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치 도축장을 연상시키는 어느 방 안으로 묵직한 남자 한 명이 들어섭니다. 남자는 잠시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걸려 있던 고깃덩어리에 칼을 푹 꽂아넣죠. 그 찌르고 찔리는 몇 초의 순간, 주변에는 묵직한 파열음이 사방으로 퍼져 오릅니다. 그리고 그 모양새를 오묘하게 품고 있는 날카로운 빛의 차가움이 관객들을 맞이합니다. 별다른 대사가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몇 분 동안의 이미지는 흡사 ‘미친 형사의 세계에 잘 오셨습니다!’ 라는 말을 스크린 바깥으로 쏟아내는 것 같은 느낌을 전달합니다.
영화 <매드 디텍티브>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영화가 흐르는 90분 동안의 시간으로 설계된 코스 횡단의 첫 테이프를 끊는 출발점과도 같습니다. 동시에 결코 이 코스가 만만한 코스는 아닐 것이라는 암시를 어느 정도 깔아 놓는 전초전의 개념을 동시에 갖지요. 초반부부터 알 수 없는 기묘한 형사의 세계로 인도하는 이 영화는, 90분 내내 영화를 지켜보는 자들을 희롱하는 듯한 이미지들의 집합체를 스크린 안에서 바깥으로, 바깥에서 관객들 앞으로 전달합니다.
영화 속에서 번 형사(유청운 분)가 실행하는 수사 방식이란 실로 괴이합니다. 범인의 행적이 어떠한지에 대해 모든 방법의 ‘엽기적 체험’을 서슴치 않고,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이라고 생각하는) 능력을 지녔어요. 사람들은 그를 ‘미친 형사’ 쯤으로 바라봅니다. ‘저 사람은 미쳤어!’ 라고 말하는 한 여형사의 외침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관객들이 보기에도 이 양반은 그저 평범한 형사 정도로 치부할 사람이 아니죠. 아니나 다를까,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 형사의 직책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후 번 형사에게 호 형사(안지걸 분)라고 불리는 형사가 나타나고 동료 형사가 실종되었고 그 이후 알 수 없는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니 수사에 도움을 달라는 부탁을 해 오죠.
이것이 <매드 디텍티브>가 관객들을 위해 열어 놓은 코스의 기본 얼개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다소 단순한 성격의 범죄 스릴러에 ‘다중인격’ 이라는 소주제가 끼어들어 있습니다. 영화의 기이함은 바로 이 ‘다중인격’ 이라는 소주제로부터 시작해요. 사람의 인격이 있고 그 인격 사이(혹은 안)에 또 다른 인격이 끼어들어 있다는 영화의 기본 설정은 관객들로 하여금 어떤 복잡한 느낌을 유발하게 만듭니다.
기이함은 기이함으로 끝나지 않고 그 속에서 이미지와 결합해 어떤 느낌을 뿜어내죠. <매드 디텍티브>가 이야기하고 있는 혼돈의 개념은 바로 이것입니다. 전체적인 코스가 매우 난해한 방향으로 짜여져 있는 까닭에 관객들에 따라서는 매우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현실이 환상 같고 환상이 현실 같아요. 특히 본격적으로 다중인격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비춰지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이런 느낌이 극대화되어 절정까지 치닫습니다.
그래서 <매드 디텍티브>는 대략 ‘생날것과 절제됨, 이 두 가지의 요소를 교차시킨 혼돈의 결정체’ 정도로 요약 가능합니다. 러닝타임 90분 내내 날것 그대로 팔팔 뛰는 느낌과 고요하게 절제된 느낌이 서로 뒤엉키며 기묘한 효과를 발생시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살아감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에 대한 혼돈으로 한 꺼풀씩 진화됩니다. 어느 순간 상당히 날카롭게 다가앉다가도 어느 순간 침착한 느낌을 유지하기도 해요.
<추격자>가 생 날것의 느낌을 그대로 뿜어내다 못해 바닥에 흘리고 다닌다면, <매드 디텍티브>는 여기에 온건한 이미지로 이루어진 세력을 더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서로가 빚어내는 부조화와 충돌로 이루어지는 세계로 돌아오죠. 보다 보면 다중인격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아닌가 하는 어떤 착각도 듭니다. 이것이 진정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나 아닌가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로 돌아가 그 자리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니 말 다 했죠. 절정부에 등장하는 깨진 거울을 통해 사람들을 비추는 시퀀스는 이 혼돈의 결정체를 제대로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거울 속에 비춰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사람의 인격체 혹은 분열된 자아를 상징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이건 주인공 번 형사의 자아에만 국한되는 점이 아닐 겁니다.
이런 분위기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미지 배경에 싸여진 효과음들입니다. 영화 자체에서 나오는 음악의 빈도수는 높지 않습니다. 대신 효과음(혹은 효과음과 같은 음악)을 과용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절히 활용하고 있어요. 휘파람 소리, 또각또각대는 도마 소리, 일정한 타격의 발걸음, 구슬 굴러가는 듯한 느낌의 소리 등등. 각자의 효과음들은 극의 구성을 돕기 위한 가장 최소한이자 최선의 용도로 사용되고, 이렇게 적절히 구성되어 있는 효과음들은 영화 속 이미지들과 결합하여 보다 이미지들을 살아 숨쉬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아마 이런 부수적인 효과들이 없었다면 <매드 디텍티브>는 그야말로 관객들을 처참히 고문하는 ‘팍팍한’ 작품으로 남았을 겁니다. 어느 정도 생길 수 있는 영화 자체에 대한 반감을 어느 정도 상쇄해 주고 있으니 이보다 더 고맙고 괜찮은 친구가 없습니다.
코스에 대한 이해도만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면 <매드 디텍티브>는 충분히 ‘필견‘ 이라는 딱지를 붙여 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그 가는 길이 다소 고단한 까닭에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스릴러라는 장르를 맛보려 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고통스러운 코스 주행이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이미지들을 감싸 안고 있는 가히 천부적인 감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몰입도도 강렬하지만 무엇보다도 스크린 속 혼돈의 공간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느낌이 우리들 앞에 결코 만만치 않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 진사야 / 2008.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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