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쾌하고 흐뭇한 로맨스
"나이를 먹으면 쉽게 변하질 못해" 라고 남은(이하나)에게 읊조리던 모습만큼이나, <페어 러브>에서 드러나는 형만(안성기)의 초기 자화상은 으레 생각해 볼 법한 나이 지긋한 이의 정체감이 겹겹이 쌓여 있는 그것이다. 각종 디지털카메라와 DSLR이 판 치는 시대에 롤라이플렉스 이안렌즈 카메라와 같은 고풍있는 카메라들을 거느리고, "형이 무슨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인 줄 알아"라는 동료의 푸념 섞인 소리를 들으면서도 꿋꿋이 하늘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며, 가족에게 신세 지는 것을 꺼려하며 사진 작업실 한 구석에서 카메라를 고치며 살아가는 남자.이런 형만을 변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하니, 그것이 바로 <페어 러브>의 주요 소재인 자기 나이의 절반밖에 안 되는 (그것도 원수나 다름없는 친구의 딸) 어린 대학생 남은을 만나 지금껏 겪어 보지도 않았던 연애 모험을 시작하는 일이다. 아버지와 고양이를 순식간에 잃은 슬픔에 젖은 남은을 아버지 대신 돌봐 주는 모습에서부터 복잡미묘한 감정을 품게 되기까지. 선뜻 그 조합이 어떨까 마음 속으로 되묻게 만드는데, 여기서 한 가지. 그렇다고 해서 이 연애담이 뭔가 특별할 것이라 기대하는 건 금물이다. 남은과 형만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연애담은 오히려 한 쌍(Pair)의 남녀가 서로를 좋아하고 아쉽게 헤어지는 순간에 카메라를 맞추고 있다. 마치 이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는 것처럼.

<페어 러브>의 미덕을 찾자면 그 미덕의 시작점은 단연 바로 이런 영화적 선언이 될 게다. 난데없는 스토커(?)의 습격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기를 곤란해 하는 남은을 위해 택시까지 대동하여 직접 태우러 다니거나, 중고차라도 한 대 얻기 위해 가족과 모종의 협상을 시도(?)하는 형만의 모습을 보며 불편한 마음보다 유쾌한 마음이 제일 먼저 드는 건, 이 사랑이 남들도 다 겪는 그것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페어 러브>는 소재의 자극성을 정공법으로 파헤치는 것보다 소재의 농도를 얼마나 친화적으로 바꾸어 나가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본래 영문 제목인 Fair Love보다 Pair(한 쌍의 남녀) Love가 더 어울리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이런 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후반부 형만과 사진 작업실 동료들의 위로주 장면. 막 헤어짐 선고를 받은 형만을 여느 때보다 살갑게 대하며 술을 한 잔씩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것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소재의 자극성을 일거에 소거하는 힘이 있다. 각 캐릭터들에게 난처함을 강요하지 않고, 윤리적인 문제를 강요하지 않는 카메라의 모습이 좋다.
며칠 전 본 <썸머와의 500일>이 매우 현실적인 방향의 연애담으로 어느 정도 날카로움을 품고 있었다면, <페어 러브>는 이보다 조금 높은 온도의 연애담인 동시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흐뭇해지게 만드는 연애담이라 할 만하다. 때로는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가다가도, 어느 순간 사진을 한 장 한 장 펼쳐 보이듯 개별적인 이미지를 꿋꿋이 스크린 안에 각인시킨다 (극중 형만의 조카 회상신에서의 '불꽃놀이' 장면은 그 중 백미로 손꼽힌다). 기묘하면서도 놀라움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다. 그 연애담이 설령 연애 실패담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이야기로 끝난다 할지라도 이 연애담의 흔적은 스크린 안에 온전히 자리잡아 메아리처럼 남는다. 마치 영화의 라스트신에서 울리던 남은의 "우리 다시 시작해요" 라는 메아리처럼. (2010.01.22)
_Rate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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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지붕 뚫고 하이킥' 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할 얼굴이 하나 등장하죠. 바로 형만의 조카가 좋아하는 여자 역으로 등장하는 유인나 양.
- 극중 형만의 사진 작업실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런 공간에 있으면 참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아요. 구석에 박혀 책장에 꽂힌 내셔널 지오그라픽 잡지들도 읽으면 재미날 것 같고.
- 사진 혹은 사진기에 대한 역사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영화에 대해서 보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잠깐 대사로 등장하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 대한 정보는 여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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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화의 감성과 설정 분위기 등등은 다 마음에 들었는데
흘러가는 과정이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좀 아쉬운 영화였어요.
반응이 좀 엇갈리겠다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몰랐네요. 그래도 즐겁게 봤으니 다행이다 싶죠.
그치만 일본에서 만나기는 어렵겠죠? ^^;;;
안성기씨 참 멋지게 나오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