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만한 웹사이트에는 다 공개되어 있긴 하지만, 여하튼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을 먼저 알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건너뛰시길.



Prologue - 어둠 속 남자를 만나는 짧은 시간
처음에는 그냥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습니다. 그 1시간 30분이라는 시간을 위해 스크린 앞이라는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네모난 화면을 앞에 두고 푹신한 자리에 앉아 감상에 젖는 모습을 상상했고, 그것이 부디 현실화되기를 바라마지 않았지요. 하지만 이런 상상은 단 몇 번 만에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이름은 비교적 알려져 있지만 정작 DVD 상영관 등에서는 소환이 어렵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확인했던 겁니다.

만약 DVD가 시중에 깔려 있다면 좌절감이 크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이것마저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죠. 이대로 계획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 한 줄기의 빛이 찾아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DVD 중고 사이트에 나와 있다는 소식이었죠. 브라보! 이거야! 하는 시간이 지난 이후 지금, 제 곁에는 찌든 마음을 다독여 주는 친구 한 명이 새로 추가되었으며, 샘 레이미의 1990년작 <다크맨>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자, 마음먹고 질렀으니 이제부터 그 다음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 친구가 저에게 묻습니다. ‘어이, 이제 날 어떻게 소환할 거야?’.

모두가 퇴근하고 텅 비어 있는 불 꺼진 사무실 안. 파티션으로 구획된 책상들 사이에 한 줄기의 빛이 날아들었습니다. 마치 공부성 감독의 단편 <불타는 김 대리의 밤>에서 사무실에서 밤을 보내는 김 대리의 모습처럼, 텅 빈 사무실 안에서 모니터의 불을 밝히고 나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1시간 30분을 준비했습니다. 컴퓨터에 DVD 재생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책상에 있던 컴퓨터용 스피커를 연결해 책상 왼쪽과 오른쪽에 하나씩 가장 잘 들리는 위치에 놓았습니다.

물론 영화를 감상하는 데 있어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못 되지만 그것이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았지요. 단지 ‘어둠 속의 남자’ 그 자체를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제 자신 앞에 소환하여 받아들일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마냥 기쁘고 설레기만 했을 뿐입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저는 기꺼이 돌아가는 화면 안에 몸을 내던졌습니다. 부디 이 선택이 틀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코드 #1 - 온 몸으로 느끼는 전율
영화 <다크맨>은 불의의 사고로 육체가 일그러지는 운명을 타고 만 페이튼 웨스트레이크 (리암 니슨 분) 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극의 초반에는 어떻게 이 자가 얼굴이 일그러져 버렸는가에 대한 것과 그 뒷배경에 대해서, 중반부부터는 자신을 일그러뜨린 자들에 대한 복수를 어떻게 진행해 나가는지에 대해서 풀어 나가죠.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연인인 줄리 (프랜시스 맥도먼드 분) 와 그녀가 조사를 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자의 뇌물 공여와 관련된 각종 인물들이 엉켜들죠. 영화의 ‘공공의 적(임과 동시에 영화 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역할을 하는 부동산 개발업자 스트랙 (콜린 프리엘스 분) 와 그의 하수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영화 자체는 기술적으로 특별히 눈에 띄게 돋보이는 흔적이 많지 않습니다. 페이튼이 다크맨으로 변모하는 과정이 꽤 강렬하게 와 닿기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스토리상에서의 놀라움일 뿐이고 스토리 바깥의 면만 보고 이야기하자면 최소한 지금 시점에서는 그다지 놀랍게 와 닿지는 않아요. 특히나 지금처럼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이 발달된 시기에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매우 놀라운 경지를 만들어 내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결과에는 무슨 요소가 위치하고 있을까요? 바로 러닝타임 95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감각이 전율하는’ 느낌이 바로 그것입니다. 온 몸의 신경이 하나하나 모두 반응하고 뭉쳐 만들어지는 무언의 감정이 95분 동안의 시간을 지배하는 기이한 특성을 취합니다. 너무나 강렬하게 와 닿기에 약간의 기술적인 미약함 정도는 충분히 무시하고도 남아요.

다크맨이 자신의 특기인 인공 피부 연구 능력을 바탕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자신을 변모시킨 자들에 대한 복수를 시작할 때 이 느낌은 가히 최고조로 치닫습니다. 그 느낌상의 측면만으로도 보는 자들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하며, 주류에 어느 정도 편승하지 않고도 여느 대중영화에 뒤지지 않는 오락적 경지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지요. 개인적으로 <다크맨>을 접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점이 바로 이 점이었지요. ‘고르기는 했지만 이게 과연 내 입맛에 맞을까?’ 하는 걱정이 계속 들었는데 영화를 보는 순간 이 가장 불안했던 점은 너무나 쉽게 무마되었습니다. 뚜껑을 열어 보니 저 먼 안드로메다 세계 (혹은 마니아들만의 세계) 에서만 도는 이야기가 아니었단 말이죠. 이미 이것만으로도 영화 <다크맨>은 충분히 봐 줄 자격이 있는 영화로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코드 #2 - 우리 내면의 트라우마 혹은 비극
< 다크맨>이 놀라울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인간의 내면에 얽힌 비극을 그대로 끌어내어 매우 잘 엮어내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극중 다크맨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애태우고 안타까워하며 슬퍼하죠.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과 육체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연인에 대한 상념 등이 묶여 이 수많은 감정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려 500시간이 가뿐히 넘어가는 시간을 할애하여 만든 자기 자신의 복제 피부를 쓰고 연인인 줄리와 다시 만나지만 어디까지나 불과 99분이라는 ‘초단기 한정’ 데이트 시간이 지나면 그는 어디론가 사라져야 합니다. 아직 완전체가 아닌 까닭에 임계점인 99분이 지나면 그의 가짜 피부는 예외 없이 녹아내리기 때문이지요.

여기에는 줄리가 자신의 ‘가면 속 모습’을 아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대적 사실에 대한 슬픔이 같이 버무려져 있습니다. 마음은 계속 나아가는데 그 마음을 돌리는 동력원이 되어야 할 몸은 그대로 정체되어 있으니 아주 미칠 지경까지 가죠. 영화는 페이튼이 처한 가장 극단적인 상황을 통해서 인간들이 처하게 되는 ‘이성이 지배할 수 있는 영역 바깥 세계의 상황‘ 에 대해서 다소 냉정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결코 완벽한 매개체는 아니며 기본적으로 이성 바깥 세계의 압제 하에서는 얼마든지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상황에 대한 이미지화를 통해서 보여 주죠. 그것이 굳이 영화 속의 모습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게 된 상황이든 아니든 간에 말입니다.

영 화 속 비극은 우리들 개인의 트라우마와도 닿아 있습니다. 후반부 건설현장에서 벌어지는 다크맨과 스트랙의 대결이 바로 이 특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예지요. 극중 스트랙은 다크맨의 내면과 외피를 잠식한 상처를 끄집어내 의지를 무력화시키려 합니다. 가장 비열한 특징을 지닌 악당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개인의 비극이 어떻게 트라우마를 생성하고 그것이 개인 자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 표현 가능한 최대의 거친 방법을 통해 까발립니다. 이 점만큼은 결코 남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트라우마는 엄연히 우리들 개인의 일상과도 많은 면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죠. 살아가면서 상처를 안 받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치면 말이죠. 이것이 강한가 약한가, 의학상으로 트라우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겠지요.

결말에서 다크맨은 (자신의 원한을 해소하기 위한) 악당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어둠의 남자가 되기를 자청하며 길을 떠나죠. 어찌 보면 슬프면서도 납득이 가능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열려 있습니다. 이야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영화 자체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결말을 택한 셈입니다. 일부 어정쩡한 엔딩들보다 백 배 나은 결말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겠죠. 결국 그는 개인의 트라우마를 해소할 다른 길을 찾으려 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위해서 자신의 본래 모습을 포기하는 극단의 상황을 거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의 행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Epilogue - 난 아무것도 아니야
영화가 끝나고 몇 가지를 정리한 후 사무실을 나와 지하철로 가는 길을 걸으며 문득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다크맨은 저 먼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죠. 95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결코 내가 헛짓은 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어둠 속 남자를 만나는 그 시간 동안 느낀’ 무언가의 두려움과 공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영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에서야 깨달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우리들 안에도 다크맨의 일부가 숨어 있으며 이것이 상처를 받게 되면 마음을 비집고 나오는 것은 아닐까? 라고요. 그렇습니다. 다크맨은 결코 페이튼 웨스트레이크라는 사람의 몸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마음속에 하나씩은 자리잡고 있는 아주 어두운 빛의 매개체라는 것을요. 그렇기에 다크맨은 마지막에 나오는 나레이션 속 대사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너무나도 완벽히 말이죠.


“어이, 나랑 함께한 시간 어땠어?”
“아주 좋더군. 아주 친절했어. 근데... 그렇다고 내 마음 속 ‘그것’까지 끄집어 낼 필요까지 있었을까?”
“큭큭큭. 당연한 것 아냐? 너도 똑같은 인간이잖아.”
“시끄러워. 이제 10년도 다 되어 가는 일이라 잊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단 말이야.
거리를 걷는데 사람들이 비웃으면 나 때문에 그런 건 줄 아는 건 여전하고 말이지.”
“어이 이봐, 왜 그렇게 심각해? 너만 그런 상처 안고 있는 게 아니라구. 다른 사람들은 마냥 행복한 줄 알아?
마음을 펴! 악당이 되라구. 그리고 세상을 자신있게 바라봐. 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
“...과연 그럴까?”
“당연하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니까?”


ⓒ 진사야 / 2008.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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