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미라클 - MAGIC HOUR

Posted at 2008/11/16 03:37// Posted in 영화담론/긴 영화리뷰
★★★
2008-11-12 /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 20:00
TEXT_ 진사야


따사로운 햇살 아래, 평범한 목초지였던 곳에 세워진 광대한 규모의 포도원 위로 그 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하나둘 무리지어 지나갑니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인정받지 못하는 처지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무거움은 찾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 하나의 꿈이 자리 잡고 있지요. 그것은 바로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와인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그로 인해 발산되는 열정의 조각들입니다. 그 영광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런 불명확한 미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영광의 순간을 이룩하겠다는 어떤 의지이며 굳건한 신뢰에 기인합니다.

랜달 밀러 감독의 <와인 미라클>은 이른바 ‘파리의 심판(1976)’ 이라는, 실재하는 사건을 밑바탕에 깔고 그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들의 모습을 비추는 작품입니다. 이 ‘파리의 심판‘ 이라는 사건은 전 세계 와인시장의 판도를 바꿔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미국 (그 중에서도 캘리포니아산) 와인의 지위를 그야말로 격상시켜 놓은 사건이죠. 특히 프랑스로 대변되는 유럽 와인의 자존심을 꺾어 놓은 신대륙의 신화로 와인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태양의 도시‘ 캘리포니아의 포도원이 있습니다. 미국 와인의 지위를 높여 놓은 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영화라, 뭔가 상당히 낯간지러운 이야기부터 떠오릅니다. 그리고 자연히 이런 생각이 들겠죠. ’자신들이 가진 역사에 대한 찬양 수준의 이야기가 들어가겠구나!‘ 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 영화는 극중 발효탱크를 청소하는 포도원 인턴 샘 (레이첼 테일러 분) 의 주위로 정신없이 유영하는 물줄기마냥 그 열정 어린 모습으로 구성된 모습을 시종일관 스크린 밖에까지 흘리고 다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자국의 와인 신화 찬양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을 갖추고 있을까요? 최소한 <와인 미라클>을 본 이후 든 생각은 ’그건 아니다’라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애초에 타깃으로 잡고 있는 지점은 어정쩡한 자국의 신화 보여주기가 아니라 극중 등장하는 포도원, 내파밸리라고 부르는 영화 속 배경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죠.

영화 <와인 미라클>은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포도원 경영에 소위 ‘올인’한 자존심 강한 농장주인 짐 (빌 풀먼 분) 과 그의 아들 보 (크리스 파인 분), 보의 동료이자 탁월한 와인 감별 능력을 타고난 구스타보 (프레디 로드리게즈 분)와 그들을 돕는 인턴 샘을 중심으로 하여 내파밸리 속에 담긴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는 적당한 양의 무거움과 적당한 양의 발랄함이 존재합니다. 전자의 무거움은 포도원 경영 그 자체에 대한 무거움과 미국 와인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여과 없이 보여지는 모습에서 엿볼 수 있는 무거움이며, 후자의 가벼움은 포도원과 포도원을 꾸려 나가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우러나오는 그것이죠. 이 두 가지로 이루어진 세계를 통해 관객들은 하나의 ‘성공신화‘ 수준의 이야기를 엿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있는데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자신이 가던 길을 가다가 결국은 인정을 받는다는 이야기. 무언가 뒷이야기가 그려지는 느낌이 들지요? 영화 자체가 실화에 기반하고 있기도 하고, 그 방향성이 명확히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에 대한 신선함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이야기로 승부할 수 있는 영화가 애초부터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와인 미라클>은 꽤 영리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야기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기본적인 스타일을 따르되 그 모습이 어떤지 보여 주는 것에 집중하자는 태도가 영화 전면에 차고 넘칩니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이 영화는 어정쩡하게 자국 신화에 대해서 설교하는 삽질은 피해 가고 있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 내파밸리라는 배경 자체에 대한 모습을 취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자세로 집어넣고 있지요. 무럭무럭 익어 가는 와인의 향을 리듬 삼아 포도원 위에 선 사람들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단계적으로 표출해 나갑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정말 와인의 향이 스크린을 뚫고 관객들 앞에까지 피어오르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어요. 러닝타임 자체가 마법의 시간 같습니다. 눈에 띄는 시각적 혁명은 없지만 그 모습 자체로도 이 영화 속 모습은 꽤 매력적입니다. 영화 오프닝에서 보여 주는 광대한 포도원의 전경만 봐도 그렇죠. 그렇게 아름다운 포도원의 모습은 앞으로도 보기 힘들지 모릅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와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접근성이 꽤 좋은 모양새로 완성되었습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와인 전문 용어들을 설령 다 알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몰입도 자체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효과를 만들어내죠. 보다 심도 있는 와인 영화를 기대하신 분들께는 약간 아쉬운 점이 많겠지만 와인이라는 것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한 대중들에게는 꽤나 먹힐 아이디어입니다. 물론 와인에 대한 용어 지식이 아예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영화를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와인 상식에 대한 약간의 복습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세세한 지식을 요구하지는 않고 와인의 품종이 어떤 것이 있는지만 어느 정도 알아 두면 최소한 <와인 미라클> 내에 등장하는 생소한 용어들에 대해 막히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이 단계를 건너뛰어 버린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는 내내 ‘저건 무슨 말이야?’ 라는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접근성 자체는 무난하지만 보다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약간 머리를 써야 되는 작품입니다. 그 내용이 어떠하든 본질은 ‘와인영화‘ 라는 특성 자체에 있기 때문이죠.

http://www.zinsayascope.com/trackback/7

댓글을 남겨주세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