같은것만 막 떠오르고 그래요..;
    • 진사야
      2010/02/27 18:45 [Edit/Del]
      약간 신파 코드도 섞여 있고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죠. 이 영화는 인간의 영혼을 입은 좀비영화거든요. 이게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한 티는 나죠.
  3. 2010/02/27 01:30 [Edit/Del] [Reply]
    리뷰 잘봤어요 ㅎ
    저는 <도망가자>, <그이후... 미안해요>를 인상적으로 봤어요~
    블랙코미디의 성격이 강한 <도망가자>의 유머코드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요...
    튀어나온 눈알에 대고 이야기하는 장면 ㅋㅋ
    • 진사야
      2010/02/27 18:46 [Edit/Del]
      '도망가자'의 세트는 참 예뻤던 기억이 납니다. 뒷편들에 비해 포스는 좀 덜했지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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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노>의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 신작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 가 드디어 3월 11일로 한국 개봉 일자를 확정지었습니다. 지금까지 2월 11일 개봉 예정으로 (영문 웹 사이트 기준) 해 놓고 지난 2일 아카데미 후보 발표 시점까지 질질 끌다가 개봉 한 달여를 남겨 두고 정확한 날짜가 나오게 됐지요. 그 동안의 마케팅 등이 좀 많이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마일리지'라는 가제가 붙었던 일 하며...) 그래도 개봉된다니 그 자체로 환영입니다.

회사 대신 회사직원을 해고하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 해고전문가 라이언 빙험(조지 클루니)이 두 여인 알렉스(베라 파미가)와 나탈리(안나 켄드릭)를 만나면서 삶이 변화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주목할 만한 캐스팅과 감독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이름으로 한국에도 기대하고 있는 관객들이 많은 영화에요.
특히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전작 <주노>가 놀랄 정도로 괜찮은 영화였기 때문에 저는 자연히 <인 디 에어>에도 관심을 갖게 됐는데 (물론 알렉스 역의 베라 파미가의 출연은 이 영화의 전체 기대 수치 중 2/3을 차지합니다만) 외신 반응도 정말 괜찮고, 관객 반응도 따스한 편이어서 한결 안심이 되고 있는 편이죠.


우선 포스터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죠. 최근 국내 포스터가 나왔는데,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에 대한 언급을 놓고 말이 많은 상태네요. 그래도 명색이 자신이 만든 두 편의 영화를 오스카 후보에 올린 감독인데 너무 대하는 태도가 박한 것 아니냐. 하는 말이 많습니다. 물론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북미 포스터에도 '<주노> 감독 작품(From the Director of "Juno")이라고 되어 있는데 문제 없는 거 아니냐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북미 지역 같은 경우에는 <주노>가 박스오피스에서 워낙 큰 히트를 쳤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은 (애석하지만) 그게 아니었고.

처음에는 <마일리지>라는 정말 험악한 제목으로 가제가 나와 많은 관객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었죠. 지금은 <인 디 에어>로 교정이 된 상태. 그래도 <업 인 디 에어>라는 제목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이 정도면 불평불만 없이 볼 수 있겠단 생각입니다. 메인카피는 참 괜찮은데 다른 것들의 길이 너무 험악했단 생각이에요. :-/

<인 디 에어>는 잘 알려진 대로, 월터 컨(Walter Kirn - 발음 주의!)의 소설 'Up in the Air'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아직 국내 번역 출간은 되지 않은 책이고, 영화 개봉에 발맞추어 - 다른 원작 소설을 가진 영화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 원작 소설이 번역되어 출간될 거라는 기대도 갖게 됩니다.
(물론 원서는 인터넷서점 등지에서 구할 수 있지요) 과연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릅니다. 다만 빨리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죠. 그러고 보니 국내 번역 출간 계약이 되어 있는 상태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지금 출간 예정인 상태이려나요? 예스24에 있는 원작 소설에 대한 언급을 보니 아래와 같이 되어 있군요.

"라이언 빙햄은 35살의 직장인으로 덴버에 근거를 두고 있는 이직 관련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있다. 그는 온 나라를 비행기로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을 해고하러 다녔다. 그는 일을 위해 이용하는 비행기의 마일리지가 거의 100 만 마일에 이르게 되었고, 그는 이를 달성하려 한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경멸하였지만, 일을 위해 다니는 자신의 출장 여행에서의 문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몇 번만 더 해고하는 일을 하면 100 만 마일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그가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졌던 그만의 꿈이었다. 하지만 100 만 마일에 도달하기 전에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한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현대의 냉혹한 현실과 상황 앞에 뿌리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에 대한 심리적 보상에 대한 관찰을 하고 있다."

<인 디 에어>의 트레일러를 처음으로 딱 봤을 때 생각난 건 신기하게도 <주노>에서 아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부부 바네사(제니퍼 가너)와 마크(제이슨 베이트먼)였어요. 영화 속에 비춰지던 바네사와 마크는 얼핏 보면 친절하고 인생을 흥미롭게 살 것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 속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위태위태함이 스며 있었죠. 아마 <인 디 에어>도 그와 비슷한 선에서 흘러갈 예감이 듭니다. 식상하지 않겠냐고요? 그렇다면 <주노> 때 일찌감치 알아차렸겠지요.

영화의 트리비아가 iMDb 쪽에 공개되어 있고(여기입니다!), 일부 트리비아는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데 몇 가지를 집어 이야기해 보자면 (일부 트리비아는 듀나게시판에 올라가 있는 waytogo님의 언급을 참조하여 작성합니다),

영화 속에서 라이언 빙험에 의해 해고당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실제 해고된 뼈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비연기자들이었다고 합니다. 해당 연기자들을 모집할 광고를 내걸어 참여한 사람들에게 해고된 사람들 역할을 맡겼다 하지요.

극중 알렉스 역의 베라 파미가의 누드 연기는 대역을 썼습니다. 그 이유인 즉슨, <인 디 에어>를 찍을 시점의 베라는 아들 핀(Fynn)을 출산후 채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았을 시점이라 모유가 흐르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 부득이 대역을 쓰게 되었다고. (사실 대역 연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저입니다만, 이번은 열외로 해야겠군요.)

안나 켄드릭이 연기한 나탈리 역에는 엘렌 페이지와 에밀리 블런트가 언급된 적이 있었으며,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은 안나 켄드릭이 출연했던 <로켓 사이언스(Rocket Science, 2007)>를 본 이후 안나 켄드릭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 속 나탈리의 모습을 써 나갔다 합니다. 안나 켄드릭이 캐스팅된 건 당연한 일이었네요 :)

그 외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 많지만 이 정도로. 나머지는 영화를 본 이후에 해도 될 듯 합니다.
어서 3월 11일이 되어 영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지금부터 시사회를 열심히 찾아보게 되겠지요. 일단 세운 목표는 '극장에서 최소 세 번 관람'입니다. 주변 상황이나 사정이 좋으면 그보다 더 볼 수도 있겠고요. 앞에서 세 번이라고 언급했지만 몇 번을 보게 될지는 저도 모릅니다. 끝물을 봐야 알겠죠. 그나저나 자크 갈라피아나키스(<더 행오버>)는 <인 디 에어>에서 어떤 역할로 나오는 건가요. 이것도 생각해 보니 문득 궁금해지네요 :-)

그나저나 이 글을 쓰면서 느끼니, 3월 11일이라니 어찌 기다립니까 ㅜㅜ 생각보다 개봉일이 늦단 느낌이 드네요. (진작에 2월 11일 개봉이었으면 얼마나 좋아. 흥)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베라의 원톱 스틸 하나. 여전히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 주실 거라 믿어요. 그렇죠? :-)

  1. 2010/02/06 22:24 [Edit/Del] [Reply]
    진사야님의 영화에 관련된 글들은 이해하기 힘든 미사여구가 없이
    담백하게 읽을 수가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아요. ^^
    주노라는 영화를 본 적도 없지만..주노도 소개한 이 영화도 매우 보고 싶어요!!
    • 진사야
      2010/02/08 22:12 [Edit/Del]
      헐 그런가요? 전 쓰면서 미사여구를 꽤 넣는다고 생각한 편이었는데, 제이유님 생각은 다르셨군요 :-] 아하하.

      [주노]는 정말 강추 영화에요. 한국에 오면서 좀 반응이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그런 거 상관 없이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블로그에 하면서 특히 청소년 성교육용 영화로 '강추'했던 게 지금도 기억나네요. :-)

      학교에서 틀어 주는 비현실적인 성교육 비디오보다 차라리 [주노]를 보고 토론을 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작년 가을 서울아트시네마의 '영화관 속 작은 학교' 프로그램에 이 영화가 소개되기도(http://cinematheque.seoul.kr/rgboard/view.php?&bbs_id=notice&page=3&doc_num=567) 했었지요. 그 소식을 듣고 (완벽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더라도) 내 생각과 궤를 같이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하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2. 2010/02/06 22:47 [Edit/Del] [Reply]
    저도 여기저기 시사회 기웃거릴려고하는데 ㅋㅋ
    6개 부문중에 몇개를 가져갈까요... 안타깝게도 두개는 좀 멀어져있어서...
    • 진사야
      2010/02/08 22:05 [Edit/Del]
      남우주연상이랑 여우조연상 말씀하시는 거죠? 기실 기술 부문에서 얻어갈 것은 없고, 배우 부문이나 작품 부문에서 도전해 볼만한 영화인데 그마저도 경쟁작들이 만만치 않아 고전이 예상되는 영화이기도 해요. 일단 각본상을 따갔던 [주노]처럼 각색상 정도는 가져갈 확률이 높습니다만 :-)

      그래도 근작 두 편을 연속으로 아카데미에 진출시킨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안목은 참 지금 생각해 봐도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해야겠죠. 차기작이 기대되는 건 당연한 소리겠고요.

      일단 저는 각색상에 한표. 이것만 따 가도 소득은 충분히 얻을 거라 봅니다. 그리고 배우상에는 이상하게 큰 미련이 없네요. 특히 베라의 경우에는. 그저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기쁘지요. 이제야 메인스트림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구나! 하고.
  3. 2010/03/06 00:36 [Edit/Del] [Reply]
    진사야님 인 디 에어 모모에서 특별상영 중인데 미리 안보실건가요?
    암튼 오스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군요.
    인 디 에어는 각색상 하나 받을 거 같아요.
    어제 크레이지 하트 보고 왔는데 남우 주연상은 무조건 제프 브리지스입니다. ㄷㄷㄷㄷㄷㄷ;;;
    • 진사야
      2010/03/06 11:39 [Edit/Del]
      # 안 그래도 오늘자(3시 상영)로 예매했습니다. 사실 목요일에 보고 싶었습니다만 사무실이 있는 역삼동에서 이대로 바로 달려가도 시간을 못 맞추겠더군요. 모모가 정시상영 체계라거나 이런 건 관계없이 전 무조건 영화 보러 갈 꺼면 상영 시간만큼은 맞추자는 주의라서; 그냥 주말로 선회했습니다.
      저도 각색상은 가장 유력하다고 봅니다.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이 각본 분야에서는 정말 축복받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어 보이네요. 그러고 보니 [주노]도 각본상을 가져갔었죠. :-)

      [크레이지 하트]는 저도 보고 싶은 영화인데 먼저 보셨군요. 전 다음주초에나 보게 될 성 싶은데, 어서 보고 싶습니다 ㅜㅜ
  4. 2010/03/10 17:31 [Edit/Del] [Reply]
    설마했는데 역시 대역이었군요. 그래도 베라 파미가의 평상시 몸매와
    가장 비슷한 대역을 쓴 것이라 믿어봅니다. ㅋ
    • 진사야
      2010/03/14 19:32 [Edit/Del]
      # 아하하. 베라도 좀 아쉬워하지 않았을까요? 허나 <오펀:천사의 비밀>에서도 그렇고 몸을 사리지 않는 걸로(후반부 일부 장면을 찍기 위해 출산 후 2주만에 촬영장으로 갔다는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후덜덜;) 저한테 너무 각인되어 있으니 그게 오히려 안타까운 점도 있어서 내심 <인 디 에어>의 더블바디에 대해서 약간 마음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네요.
      아무튼 결론은 무지 좋은 영화였다는 거! 다음주 초에 리뷰를 쓸 텐데 제대로 써질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떻게든 극복하고 써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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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Boy meets Girl) 이야기이며, 흔해 빠진 연애 이야기가 아니다". <썸머와의 500일>에 한 걸음 보다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서는 도입부에서부터 귀에 박힐 만큼 나오는 이 메시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부터 관객들은 알 수 없는 의문과 호기심을 가질 거다. 대놓고 사랑에 빠진 남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 흔해 빠진 연애 이야기가 아니라고 시침을 딱 떼다니, 이 무슨 배짱 아닌 배짱인가. 그런데 더욱 희한한 건, 이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서술이 뒤에 가서는 이해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대체 무엇 때문이냐고?

영화 속 두 남녀 톰과 썸머의 꼬꼬마 어린 시절이 투영되는 오프닝 크레딧을 시작으로 시간 위로 뛰어올라,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의 시간을 일컫는 500일 사이의 전과 후를 콜라주처럼 뒤섞는 마크 웹의 이 기상천외한 로맨틱 코미디는 통속적인 연애 중심의 흐름을 모른 척 한다. 이 영화의 태그라인(Tagline) 중 하나인 'This is not a love story. This is a story about love.' 에서도 드러나듯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전면에 걸고 있지만 그것이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는 이상한 영화. 실질적으로 500일 중 톰과 썸머가 사랑한 시간은 100~200여일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그들의 오만 가지 색채의 관계 앞에 카메라를 내버려 두는 영화. 그것이 <썸머와의 500일>의 세계다.



그리고 이 세계의 중심에는 한 때 건축가의 꿈을 키웠지만 현실에 부닥쳐 연하장 카드의 카피 문구를 쓰는 일을 하는 남자 톰 핸슨(조셉 고든-래빗)이 있다. <썸머와의 500일>은 극이 진행되는 내내 톰의 시선으로 상대 썸머 핀(조이 데샤넬)을 바라보는 모습을 취하지만, 동시에 썸머 역시 톰을 관조하는 모습으로 다가간다(이는 썸머 역을 맡은 조이 데샤넬의 모습이 빚은 결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만나 친해지고, 좋아하는 감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쉽사리 찾기 어려운 모습의 유쾌함을 본다. 썸머와 한 단계 발전한 관계에 이룩했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톰의 군무 장면은 이 유쾌함의 백미라 칭할 만하다.

그러나 그 유쾌함의 이면에는 더욱 잘 짜여진 남녀 사이의 이해관계가 성립한다. 시간이 정신없이 앞뒤로 뒤흔들리는 시간 동안, 톰과 썸머는 다정한 모습을 취하다가도 자존심 문제로 다투고, 서로의 생각에 잠을 설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친한 친구처럼 마주치기도 한다. 무언가 정신 없는 구성이 될 법 하나, 영화 전면에 차고 넘치는 차분한 시선은 이런 위험성을 사전에 소화하고도 남는 결과를 보여 준다. 어린 나이에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듯한 표정으로 톰에게 시니컬한 조언을 아끼지 않던 레이첼(클로에 모레츠)이나, 재미있기도 하지만 우정 어린 시선을 아낌 없이 보여 주는 동료 맥킨지(제프리 아렌드)는 영화 속 주목할 만한 조역이다.



제목에서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는 것처럼, 설령 이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좋은 모습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한다고 한들 슬픔부터 표하는 건 너무 성급한 일이 될 게다. <썸머와의 500일>은 그 슬픔보다 앞서 보다 단단해지는 이들의 모습을 슬쩍 관객 앞에 던져 놓고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 그 '여름(summer)'의 달뜬 기억들은 모두 경험으로 남아 톰의 마음에 아로새겨질 것임을 알기에, 그리고 새로운 이가 찾아들었을 때의 자세를 기억하게 될 것임을 알기에.

<썸머와의 500일>을 본 한 평자는 "커플들은 이 영화 볼 거면 잘 생각하길 바란다. 영화 보고 싸울 확률 75% 이상" 이라고 했지만, 이 영화야말로 커플들에게 보다 잘 어울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 '커플 관람 금지' 딱지를 성급히 붙일 일이 아니라, 오히려 '커플 관람 권장' 을 당당하게 붙여 줘도 된다는 소리다. 특히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고민하는 커플들에게 <썸머와의 500일>은 잘만 살펴보면 여느 기교 중심의 연애 블로그나 책들보다 더 묵직하고 효과적인 생각들, 서로에 대한 대화를 충실하게 나눌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꼭! /Rate 9.5
(2010.01.26 /by @zinsaya)



1) 원래는 번역제인 <500일의 썸머>가 따로 있지만, 이 제목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 의미가 가장 부합하는 <썸머와의 500일>로 대체하여 리뷰를 작성했음을 밝혀둔다. 이런 쉬운 제목이 있음에도 굳이 왜 저 제목을 선택했을지 살짝 의문이 드는 부분.

2) 이 영화를 통해 굳건한 2순위 선호 여배우가 된 조이 데샤넬(Zooey Deschanel). 그녀의 모습을 빌어 탄생한 썸머 핀 캐릭터는 그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영화에 귀중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전까지 <엘프> 속 모습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슬쩍 든다. 아니, 이미 바뀌었다. :-)

3) <썸머와의 500일>의 오프닝 크레딧은 그것만 떼어 놓고 봐도 명백한 '작품'이다. 감독이 뮤직비디오 출신이라서 그런지 음악 (Regina Spektor의 'Us' Remaster) 선택도 탁월하고, 톰과 썸머의 유년 시절을 이분화하여 서글서글 정겨운 모습으로 보여 주는 화면 구성은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상영관에 늦게 들어와 이 오프닝 크레딧을 못 보고 본 내용부터 보는 사람들이 몇 명 있던데, 안 됐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 정도였다. 3월에 열리는 오스카 주제가상 후보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까지 닿았지만 이건 좀 힘들려나.

4) 앞 부분의 재미있는 짤막 메시지에 대한 자막이 있다 없다 말이 좀 분분한데, 일단 내가 충무로 대한극장 1차 시사회에서 본 디지털판은 번역이 안 된 버전이었고 오늘 용산 CGV에서 본 디지털판은 번역이 된 버전이었다. (사실 자막이 나왔을 거란 기대를 안 하고 갔는데 나오길래 깜짝 놀랐다)
극장이나 상영관에 따라 자막의 차이가 있는 듯 하니 완벽한 자막판을 보고 싶다면 대략적인 극장별 자막 상태는 알고 가는 게 좋겠지만, 아직은 정보가 좀 부족한 듯. 이 부분은 본 사람들이 얘기를 많이 해 줬으면 좋겠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데도 도움이 될 테니까.

5) 여담이지만, 이제는 용산 CGV 발매기에서도 영수증을 틱 던져 주는 현실에 절망했다. 이제 믿을 만한 곳은 진정 일산 CGV(웨스턴돔 안)밖에 없단 말인가? 점점 CGV 구형 발매기를 찾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 슬픈 일이다. ㅜㅜ

6) <썸머와의 500일> 북미 개봉 당시 나왔던 리뷰들 중 재미있는 리뷰가 두 개 있다. 북미 지역 웹진 '고든 앤 더 웨일 (Gordon and the Whale)' 에 올라온 '(500) Days of Summer A male perspective - A female perspective' 가 바로 그것. 굳이 해석하자면 '남자가 본 <썸머와의 500일> VS 여자가 본 <썸머와의 500일>' 정도랄까. 남성 평자가 쓴 내용과 여성 평자가 쓴 내용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테고, 둘 다 호의적인 평이지만 남성 평자가 보다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주소는 아래 참조.
http://gordonandthewhale.com/review-500-days-of-summer-james-perspective/
http://gordonandthewhale.com/review-500-days-of-summer-kates-perspective/

  1. 2010/01/26 03:15 [Edit/Del] [Reply]
    글 잘 봤습니다.

    제목은 원제가 가지는 썸머의 중의적인 의미를 살려보고자 번역한게 아닐까 싶어요. :)
    • 진사야
      2010/01/26 03:31 [Edit/Del]
      아. 생각해 보니 그것도 맞는 말 같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딱 보면 잘 이해가 안 가는 제목이라 그건 좀 아쉽네요 : )
  2. 2010/01/26 04:08 [Edit/Del] [Reply]
    제 바보 여친은....'쟤들도 헤어졌으니 우리도 헤어질까?'이딴 헛소리 할 거 같아서 해피엔딩 아닌건 안 봐야겠습니다 -_- ㅋ..

    그런데 CGV에 영수증 정말 마음에 안 들어요....
    서명운동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
    • 진사야
      2010/01/26 04:23 [Edit/Del]
      에이 그래도 쉽게 포기하긴 어려우실 거에요. 그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고, 커플들에게도 좋은 생각을 던져 주는 영화니까요. :-)

      진짜 많이 가는 4대 CGV (부평/용산/강남/일산) 중 구형이 있는 걸 본 건 일산밖에 없네요. 용산이랑 강남은 진작 신형으로 바뀌었고, 부평은 요즘 도통 가 보질 못해서 신형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
      하물며 롯데나 메가박스 같은 곳도 티켓으로 뽑아주는데 왜 CGV만 영수증인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흑.
  3. 2010/01/26 07:09 [Edit/Del] [Reply]
    2순위 선호여배우요?
    1순위는 여전히 베라 파미가인 것인가요?
    골든글로브에서 눈이 완전 팬더같더군요..
    화장법인지, 다크서클인지 암튼 지대였어요. ㅎㅎ
    • 진사야
      2010/01/27 12:58 [Edit/Del]
      최근 시상식을 너무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라고 생각합니다. 공항에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나타난 파파라치 사진을 잠깐 본 적이 있는데, 정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더라고요. 보면서 제가 다 안타깝더랍니다.
      개인적으로 베라가 참여한 최근 시상식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역시 크리틱스 초이스네요. 그 다음은 SAG, 그 다음은 골글... 의상은 골글이 훨씬 나았지만, 그 얼굴의 매력을 백퍼센트로는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어쩝니까. 제 눈에는 여전히 멋진 배우인걸요. [러닝 스케어드]의 테레사가 아직도 눈에 밟히고, [15분]에서의 다프네의 미소를 기억하고, [네버 포에버]에서의 소피가 인상적인 자태로 걸어다니던 모습을 마음에 아직 새기고 있는 것이 놀랍기까지 합니다. 이런 느낌을 (팬질 시작한 지)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게 참 어떻게 보면 신기해요.

      물론 조이 데샤넬도 아름다운 건 마찬가지이구요. 이렇게 멋진 여배우를 둘씩이나 좋아하는 배우 대열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게 기쁘네요. :-)
  4. 2010/01/26 08:21 [Edit/Del] [Reply]
    대부분 예매를 해놓고 자동발권기로 티켓을 출력하기 때문에 아직까지
    '티켓이 바뀌어 서운하다'는 걸 잘 못느끼겠더군요. 얼마 전에 딱 한번
    현매를 했더니 영수증 같은 걸로 주는데 저야 뭐 티켓을 모으지를 않으니
    티켓을 어떤 용지에 주건 무감할 따름입니다.
    • 2010/01/26 09:12 [Edit/Del]
      얼마전에 상암CGV에 갔는데, 이제는 자동발권기도 영수증 티켓으로 나오더군요...
    • 2010/01/26 10:53 [Edit/Del]
      ㅋㅋ 제가 변두리 CGV로만 다니다보니.
    • 진사야
      2010/01/27 12:47 [Edit/Del]
      티켓 모으는 걸 좋아하는 저는 상암도 피해야 할 대상이군요.
      (여기서 다시 한 번 일산이 있어 다행이야라는 생각 하고;;)
      이젠 자동발권기도 믿을 수 없는 건가! 싶은 생각에 쪼금 착잡합니다. :-/

      아쉬운 대로 책상 파티션에 영화입장권을 걸어 놨는데, 역시 영 적응이 안 되네요.
  5. 2010/01/26 09:17 [Edit/Del] [Reply]
    제목을 지은 사람이 '가을'이 나오는 엔딩신에 꽃혀있는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영화볼때 제목이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어느정도 공감이 가더라구요 ㅎ
    '커플관람권장'에 공감합니다 ㅎ 저는 커플들이 꼭 봤으면 좋겠더군요.
    • 2010/01/26 10:55 [Edit/Del]
      저도 엔딩씬에서 영화의 의미가 확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영문 제목도 (500) Days of Summer인 것이, (500) 제외하고 '여름(같은
      사랑)의 날들'이라고 의미의 중의성을 강조했다고 생각됩니다.
    • 진사야
      2010/01/27 12:45 [Edit/Del]
      역시 제 생각이 조금 짧았다 싶어 아차 하는 생각이 드네요 ^_^
      몬스터님, 신어지님 감사!
      곧 한 번 더 볼 때는 원제목의 의미도 같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
  6. 2010/01/26 11:13 [Edit/Del] [Reply]
    1. 아~ 저도 이 영화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나긋나긋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내용과 구성이 정말 마음에 들더라구요.

    2. 저도 영화표를 모으는 재미가 영화관을 찾는 재미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편인데, 영수증이라니요....ㅠ
    • 진사야
      2010/01/27 12:43 [Edit/Del]
      보는 내내 톰과 썸머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정말 좋았어요. 쓸데없는 참견을 하지 않고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는 데 100% 집중하죠. 그래서 더욱 공감이 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7. 2010/01/26 13:00 [Edit/Del] [Reply]
    연애에 대해, 사랑에 대해서 이토록 진지하면서도 공감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커플이 관람을 피해야 한다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상대방과의 인연이 영원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지내는 것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저도 이 영화는 커플이건, 솔로건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강추입니다ㅋㅋ
  8. 2010/01/26 15:07 [Edit/Del] [Reply]
    저도 영화티켓을 모은다기보다 1년치를 한꺼번에 처분하는 스타일인데... 영수증은 왠지 정이 안가드라구요...ㅋㅋ
    전 커플 비추에 공감했었는데... 잘 못 보고 더 관계가 악화될수도 있을 듯...ㅋ
    • 진사야
      2010/01/27 12:41 [Edit/Del]
      그래도 전환의 계기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말씀대로 잘못 보면 문제가 클 수도 있겠지만... ^^
  9. 2010/01/26 18:59 [Edit/Del] [Reply]
    제가 가는 CGV는 다행히 무인발권기를 쓰면 티켓으로 줄 정도의 개념은 남아있습니다.

    커플 관람을 권장하시는 쪽이군요. 저는 좀 다른 의미로 권장합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커플들이 솔로 부대에 편입되기를....
    • 진사야
      2010/01/27 12:40 [Edit/Del]
      그 곳도 아직 구형 발매기를 그대로 쓰고 있는 모양이군요. ^^ 그래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여서 좀 안타깝지만.
      네 맞습니다. 커플이 봐도 좋고 솔로가 봐도 좋은 영화지요. '연애 권하는 영화'라고 어느 기자가 평했던데, 그 말이 탁 와닿았다고 할까요.
  10. 비밀방문자
    2010/01/27 03:00 [Edit/Del]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진사야
      2010/01/27 12:39 [Edit/Del]
      아니 이 좋은 댓글을 왜 비밀글로!...라고 생각했는데 스포일러 우려 때문이군요. ^^
      예전에 한 번 본 기억이 있는 영상이에요. (물론 영화는 보지 않은 상태였고, 그 때는 저런 영상도 찍었었구나 했었죠) 조이 데샤넬의 시드가 참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지금도 나는데, 지금 들어 다시 보니 기분이 새롭습니다.
  11. GoldSoul
    2010/01/27 22:25 [Edit/Del] [Reply]
    제가 볼 때도 오프닝에 자막이 나왔어요. CGV 영수증 티켓 정말 별로죠?
    저도 CGV에서 봤는데, 발매기에서 찾아서 빳빳한 표예요.
    전 티켓 모아두지는 않는데, 거의 대부분 책갈피로 이용해요.
    여자 배우는 전 처음 봤는데, 또 어디에 나왔어요? 너무 예뻐요. 흥! ㅠ.ㅠ
    • 진사야
      2010/01/28 08:45 [Edit/Del]
      가장 자신있게 추천해 드릴 수 있는 영화는 역시 [엘프]입니다. [아이언맨]의 감독이기도 한 존 파브로 감독이 2003년에 찍은 크리스마스용 영화인데 조이 데샤넬이 아주 깜찍한 백화점 직원으로 나와요. 보는 내내 상대역인 윌 페렐이 왜 그리 부럽던지. ㅡ.ㅜ
      그 외에 [예스맨]의 모습도 좋다고 하고(이 영화에서 노래까지 불렀다 하죠), 저는 이 영화를 여지껏 보지 못하고 있네요. 어서어서 접해야 할 텐데 T_T

      차기작으로는 [유어 하이니스]가 현재 후반작업 중이군요. 어서 완성되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

      아! 참고로
      한국어로 된 팬블로그도 있으니(http://zooey.textcube.com) 둘러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12. 2010/02/03 23:54 [Edit/Del] [Reply]
    평이 상당히 좋게 들려와서 어떨지 정말 궁금하더라구요.
    아쉽게도 일본에서는 아직 개봉을 안한건지 이야기가 들리지는 않던데 말이예요.
    나중에라도 꼭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덧_영화제목을...바꿀 때는 정말 이래저래 느낌이 틀려져서 아쉽곤 하지요.^^;
    • 진사야
      2010/02/05 23:25 [Edit/Del]
      일본은 언제 개봉하나요? 전체적으로 해외 개봉이 구조상 좀 늦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어서 제이유님도 보실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십중팔구 못 보시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실지도 몰라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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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러브 (Fair Love, 2009)

Posted at 2010/01/22 12:57// Posted in 영화담론/긴 영화리뷰

경쾌하고 흐뭇한 로맨스

"나이를 먹으면 쉽게 변하질 못해" 라고 남은(이하나)에게 읊조리던 모습만큼이나, <페어 러브>에서 드러나는 형만(안성기)의 초기 자화상은 으레 생각해 볼 법한 나이 지긋한 이의 정체감이 겹겹이 쌓여 있는 그것이다. 각종 디지털카메라와 DSLR이 판 치는 시대에 롤라이플렉스 이안렌즈 카메라와 같은 고풍있는 카메라들을 거느리고, "형이 무슨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인 줄 알아"라는 동료의 푸념 섞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꿋꿋이 하늘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며, 가족에게 신세 지는 것을 꺼려하며 사진 작업실 한 구석에서 카메라를 고치며 살아가는 남자.

이런 형만을 변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하니, 그것이 바로 <페어 러브>의 주요 소재인 자기 나이의 절반밖에 안 되는 (그것도 원수나 다름없는 친구의 딸) 어린 대학생 남은을 만나 지금껏 겪어 보지도 않았던 연애 모험을 시작하는 일이다. 아버지와 고양이를 순식간에 잃은 슬픔에 젖은 남은을 아버지 대신 돌봐 주는 모습에서부터 복잡미묘한 감정을 품게 되기까지. 선뜻 그 조합이 어떨까 마음 속으로 되묻게 만드는데, 여기서 한 가지. 그렇다고 해서 이 연애담이 뭔가 특별할 것이라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남은과 형만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연애담은 오히려 한 쌍(Pair)의 남녀가 서로를 좋아하고 아쉽게 헤어지는 순간에 카메라를 맞추고 있다. 마치 이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는 것처럼.



<페어 러브>의 미덕을 찾자면 그 미덕의 시작점은 단연 바로 이런 영화적 선언이 될 게다. 난데없는 스토커(?)의 습격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기를 곤란해 하는 남은을 위해 택시까지 대동하여 직접 태우러 다니거나, 중고차라도 한 대 얻기 위해 가족과 모종의 협상을 시도(?)하는 형만의 모습을 보며 불편한 마음보다 유쾌한 마음이 제일 먼저 드는 건, 이 사랑이 남들도 다 겪는 그것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페어 러브>는 소재의 자극성을 정공법으로 파헤치는 것보다 소재의 농도를 얼마나 친화적으로 바꾸어 나가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본래 영문 제목인 Fair Love보다 Pair(한 쌍의 남녀) Love가 더 어울리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이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후반부 형만과 사진 작업실 동료들의 위로주 장면. 막 헤어짐 선고를 받은 형만을 여느 때보다 살갑게 대하며 술을 한 잔씩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것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소재의 자극성을 일거에 소거하는 힘이 있다. 각 캐릭터들에게 난처함을 강요하지 않고, 윤리적인 문제를 강요하지 않는 카메라의 모습이 좋다.

며칠 전 본 <썸머와의 500일>이 매우 현실적인 방향의 연애담으로 어느 정도 날카로움을 품고 있었다면, <페어 러브>는 이보다 조금 높은 온도의 연애담인 동시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해지게 만드는 연애담이라 할 만하다. 때로는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가다가도, 어느 순간 사진을 한 장 한 장 펼쳐 보이듯 개별적인 이미지를 꿋꿋이 스크린 안에 각인시킨다 (극중 형만의 조카 회상신에서의 '불꽃놀이' 장면은 그 중 백미로 손꼽힌다). 기묘하면서도 놀라움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다. 그 연애담이 설령 연애 실패담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로 끝난다 할지라도 이 연애담의 흔적은 스크린 안에 온전히 자리잡아 메아리처럼 남는다. 마치 영화의 라스트신에서 울리던 남은의 "우리 다시 시작해요" 라는 메아리처럼. (2010.01.22)

_Rate 8.5/10



*
- 아마 '지붕 뚫고 하이킥' 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할 얼굴이 하나 등장하죠. 바로 형만의 조카가 좋아하는 여자 역으로 등장하는 유인나 양.
- 극중 형만의 사진 작업실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런 공간에 있으면 참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아요. 구석에 박혀 책장에 꽂힌 내셔널 지오그라픽 잡지들도 읽으면 재미날 것 같고.
- 사진 혹은 사진기에 대한 역사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영화에 대해서 보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잠깐 대사로 등장하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 대한 정보는 여기 클릭.

  1. 2010/01/22 20:55 [Edit/Del] [Reply]
    좋게 보셨네요... 다행입니다^^
    전 영화의 감성과 설정 분위기 등등은 다 마음에 들었는데
    흘러가는 과정이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아쉬운 영화였어요.
    • 진사야
      2010/01/25 08:58 [Edit/Del]
      석연치 않은 느낌이란 어떤 느낌이셨을까요? 몬스터님 리뷰를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
      반응이 좀 엇갈리겠다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몰랐네요. 그래도 즐겁게 봤으니 다행이다 싶죠.
  2. 2010/02/03 23:55 [Edit/Del] [Reply]
    이런 느낌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서...매우...=_=기대가 된달까?
    그치만 일본에서 만나기는 어렵겠죠? ^^;;;
    • 진사야
      2010/02/05 23:26 [Edit/Del]
      과연 개봉할까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내수용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고.
      안성기씨 참 멋지게 나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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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gratulations Vera :-)

Posted at 2009/12/17 09:20// Posted in 영화담론/영화 속의 얼굴

바로 어제였죠. 현지 시각으로 12월 15일, 할리우드 외신 기자 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에서 주관하는 6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최종 후보가 발표됐습니다. 전체 후보들은 골든글로브 홈페이지imdb 웹사이트 등지에서 확인이 가능해요.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의 <업 인 디 에어>가 여섯 개 부문으로 최다 노미네이트가 된 가운데 <프레셔스> <허트 로커><나인> <에듀케이션> 등 쟁쟁한 작품들이 곳곳에서 눈에 띕니다. 특히 <나인>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기도 전에 노미네이트 소식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받게 됐네요.

노미네이트 소식은 이 정도로 하고 이 글의 본론으로 바로 넘어갈까요. <업 인 디 에어>에서 알렉스 역으로 출연한 베라 파미가가 이번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로써 골든글로브나 아카데미 영화상 등으로 대표되는 메이저 영화상 후보에 처음으로 그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imdb에 업데이트된 노미네이트 이력을 보니 제가 다 가슴이 짠하더군요. 같은 여우조연상 부문에 <업 인 디 에어>에서 같이 출연한 안나 켄드릭도 같이 후보에 올랐으니, 이번 골든글로브는 정말 보는 재미가 쏠쏠하겠습니다. 드디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나타나는 베라의 모습을 보게 되나요!

후보에는 올랐지만, 사실상 이번 골든글로브의 여우조연상 자리는 어느 멋진 한 배우에게 이미 예약이 되어 있다시피 한 상태에요. <프레셔스>의 모니크(Mo'Nique) 말입니다. 만약 이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는다고 하더라도, 변함 없는 것은 베라가 이번 노미네이트로 인해 배우로서의 큰 인정을 하나 받았다는 사실이 아닐까요? 이것만으로도 수상 그 이상의 가치가 있기에 저는 그녀에게 박수를 아낌 없이 쳐 주고 싶네요.

베라, 진심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노미네이트 축하해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배우로서 남아 멋진 모습 보여 주기를 :-)

* 사실 어제 당장 이 소식을 블로그에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주체 못 하고 캣닢 주머니를 가까이 한 고양이 마냥 감정이 앞선 상태라 미처 바로 올리지 못했습니다.

*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있었던 67회 골든글로브 세실 B.드밀 상(공로상) 수상자인 마틴 스코시즈 감독에 대한 발표를 베라가 했었는한데 말이죠. (관련 기사) 노미네이트 발표 나자마자 이 생각이 났답니다. 덕분에 <디파티드>에 대한 생각도 잠깐이지만 해 봤고. 하하. 한 영화를 느끼며 본다는 건 이런 재미도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관련 글 더 보기
Vera receives her 1st Golden Globe nomination!
  1. 2010/01/13 09:44 [Edit/Del] [Reply]
    베라 파미가, 인상적인 배우죠. <15분>에서 처음 봤었어요.
    <두번째 사랑>도 언젠가 보고 싶네요. ^^
    • 진사야
      2010/01/16 13:04 [Edit/Del]
      두번째 사랑... 이미 한국에 DVD가 나올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고(대체 왜냣!), 다행히 아마존에는 '네버 포에버'라는 원제목을 달고 25달러 좀 안 되는 가격에 북미판이 나와 있어요. 어서 질러야겠습니다 ^^ 만 송료까지 포함하면 40달러 가까이 나올 것 같다는 (스탠더드 배송으로 지르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 그래도 그정도야 별 문제될 게 아니죠. 하하.

      [15분]의 다프네는 정말... 뭐 그런 캐릭터가 다 있나 하며 봤습니다. 따지고 보면 무지 가녀린 존재인데 그게 전혀 거부감 없이 느껴졌죠. 물론 제가 최고로 꼽는 베라의 캐릭터는 [러닝 스케어드]의 테레사입니다만 -ㅂ-)b

      이번 [인 디 에어]도 정말 기대가 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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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 (Moon, 2009)

Posted at 2009/11/22 15:33// Posted in 영화담론/긴 영화리뷰

격리된 현실: 경이로운 세계와의 또 다른 조우

-- 이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나 내용을 읽고 영화를 보셔도 큰 상관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감추기에는 이미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공개된 스틸들부터가 그걸 대놓고 드러내고 있지요. 어떻게 보면 샘 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스포일러일 수도 있겠고...

허허벌판. 누구라도 <더 문>을 보게 된다면 이 네 마디의 단어 하나가 제일 먼저 가슴팍에 꽂히는 것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일견 맞는 얘기다. <더 문>에서 보이는 달 세계의 공간에는 기계의 냄새가 진동하는 크고 작은 기지 두세 개와 그 기지를 지키는 기계 한 덩어리와 인간 한 명만이 존재감을 드러낸 채 꿈틀대고 있을 뿐이니까.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얼핏 화려한 듯 이면에는 독립에의 강한 의지를 보이던 달 세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달 세계를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세계. <더 문>이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세계는 바로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달리 말하면 '격리(quarantine)된 현실'이라 규정할 수 있는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샘 벨(샘 락웰)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다.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로봇 거티(케빈 스페이시:목소리)와 함께 다국적 기업 루나 인더스트리즈에서 만든 달 기지 사랑(SARANG)에서 생활하며 통신위성이 철저히 단절된 달 세계에서 홀로 통신위성을 찾아다니거나 달 세계를 지켜 나가는 일을 하면서 산다. 이 샘 벨이라는 친구에게 있어 달 세계,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지는 우리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최소한의 익숙한 일을 할 수 있는 세계지만, 샘 벨은 끊임없이 자신이 살았을 지구 세계를 그리워하고 (환상 장면의 베드신에서 드러나듯) 아내의 살 냄새를 그리워하고 하나뿐인 딸의 숨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세계는 분명히 격리되어 있고, 그 세계 안에서 샘 벨은 끊임없이 임무가 끝나는 3년 후를 기다린다.


ⓒ Liberty Films UK, Xingu Films /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영화사 구안

어떻게 보면 아주 정적인 달 세계로까지 규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가 정말 재미가 없느냐고? 이 생각이 들 때쯤 <더 문>은 아주 인상적인 트위스트의 숲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샘 벨이 타고 있던 정찰차 하비스터가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나고, 이 사고를 기점으로 또 다른 달 세계의 샘 벨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정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한다. 극 중 샘 벨의 대사 중 하나인 "Rock 'N Roll, 아메리카 만세" 라는 말에서처럼 멈춰 있던 흐름을 송두리째 흔들어(rock) 경이로운 세계로 관객들과 함께 굴러가(roll)는 것이다.

물론 거티의 암묵적 동의를 등에 업고 샘 벨이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 이야기의 흐름이 극히 익숙한 흐름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오히려 경이로운 세계처럼 느껴지는 것은 조금씩 속꺼풀을 벗기 시작하는 세계를 엿보는 재미를 고스란히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앞에서 이야기했던 하비스터 전복 사건 현장에 다시 찾아간 (멀끔한 용모를 갖춘) 샘 벨이 동그란 유리창을 슥슥 문질러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다. 혹시나? 해서 들여다보았는데 역시나 그것, (초라한 행색에 피투성이인) 또 다른 샘 벨이 있다.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있는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 동작, 그 장면이 일종의 전율을 일으킬 소지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거다.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라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고 싶은 의도가 나타난다고 할까나. 그래서 참신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순간 "억!"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두 달 전 이미 공개되어 국내에서도 반향을 몰고 왔던 <디스트릭트 9>과 마찬가지로, <더 문> 역시 다른 세계와의 조우,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을 바탕으로 SF 특유의 재미를 소화하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둘 사이의 차이점을 굳이 찾아 보자면, <디스트릭트 9>이 다소 날카롭고 잔혹하기까지 한 이세계의 활극이었다면 <더 문>은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일까' 라는 질문을 보다 묵직하게 내던지고 그 흐름에 몸을 실은 채 전진해 나가는 영화다. 둘로 쪼개진 샘 벨이 품고 있는 진실에 다다랐을 때 허무하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수긍이 가는 것은, 앞서 조금씩 펼쳐 놓고 있는 꺼풀들이 하나하나 관객에게 설득력을 안겨 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 Liberty Films UK, Xingu Films /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영화사 구안

극단적인 방식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이세계에서 벌어지는 풍경에 경이감을 실어 관객으로 하여금 절로 무릎을 꿇게 하는 것. <더 문>을 통해 던컨 존스 감독이 의도했던 것은 아마도 이것이 아니었을는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의도는 매우 충실하게 이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결과를 단 500만불의 제작비로 만들어 낸 성과가 놀랍다. 그 경이로움이 놀랍다. 그리고... 스크린 안에서 수 없이 펼쳐지던 달 세계가 놀랍다. 그 경이로움을 체험하기 위해서라도, <더 문>은 필시 극장에서 그 실체를 확인해야 함이 옳은 영화다. 장르의 특성만큼이나 극장을 찾을 관객들이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2009.11.22)

★★★★★ (Rate: 10.0)

--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것 하나. 잘 알려진 대로 <더 문>은 지난 42회 시체스 국제 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했으며, 그 중 샘 벨 역을맡은 샘 락웰은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전에도 두 차례 <론 덕스>(1997년) 와 <조슈아>(2007년)라는 영화로 같은 상을 가져간 적이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영광이 되는데, 이 중 한국에 정식 개봉했거나 알려진 영화는 <더 문>이 유일하다. 다른 영화들은 알려지지도 못하고 잊혀지거나, 정식으로 소개가 되지 못한 채 종종 케이블 TV 등에서 무판권이 나돌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더 문>에 정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해 주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아니 품을 수 없다.

-- <디스트릭트 9> 개봉 직전에 나왔던 "<트랜스포머2> 한 편 만들 돈이면 <디스트릭트 9>을 여섯 편 만들 수 있다 (capcold님의 블로그 - 디스트릭트 9 단평에서 발췌)" 라는 우스갯소리를 기억하시는가? 이걸 바꿔서 말해보자. <디스트릭트 9> 한 편 만들 돈으로는 <더 문>을 여섯 편 만들 수 있다. 참 재미있는 세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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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절로 온 몸을 화끈거리게 하는 뜨거운 돌이 하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혹하여 손에 쥐고 싶으나 아무도 손을 대고 있지 못하던 차에, 어떤 사람이 그 돌을 보자마자 무언가를 보여 주겠다며 단숨에 움켜쥐었다고 해두자.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그 사람은 돌을 쥔 채 자신만만하게 외친다. 이것 봐, 내가 이런 돌을 주웠다고! 멋지지? 죽이지?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갈수록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환성 또한 커져간다. 그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여기서 한 가지 설정을 더 끼워넣어 볼까? 이 돌을 움켜쥔 사람은 그 황홀함에 순간 정신을 놓은 나머지, 돌을 쥔 채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굳어버렸다.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린다. 자네, 왜 뜨거운 돌을 아직도 손에 쥐고 있나?

갑자기 왠 허무맹랑한 이야기냐고?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가 바로 위와 같은 이야기라서다. 아마도 이 영화를 놓고 대다수의 관객들이 쏟아낸 반응은 위에서 언급했던 수많은 군중들의 환성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과정, 그러니까 내용이 어떠하든 간에 시원하게 부숴 주면 그만이지.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2012>가 명백한 오락영화의 한 핵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런 생각에 금세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 '시원하게 부숴' 준다. 대단하다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으나 <2012>의 재난 장면들이 하나하나 모두 인상적인데다 절로 온몸이 움츠러든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가 눈 깜빡할 사이 순식간에 주저앉는 지진 시퀀스 하나만 놓고 봐도 이는 충분히 증명된다. 재난의 규모만 놓고 보면 <2012>는 분명 많은 사람 헐떡이게 만들 영화인 거다.


ⓒ Columbia Pictures, Centropolis Entertainment, Farewell Productions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토록 눈도장을 강력하게 찍을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음에도 결론에 다다라서는 되려 허무함이 맴돈다. 너무나 강력한 초중반 재난 장면에 대한 단순한 반사신경 때문일까? 아니. 결정적으로 <2012>에는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 외에 영화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난과 함께 인간들도 등장하고 수많은 동물들도 지나가고 그 외 기타 등등 나올 만한 것들은 거의 나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스케일을 보증해 줄 수 있는 매개체들일 뿐, 문제는 단순히 재난의 흔적을 보여 주는 것 외의 활용을 못 한다는 거다. 아무도 섣불리 손을 뻗지 않는 돌을 잡아챘음에도, 정작 보여 줄 것은 보여 주지 못하고 그저 손에 쥐고 있을 뿐이다.

<2012> 가 거대한 재난의 집합체를 쓸어담은 영화이지만 그 속을 뜯어보면 (관객에게 기본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아주 단순한 만듦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 홍수 등 각종 천재지변이 창궐하여 인류를 위협한다는 단순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스케일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뒷받침할 수 있는 방법론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최소한 이야기의 방향이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있었다면 얼마든지 보완이 됐을 일이다. 그러나 <2012>의 오락가락하는 이야기는 기어코 영화의 발목을 잡고야 만다.


ⓒ Columbia Pictures, Centropolis Entertainment, Farewell Productions

공개 이후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지만, 최소한 내가 본 <2012>는 개인(혹은 가족단위의 무리)의 안위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이 어떻게 재난 상황을 헤치고 드러나는가.에 대한 거대 보고서였다. 수많은 희생들을 애써 외면한 채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수없이 달려 나가는 잭슨 커티스(존 큐잭) 가족을 비롯하여 <2012>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재난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 개인과 가족의 안전을 제일 먼저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초록색 '티켓'으로 대변되는) 일종의 '살아남는 계급' 분류가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누군가는 재난의 상황을 미리 알고 대피를 하거나 살 길을 모색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쓰러지는 세계와 함께 희생당한다.

초중반에 걸쳐 고르게 등장하는 이런 흐름을 잘 이끌어 나갔다면 좋았으련만, 중반부 대통령 토머스 윌슨(대니 글로버)의 희생과 맞물려 후반부 갑작스레 전개되는 인류 화합의 분위기는 극의 흐름을 180도 흐트러트려 놓는다. 아니, 되려 뜬금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해피엔딩을 어떻게든 만들려는 또 하나의 움직임일까? 그러나 상황만 놓고 보면 해피엔딩이 아니라 배드엔딩이 되어도 크게 반발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다. 항간에 떠도는 말대로, "저런 악독한 상황에 놓인 자들은 결코 끝에 가서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은 아직까지 하나의 진리처럼 통하고 있으며, 관객들도 이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올 초 공개된 또 하나의 재난영화 <노잉>과 직접적으로 대비가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노잉>이 한 흐름을 뚝심있게 밀어붙여 다른 생각거리들을 무수히 던져 준 반면, <2012>는 기존에 그럭저럭 이끌어 나가던 이야기마저 뒤집으면서 이도 저도 아닌, 비대한 규모가 기형적으로 크게 돋보이는 오락영화가 되어 버린 셈이다.


ⓒ Columbia Pictures, Centropolis Entertainment, Farewell Productions

결국 <2012>는 눈과 귀가 호강하는 블록버스터임에 분명하지만, 감흥이 단 반나절 간의 가치를 갖는 탓에 되려 심심함과 허무함이 역습하는 영화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행보를 엿보자면 재난의 규모를 보다 돋보이게 하는 영화의 방식을 의도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글쎄다. 아무리 멋진 장면들을 담아 놓았다 한들, 그 장면들이 주는 감흥이 단 반나절만 가는 감흥이라면 그건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2012>의 유일한 성취, 재난 시퀀스에 한 번쯤 혹했음에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관을 빠져나오자마자 안개처럼 흐릿해지는 것은 엄연히 이 '반쪽짜리 감흥'만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모종의 반사신경일 것이다. ★★☆ rate 4.5
(200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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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위안 감독 작 <저녁의 게임> 중에서.
ⓒ 실버스푼, 스타이스트 디지털 랩, 레드곤 시네마토

최위안 감독의 2008년작 <저녁의 게임>을 어제 보았다. 이 영화를 보겠다고 다짐했던 건  '바람만, 불어도, 살겠다' 세 글자씩 한 줄을 차지한 멋들어진 메인카피 때문이었다. 단 한 장의 포스터에 흥미가 돋아 사전정보도 크게 얻어 가지 않고 시사회 장소인 인디스페이스로 향하게 됐는데,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잘 보고 난 뒤 난데없는 소리를 들었다. 영화가 끝난 후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한 관객이 최위안 감독에게 물은 질문 때문이었다. 그 질문 내용이란 대략 이러했다. "인터넷에서 성기노출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는 걸 봤는데, 감독님은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이 영화를 본 사람에게 대략적인 이야기를 다시 들었고, 돌아와서 인터넷을 찾아 보니 가히 가관이다 싶은 내용들이 무성히 돋아나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일이었거니와, 영화 속에 나오는 내용이 논란 글자가 붙을 일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관대한 것일까? 순간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 성기노출이 드러나는 영화들을 떠올려 봤다. 작년에 본 장률 감독의 <중경>부터 시작해 올 연초 본 <더 리더 : 책 읽어 주는 남자>의 초반 장면을 거쳐 <숏버스>의 블라인드 너머로 보이던 그 모습까지.

물론 사람에 따라서 판단하는 것은 다르겠지만, 최소한 예전에 본 영화들을 급속도로 떠올려본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저녁의 게임>에 등장하는 세 차례의 성기노출 장면은 지금까지 비슷한 부류의 영화들에서 보아 온 그 모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였다. 아니, 오히려 너무 노골적인 방향으로 비추지 않기 위해 많은 부분에서 절제한 것이 엿보이는 장면들이다. (클로즈업 장면이 대부분임에도 부담감이나 거부감이 안 드는 건 이것 때문이다) 근데 왠 성기노출 논란이며 무삭제 개봉 얘기가 왜 튀어나올까. 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문제적인 영화가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타블로이드 기자들의 타자기는 불이 났고, 사람들은 아무런 자각 없이 그 타자기의 결과물을 소비한다. 그렇게 '그들만의 논란'은 자꾸만 타블로이드 지면을 차지해 간다. <저녁의 게임>의 성기노출 논란 역시 바로 이 단계를 여지 없이 거쳐 가는 사례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새삼스레 느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본질을 흐리는  '그들만의 논란'을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 역시 분명하다. 영화의 내용이나 질을 떠나서, 이렇게 원초적인 방향으로만 소비되는 것은 한 영화에 대한 예의에서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2009/10/29, zinsayascop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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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ver 와 Forever 사이에 점을 찍어 주고 싶다"1. 한 영화배우가 자기 시나리오의 한 구석에 적어 놓은 이 한 줄의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Never는 절대적인 어감의 부정어이고, Forever는 영원을 약속하는 활짝 핀 긍정의 단어다. 그 구분되는 문자가 무엇이든 상반되는 두 단어를 떼어 놓아도 위치는 남는다. 허면 왜 점일까. 머리를 쥐어짠 결과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그럼에도...' 라는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부여하기 위한 것. 두 단어를 다른 세계에 각기 놓아 둠으로서 별개의 세계를 구축하려 함이 아닐까. 남들은 'Never'라고 하든 뭐 어때, 정도의 제스처라는 결론에 닿자마자 그 의미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시작하기에 앞서 왜 '한 문장을 어떻게 읽을 것이냐'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지금 이야기할 영화 <호우시절>이 딱 바로 이런 영화라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호우시절>은 '그럼에도...' 가 던지는 아름다움이 영화 전면에 빛을 발하는 영화다. 아니,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중간에 한 번 정도 점을 더 찍어도 되겠다 싶다. 바로 for와 ever 사이를 떼어 보자는 거다. for는 누군가를 위한다는 의미요, ever는 언젠가, 일찍이, 이제까지, 언제나 등의 동시다발적 의미다. 그렇게 이 리뷰의 제목은 정해졌다. 결코 '언제나 유지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한' 무언가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유지되고 있다. <호우시절>이 주려고 하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는지.



 유학 시절에 친분을 갖고 있던 한국인 남자 동하(정우성)와 중국인 여자 메이(고원원)가 중국 청두에서 재회한다. 그 몇 일 간이라는 재회의 순간이 올 것임을 하늘도 알았던 것인지, 동하와 메이가 만나는 청두의 두보초당에 무럭무럭 자라난 대나무잎들이 흡사 빗소리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내며 나부낀다. 반가운 손님을 불러온다는 까치 이야기처럼 <호우시절>에서 빗소리(혹은 그 비슷한 소리)는 반가운 사람이 온다는 사실을 알리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이 목소리가 메이(May, 5월)의 싱그러운 모습과 겹쳐지며 생겨나는 <호우시절>의 첫 인상은 한 번쯤 관객의 발걸음과 눈망울을 멈추게 만든다.

 초장부터 두 사람의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며 멜로의 영역으로 바로 돌진할 줄 알았던 <호우시절>은 바로 이 순간, 잠시 쉬어 가는 방법을 택한다. 후반부 몇십 분 동안 작정하고 치고 들어가는 멜로의 영역과 명확히 대비되는 모습을 띠는, 언어유희가 넘실거리는 이 쉬어가는 시간이 주는 의미는 앞에서 말했던 세 단어 중 'ever'를 닮았다. 각자 놓인 상황에 관계 없이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일. 친우를 만났다는 사실 하나에 하던 일까지 잠시 내려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하와 메이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담은 세계는 그래서 재미있다. 가령 동하가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식대를 원래 나간 것보다 많이 적어놓는 내용이나, 하루 더 있다 돌아간다는 사실을 중국 현지 사무소에 따로 알리지 않았다가 한국식당 화장실에서 지사장(김상호)에게 딱 걸리는 장면 등은 절로 미소짓기에 좋은 면모를 갖추었다.



 관광영화라는 포장지 안에 담뿍 담긴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동하와 메이는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러다 서서히 옛정을 되찾아가고,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이렇게 멜로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머리를 드는 순간, <호우시절>은 급속도로 방향을 틀어젖힌다. 쓰촨성 대지진이라는 절대적 사실을 바탕에 깔고서. 영화의 중간쯤 동하와 지사장이 답사하는 지진 현장 모습처럼 생채기는 꾸준히 남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동하와 메이 사이에 절대적인 거부(Never)의 영역을 만들려 든다.

 전쟁의 황폐화된 모습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구멍을 남기는지를 똑똑히 각인시키던 <어톤먼트>의 그 유명한 뒤르케르크 해안 길게찍기 모습처럼 <호우시절>은 역사적인 사실을 멜로의 영역에 포함시켜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보여 주지만, 부정적인(never)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내 영리하게 빠져나온다. 그래서 명백히 초반부의 유연한 분위기와 대조되기에 '역습'쯤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 역습의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지진이 일어났던 현장에 굴삭기가 들어서고 복구가 진행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언젠가는 이 생채기가 만든 사슬에서 자유로워질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엇을 통해서? 바로 서로를 위한(for) 배려와 위안, 응원을 통해서. 그렇게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언제나(ever) 벌어지는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호우시절>이 영화 속에 담아 놓은 알맹이는 이거다. 폐허가 복구되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들과 상대를 위한 마음은 영원함(for+ever=forever)은 언제나 빛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메이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절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누군가 <호우시절>을 놓고 '사랑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판타지'라고 했던가.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호우시절>은 분명 적극적인 판타지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상황에 걸맞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을 덧붙이자. <호우시절>은 이런 말을 들을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 (Rate 9/10)
(2009.10.10 / zinsayascope.com)

각주
  1. 하정우 특집 I AM A ACTOR - Dazed & Confused 한국판, 2009년 6월호 중에서. [본문으로]
  1. 2009/10/10 22:06 [Edit/Del] [Reply]
    안그래도 공짜표가 생겨서 볼려고 하는 영화인데..ㅎㅎ
    후회없는 선택이겠죠?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0 22:15 [Edit/Del]
      까칠이님, 정통 멜로까지는 아닌데 그래도 부담 없이 보실 수는 있을 겁니다. :-)
  2. 2009/10/10 22:27 [Edit/Del] [Reply]
    좋은 영화평입니다.
    노출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3. 2009/10/10 23:15 [Edit/Del] [Reply]
    공짜표가 생겨서 저도 한번 볼까 다른 사람줄까 생각중인데...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1 20:50 [Edit/Del]
      Fallen Angel님, 들리는 이야기로는 여성들에게 더 어필할 듯한 영화라고 하네요. 그래서 유독 끌렸던 건지도? ^^;; 잘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4. 2009/10/11 23:54 [Edit/Del] [Reply]
    영화 참 좋았습니다. 허진호 감독 작품들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처럼 드라마적인 완성도를 뽑아낸다면 남성 관객이라고 해서 멜로 장르를 멀리 할 이유가 없겠죠.

    상영관이 텅 텅 비어있던데 극장가에서는 금방 내려올 것 같아서 좀 안타깝기도 하네요. TV의 막장 드라마에는 그렇게들 열광을 하면서 말입니다. -_-a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뭘까요? ^^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2 22:01 [Edit/Del]
      배트맨님, 극의 흐름은 좀 호오가 갈리겠지만... 저에게는 꽤나 유효했습니다. 전 아마 이 영화가 흥행을 못 하면 정말 슬퍼질 것 같아요. 물론 흥행을 제 생각대로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
  5. 2009/10/12 00:11 [Edit/Del] [Reply]
    그랬나요? 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허진호가 장률 감독의 [중경]을 닮아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였는데, 솔직히 후반부로 갈 수록 힘이 빠지는 듯 해서 개인적으로는 약간 실망이었어요. 언제부턴가 허진호 영화는 전반전과 후반전이 극명히 갈리는 양상을 보이네요.

    둘의 호텔 장면은 [외출]을, 메이가 병원에 입원한 장면은 [행복]을, 마지막 메이가 자전거 타는 장면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켰더랍니다. 쓰촨 지진에 대한 사회성을 가미한 것 외에는 전의 것들을 답습하는 데에 머물고 있는 듯해서 조금 힘 빠졌네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2 22:02 [Edit/Del]
      르네군님, 안 그래도 허진호 감독 전작들을 챙겨 보려던 차였는데 잘 모르겠다 싶으면 르네군님께 함 여쭈어 보면 되겠군요 :-) 확실히 허진호 감독의 전작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 영화가 심심하게 보일 것 같기도 합니다. 들리는 얘기로만 들어 봐도 말이죠 ㅎㅎㅎ
  6. 2009/10/12 11:20 [Edit/Del] [Reply]
    정우성씨 출연한 작품이군요. 갠적으로 정우성씨 참 좋아하는데. 영화 보고 싶군요. ^^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2 22:03 [Edit/Del]
      Deborah님, 시사회에서 여성팬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내기도 했지요.(직접 무대인사를 왔거든요) 확실히 실제로 보니 잘생기긴 잘 생겼습디다. 랄까 제가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 게 좀 아쉽지만요 (제가 가장 낯간지러워하는 사람이 정말 완벽한 타입의 남자라서 -_-)
  7. 2009/10/12 11:30 [Edit/Del] [Reply]
    헉...첫번째사진보고...쥬얼리 김정아인가요? 길 애인..ㅋㅋ
    닮아서 깜짝놀랐네요..으으..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2 22:04 [Edit/Del]
      머니야님, 아 박정아씨~ㅋㅋ 지금 포스터 다시 보니 그 분위기도 있긴 한데 묘하게 다르지요. 극중에 '사천미녀'란 말이 나오는데 그 말이 틀리지 않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
  8. 2009/10/13 14:25 [Edit/Del] [Reply]
    이름이 조금 어렵다 했는데 중국인이었나봅니다.
    영화 본지가 언제인지~~ Orz 혼자 한번 가볼까요~~ ^^;;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4 21:31 [Edit/Del]
      MindEater님, 한자로는 高圓圓이라고 쓰고 가오위안위안이라는 중국식 발음으로도 불립니다. 어떻게 표기할지는 의견이 분분하네요 ㅎㅎ 전 그냥 고원원으로 썼는데, 가오위안위안은 좀 발음하기가 -_-ㅋ
  9. 2009/10/13 16:48 [Edit/Del] [Reply]
    여자친구하고 가면 참 좋을 듯한 영화인데...

    아직 쏠로라서.. 심히 마음이 더 숙연해지는..;;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4 21:34 [Edit/Del]
      Mr.번뜩맨님, 어이쿠 그런 아픈 상황이 ㅜ_ㅜ;; 왠지 동질감이 듭니다. 쿨럭..
  10. 2009/10/13 17:45 [Edit/Del] [Reply]
    요즘 <호우시절>에 대한 글들을 많이 보는데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거 같아요..^^
    이거 직접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네요..
    고원원도 보고싶고.. ㅋ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4 21:36 [Edit/Del]
      반디님, 하긴 그렇겠단 예상은 조금 했네요. 시사회 때도 엄청나게 갈렸거든요. 주변에서는 정우성 영어발음이 이상하니 이런 얘기도 있었고요 ㅎㅎ 전 별 어색한 게 없다 느꼈지만요.
      이야기를 듣자니 [정승필 실종사건]에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음. 좀 난감합니다.
  11. 2009/10/13 21:03 [Edit/Del] [Reply]
    음 아직 전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첫 문장을 보고 이런 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Life is) N(ot) ever, (but Love is) for ever..


    .....뻘짓인가 ㄱ-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4 21:38 [Edit/Del]
      ZeroMania님, 아 역시 제로마니아님 천재라능! 좀 묘하게 방향이 반대로 가지만, 댓글 읽어 보니 그럴 듯도 싶은 생각이 문득 드네요 :)
  12. 2009/10/14 00:13 [Edit/Del] [Reply]
    호우시절이 이웃블로거분들 사이에 인정을 받는군요.저 사실 정우성씨 완전 싫어해서 건너뛰려고 했거든요.ㅜㅠ 편견을 확 접어버리고 한번 봐야겠습니다.허진호감독만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면이 많아 그냥 지나치기엔 아쉽긴했어요.ㅠㅠ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4 21:39 [Edit/Del]
      필그레이님, 아마 멜로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냥 넘어가기 힘들걸요. 정우성은 저도 크게 취향은 아닙니다. 너무 완벽해서 되려 거부감이 조금씩 든다고 해야 할지...-_- (그래서 영화에서 고원원이 더 많이 보였죠) 그래도 이 영화에서는 멋지더군요.
  13. 2009/10/15 16:29 [Edit/Del] [Reply]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비
    그럴때를 알고 준비하는 이가 성공하지 않을까 싶네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5 22:43 [Edit/Del]
      MORO님, 아 역시 모로님 여기서도!! 명언을 하나 남겨 놓으셨군요. 좋~습니다 ㅎㅎ
  14. 2009/10/18 07:40 [Edit/Del] [Reply]
    다음주 주말쯤 보려고 하는데, 그때가지 개봉 하겠죠? :p 워낙에 평이 좋고, 가을은 사랑하기에 좋은 계절이니까 하하.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9 21:42 [Edit/Del]
      딸뿡님, 첫주에 12만인가를 찍었더군요. 이거 영 불안합니다 ㅠㅜ [정승필 실종사건] 같은 영화는 마케팅 잘 받아서 어느 정도 흥행하고, 이 영화는 서포트를 못 받고 -ㅅ-;; 아이러니한 풍경이에요.
  15. 2009/10/19 11:09 [Edit/Del] [Reply]
    마지막 자전거 타는장면 가슴이 애리더군요...
    오랜만에 괜찮은 멜로영화를 만났습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근데 트랙백이 왜 전송이 안될까요 ㅡㅡ;;)
    • OpenID Logo 진사야
      2009/10/19 21:43 [Edit/Del]
      몬스터님, 어라 제대로 달아 주셨는데요? 네 개나 달아 놓으셔서 하나만 남기고 모두 쳐냈습니다. 텍큐가 은근히 트랙백이 좀 불안정하군요 T_T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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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국제영화제 JIFF, 인디스토리, 상상마당

무겁지 않게 즐기는 돈의 향연
 <황금시대>는 제목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돈(money)을 주제로 한 10편의 에피소드가 쉼 없이 돌아가는 옴니버스 영화다. 각 에피소드 속에서 비춰지는 돈은 빳빳한 초록빛 지폐가 되기도 하고, 잔뜩 낡아빠져 어디선가 구심점을 잃고 떠돌기만 할 수도 있는 10원짜리 동전이 되기도 하며, 언젠가 쓰임받기 위하여 꽁꽁 모셔져 있는 은빛 동전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무형적인 존재로 변신하여 시종일관 우리를 압박하고 있기도 하는 돈의 존재를 열심히 따라가는 10편의 이야기. 이들은 일관된 주제 하에 각기 다른 방향의 장르로 뻗어나간다. 뮤직멜로에서부터 이슈드라마까지, 공포특급부터 격정의 청춘영화까지.


<유언 Live> 중에서 | ⓒ 전주국제영화제 JIFF, 인디스토리, 상상마당

 최익환의 <유언 Live>는 돈을 잃고 자살을 시도하려는 두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을 생중계하기로 다짐하고 실천에 들어가는 이야기의 영화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카메라는 한 곳에 결박되어 있고 그 앞에 선 두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므로 한 편의 짧은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며, 진지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자살 시도 장면은 앤디 라일리의 <자살토끼>를 연상시키기에 쓴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남다정의 <담뱃값>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일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일 사이의 격차가 빚는 위선의 그림자를 지독하리만치 따라간다. 일정한 보답을 주고 불법적인 상황에 학생을 내맡기는 여기자(김은주)가 나오고, 이 여기자는 카메라로 그 현장을 찍어 방송으로 내보낸다. 그러나 정작 실제상황이 닥쳤을 때에는? 가차 없이 고개를 돌리는 모습에서 우리는 위선의 섬뜩함을 본다. 아무런 변명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기에 섬뜩함은 더욱 배가 된다.


<동전 모으는 소년> 중에서 | ⓒ 전주국제영화제 JIFF, 인디스토리, 상상마당

 권종관의 <동전 모으는 소년>은 종이 지폐 하나에 배반당한 무수한 동전들의 반란을 담았다. 사용처를 정하지도 않고 무작정 떨어진 동전을 주워 모으는 소년(기파랑). 드디어 그 동전의 사용처를 정하고 설레어하지만, 그 무수한 동전들은 폼이 안 난다는 이유로 녹색 빛 지폐에게 이내 TKO패를 당하고 만다. 이런 불편한 진실이 까발려진 이후 휙 하고 지나가는 라스트신은 제법 흥미로운 반란의 꼴을 갖추고 있다. 내 가치도 들여다 봐 달라. <동전 모으는 소년>이 부르짖는 메시지다.

 이송희일의 <불안>은 주식으로 돈을 날린 남편(박원상)을 바라보는 아내의 모습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영화다. 대화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싶을 정도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대신, 아내의 낯빛 표정이 그 자리를 충실히 메워나간다. 아내 역을 맡은 박미현의 내공이 얼핏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불안>은 온 얼굴에서 표현되는 불안의 아우라가 얼마나 큰 파장을 남길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증명하는 단편이다.


<톱> 중에서 | ⓒ 전주국제영화제 JIFF, 인디스토리, 상상마당

 <담뱃값>이 현실과 얽힌 공포를 그대로 갖다 꺼내 놓았다면, 김은경의 <톱>은 약간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공포를 선물한다. 목적을 밝히지 않고 톱을 사려는 여자(주은)가 등장하고 철물점에서 일하는 남자(유연석)는 그녀에게 톱을 팔아야 한다. 영화는 여자가 왜 톱을 원하고 어디다가 쓰는지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관객들은 톱의 사용처에 대해서 눈치를 어느 정도 챌 테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쓸데없는 이야기나 효과를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극을 잘 이끌어나가며, 오소소소 소름을 돋게 하는 매력이 존재한다.

 양해훈의 <시트콤>은 TV드라마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공간 안에서 아웅다웅 부대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철거민과 관련된 설정이 바깥에 깔리고 복수극의 형태를 끼고 있지만, 이야기는 그저 피식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자꾸 흘러간다. 만약 이 단편을 한 마디로 정의하여 아이러니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극의 속성 때문이리라. 서큐버스(크레딧에서는 악마라고 나온다만) 코스츔을 하고 등장하여 재미있는 인상을 남기는 소유진의 모습이 반갑다.


<신자유청년> 중에서 | ⓒ 전주국제영화제 JIFF, 인디스토리, 상상마당

 채기의 <가장 빨리 달리는 남자>는 노숙자의 일상을 다룬다. <황금시대> 속의 단편들 중 돈의 영향력이 가장 적게 느껴지는 단편이자 유일한 흑백 단편이다. 한 편의 모노드라마를 연상시키는 극의 꼴이 약간 김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런 약점에도 열심히 움직이는 남자(조성하)의 모습으로 인해 힘을 받는다.

 52주 연속 로또 당첨자의 환희의 일면과 나락의 일면을 동시에 보여 주는 윤성호의 <신자유청년>은 (있는 자에게 약하고 없는 자에게 강한)돈의 이중인격을 시종일관 유쾌한 방향으로 보여 준다. 화려한(!) 엑스트라의 향연으로 일찌감치 화제가 되었지만, 이 단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주인공 임경업(임원희)의 행각이 어떤 방식으로 변화되어 가느냐다. 다소 낯선 다큐멘터리 형식의 단편 속에서 임경업의 행각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Penny Lover> 중에서 | ⓒ 전주국제영화제 JIFF, 인디스토리, 상상마당

 김성호의 <Penny Lover>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다른 단편들과 달리 오로지 서정적인 분위기로만 밀고 나가는 단편이다. 얼핏 보면 통속적인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따로 떨어진 섬처럼 유달리 눈에 띈다. 이런 속성이 자못 시선을 집중시키기도 하지만, 남들에게는 천대받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십 원짜리 동전을 통해 추억의 언저리를 건드리는 모습이 흥미를 자아낸다. 동전에 대한 추억이 하나라도 있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으리라.

 김영남의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은 서로가 난처한 상황에 빠진 노동자 미숙(조은지)과 사장(오달수)의 기묘한 관계를 다룬다. 채무 문제에 대한 대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덧 만담이 되어 버리고, 그 뒤로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이어진다. 한 쪽은 돈을 원하고, 다른 한 쪽은 돈을 주지 못하는 상황. 좋든 싫든 한 배를 탄 신세가 된 두 사람의 모습이 김영남 감독의 전작 <보트>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백 개의 못, 사슴의 뿔> 중에서 | ⓒ 전주국제영화제 JIFF, 인디스토리, 상상마당

 전체적으로 돈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허구를 짚는 경향을 띠고 있어 아이디어 부족이라는 지적에서는 자유롭지 못한다. 돈의 다른 일면을 비추기 위한 애초 목표는 꽤 잘 살리고 있는데다 각자의 가는 길이 완곡하여 이런 의심이 어느 정도 가려지기는 하지만, 그 틈바구니 속에서 유일하게 서정성 하나만 가지고 열심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Penny Lover>를 생각해 보면 또 다른 아이디어에 대한 충분한 지원사격 역시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남겨놓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각 단편들 간의 질 편차가 적은 편이고 현대 한국사회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세계관을 흡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체적으로 힘을 빼고 접근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는 관객들에게 분명 이점으로 작용하는 점이다. 무겁게 흘러갈 소지가 있음에도 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돈 맛’을 원 없이 즐겁게 접하고 싶은 관객에게 <황금시대>는 분명 가치 있는 선물이 될 것이다. ★★★☆ (Rate 7.0)
(2009.09.17 / zinsayascop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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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9/24 00:55 [Edit/Del] [Reply]
    표지보고 얼삣 유승호인줄 알았네요.ㅎㅎ
    • OpenID Logo 진사야
      2009/09/24 19:36 [Edit/Del]
      Yasu님, [동전 모으는 소년]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기파랑 군입니다. 귀엽게 생겼죠 :-) 옆에는 [백 개의 못, 사슴의 뿔]에서 사장 역으로 나오는 오달수 씨이구요.
  2. 2009/09/24 17:35 [Edit/Del] [Reply]
    저는 개인적으로 <불안>이 참 좋았습니다.
    박미현씨던가요, 암튼 여배우의 표정이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09/24 19:37 [Edit/Del]
      몬스터님, 아 그 표정. 어우. 살벌했어요. 워낙 강렬해서 다른 건 전혀 안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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