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세 차례의 2008년 정리 특집 기고를 했었죠. 그 첫번째로 2008년 개봉작들 중 베스트 10을 뽑았고, 아쉬운 영화와 꼭 보고 싶은 영화를 선정했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포스터를 선정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면 좀 재미가 없습니다. 지난 세 번의 특집 기고가 모두 2008년에 한정된 경우라면, 이번에는 지금까지 본 영화들을 대상으로 삼아 봅시다. 이른바 '여지껏 본 영화들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의 목록. 영화 경험상 20세기 말과 21세기의 작품을 중심으로 삼고 있고, 중간 지점은 건너뛰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들만 골라서 선별했으니 '이 작품이 없네' 와 같은 태클은 삼가해 주시와요. 이 점은 감안하시고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정 기준은 국내 개봉작 및 DVD 출시작. 순위는 없으며, 정렬 순서는 제작연도를 따릅니다. 설명은 두세줄 가량의 단평으로 대신합니다. (글_ 진사야)
1. 천녀유혼 (A Chinese Ghost Story) / 정소동 / 1987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당신의 영혼을 송두리째 쭈욱 뽑아 드립니다. 이 말만큼 <천녀유혼>을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왜 사람들이 왕조현에게 열광하는지는 이 영화를 보면 알게 되리라.
2. 다크맨 (Darkman) / 샘 레이미 / 1990

요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을 보다 보면 무의식중에 이 영화가 오버랩된다. 주인공의 비슷한 처지 때문일까. 허나 다행인 것은 <다크맨>이 <아내의 유혹>보다 훨씬 신사적이고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누가 뭐래도 최고의 다크 히어로 영화로 인정을 받아야 할 작품이자 스크린에서 꼭 다시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영화.
3. 트루먼 쇼 (The Truman Show) / 피터 위어 / 1998

만약 리얼 버라이어티의 골수 마니아를 자처하는 자라면 피해야 할 영화 0순위. 그만큼 붉은 커튼 뒤에 드리운 어둠의 에너지는 가히 섬뜩하다. 문제는 그렇다고 피해도 될 물건이 아닌 게 문제다. 짐 캐리는 이 작품으로 진작에 연기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왜 오스카에서 걷어차 버렸는지 참 이해불가.
4. 인정사정 볼 것 없다 (Nowhere To Hide) / 이명세 / 1999

사실 이야기 자체는 잘 기억이 안 난다. 다만 기억나는 건 그 폭력으로 점철된 에너지가 빚어내는 이미지. 비 오는 모습, 그 높기만 한 계단, 두 마리의 개가 벌이는 다툼... 이런 것들로 빚어진 에너지를 빌미 삼아 끝까지 치고 나가 버리는 영화. 향후 이명세의 영화를 이야기할 때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야기가 빠지지 않을 정도로, 그 파급효과란 꽤 크다.
5.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Buena Vista Social Club) / 빔 벤더스 / 1999

이 영화가 주는 교훈, Music is Revolution. 음악이란 어쩌면 필시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불가한 혁명일지도 모른다. 마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모습을 취하고 희로애락을 읊조리는 그 혁명에 지금이라도 중독되어 보시라.
6. 바벨 (Babel) /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 2006

끝없이 위로 쌓여만 가는 바벨탑처럼 높아만 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 '단절' 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담담하면서도 멋지게 표현한 작품도 드물다. 극중 주요 무대는 모로코와 일본, 멕시코지만 어딘가 우리 나라의 모습과도 살짝 닮아 있는 까닭에 섬뜩함은 더 배가 된다.
7. 두번째 사랑 (Never forever) / 김진아 / 2006

빈약한 스토리를 좀 더 다듬었다면 명실공히 한국 멜로드라마의 한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야기에 대한 강박을 살짝 접는 대신 그 이미지가 길어내는 매력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쌍화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감성적 에너지는 최소한 나를 몇 달 동안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다. 자신의 경험을 소피라는 캐릭터 안에 그대로 들이부어 독보적 캐릭터로 만들어 낸 베라 파미가의 연기가 압권.
8. 원스 (Once) / 존 카니 / 2007

<로큰롤 인생>과 함께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길어올린 (혹은 신화를 만든) 최고의 음악영화. 이 세상 최고의 입소문 영화는 <과속스캔들>도 아니고 <다크 나이트>도 아닌 바로 이 영화, <원스>가 되어야 한다. 음악이 얼마나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는지 몸소 보여 주는 사례.
9. 월-E (Wall-e) / 앤드류 스탠튼 / 2008

많은 사람들이 <월-E>를 이야기할 때 '인간보다 나은 로봇' 을 언급한다. 그만큼 등장하는 두 로봇의 금지된 장난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 그 이상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그 말에 보답하듯, 영화 속 그 모습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기 쉬운 우월감을 비웃으며 꺾어 버린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착한 가면을 쓰고서.
10.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 Lat Den Ratte Komma In) / 토마스 알프레드슨 / 2008

설원의 풍경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적이 있었을까? 그 아릿한 감성과 공포가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빚어내는 공포영화. 단순한 두 어린 친구들의 치정담 정도로 치부하고 봤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이것은, 필시 '공포'의 집합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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