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구>의 도입부. 어떤 북극곰 가족이 등장합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북극의 살얼음을 박차고 나온 이들은 먹이를 찾기 위해 아래쪽에 있는 ‘사냥터’ 까지 내려가려고 합니다. 아이들 걷는 연습을 시키고,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만 찾으러 나가면 되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온이 오르면서 그들이 이동할 때 필요한 얼음들이 너무 빨리 녹아 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사냥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 뿐이고, 이 시기는 바로 북극곰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가 됩니다. 때문에 그들은 제대로 이동할 수 없다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저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죠.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환경이 조성되었을까요? 그것은 굳이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우리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로 우리들 스스로 즉, 인간들과 관련된 문제로 이어지지요.

<지구>는 영화 속 무수하게 등장하는 동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자연, 그리고 그 자연을 둘러싼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동시에 지구 온난화에 대한 매우 진중한 메시지를 함유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구에 대한 딱딱한 다큐멘터리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영화는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영화 전면에 다루고 있지는 않아요. 실질적으로 영화에서 온난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두세 장면과, 맨 마지막에 텍스트로 흘러가는 1분가량 되는 영상이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자연 속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제목을 <동물의 신비> 등으로 바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요.

그런데 왜 굳이 다 놔두고 <지구>라는 제목을 택하게 되었을까요? 이는 영화가 그 모습 속에 함유하고 있는 메시지와도 큰 연관성이 있습니다. 눈에 띄는 파격적 메시지는 없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어떻게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 인간과 연관 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물론 조금 더 자주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인간들에게 각성의 기회를 직관적으로 줄 수도 있었겠지만 <지구>는 이런 방식에서 벗어났습니다. 가장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동물들과 자연의 모습’ 을 배치하고 ‘이거 뭔가 이상한데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 놓습니다. 답은 우리 스스로 쉽게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바로 ‘지구가 점점 더워지고 있으며 이것은 이 세상 속에 실재하는 수많은 동물들에게 하나의 재앙으로 작용하게 된다.’ 라는 것이죠. 굳이 나레이션을 빌려 이야기하지 않아도 말이에요.

이런 날카로운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 외적으로도 <지구>는 매우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영화는 북극곰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북극부터 시작해 적도를 지나 남극까지 파고 들어가며 그 공간 안에 있는 다양한 동물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나오는 동물들도 마치 각양각색이죠. 북극곰, 혹등고래, 펭귄, 코끼리, 각종 새들, 표범, 양, 사자 등등. 그리고 그들은 살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 깊숙이 요동치는 울림을 만들어 냅니다. 마치 자연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교향곡 한 편을 감상하는 것과 같아요. 살아남기 위해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가 하면 천적의 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기도 하고, 온 마음을 다해 이성에게 구애를 하려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머나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등등. 모습도 다르고 그들이 취하는 행동 또한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모습을 띱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동물들에 대한 단순 나열형 이야기가 아닌 그 이야기들을 그러모아 하나의 교향곡을 듣는 것 같은 생생한 모습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매력 요소 중 하나입니다. 빠르게 흘러가야 할 지점과 느리게 흘러가야 할 지점, 말랑말랑하게 흘러가야 할 지점과 무겁게 흘러가야 할 지점을 잘 짚어 내었습니다. 이런 지점들이 하나로 묶여 <지구>만의 가슴 뛰는 리듬을 지닌 결과물로 나왔습니다. 물론 내면의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외적인 모습으로도 이 영화를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흔히 품게 되는 지루할 것이라는 편견을 보기 좋게 상쇄해 버리거든요.

영화는 도입부에서 보여 주었던 북극곰의 모습을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보여 주며 95분간의 지구 여정을 끝맺으려 합니다. 그 사이에 북극의 얼음은 거의 녹아 버렸고, 그 위를 북극곰 아빠가 힘겹게 건너는 모습이 비춰집니다. 지구를 한 바퀴 뺑 돌고 온 다음 다시 돌아보니 이전에 봤던 모습에서 훨씬 달라진 모습. 이 장면에서 우리는 너무나 빠른 시간 안에 동물들이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사이의 시간은 영화의 러닝 타임인 95분이 될 수도 있고 이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겠죠.

이런 생각에까지 도달하게 되면 인간이 해야 할 역할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그 열쇠는 바로 우리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영화의 마지막 텍스트 영상 장면을 보면서 잘 생각해 보시길. 그것으로도 모자라다면 <지구>의 극장판 전단지를 부여잡고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알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전단지에 우리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지구를 사랑하는 법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 동물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은, 어쩌면 우리들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그것인지도 모릅니다.

ⓒ 진사야 / 200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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