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문 (Moon, 2009)

Posted at 2009/11/22 15:33// Posted in 영화담론/긴 영화리뷰

격리된 현실: 경이로운 세계와의 또 다른 조우

-- 이 글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나 내용을 읽고 영화를 보셔도 큰 상관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감추기에는 이미 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공개된 스틸들부터가 그걸 대놓고 드러내고 있지요. 어떻게 보면 샘 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스포일러일 수도 있겠고...

허허벌판. 누구라도 <더 문>을 보게 된다면 이 네 마디의 단어 하나가 제일 먼저 가슴팍에 꽂히는 것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일견 맞는 얘기다. <더 문>에서 보이는 달 세계의 공간에는 기계의 냄새가 진동하는 크고 작은 기지 두세 개와 그 기지를 지키는 기계 한 덩어리와 인간 한 명만이 존재감을 드러낸 채 꿈틀대고 있을 뿐이니까.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에서 얼핏 화려한 듯 이면에는 독립에의 강한 의지를 보이던 달 세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익숙하지만 어딘가 낯선 달 세계를 감싸고 있는 또 다른 세계. <더 문>이 본격적으로 관객들에게 보여 주고자 하는 세계는 바로 이렇게 구성되어 있는, 달리 말하면 '격리(quarantine)된 현실'이라 규정할 수 있는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샘 벨(샘 락웰)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다.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로봇 거티(케빈 스페이시:목소리)와 함께 다국적 기업 루나 인더스트리즈에서 만든 달 기지 사랑(SARANG)에서 생활하며 통신위성이 철저히 단절된 달 세계에서 홀로 통신위성을 찾아다니거나 달 세계를 지켜 나가는 일을 하면서 산다. 이 샘 벨이라는 친구에게 있어 달 세계, 그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기지는 우리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만큼이나 최소한의 익숙한 일을 할 수 있는 세계지만, 샘 벨은 끊임없이 자신이 살았을 지구 세계를 그리워하고 (환상 장면의 베드신에서 드러나듯) 아내의 살 냄새를 그리워하고 하나뿐인 딸의 숨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세계는 분명히 격리되어 있고, 그 세계 안에서 샘 벨은 끊임없이 임무가 끝나는 3년 후를 기다린다.


ⓒ Liberty Films UK, Xingu Films /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영화사 구안

어떻게 보면 아주 정적인 달 세계로까지 규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가 정말 재미가 없느냐고? 이 생각이 들 때쯤 <더 문>은 아주 인상적인 트위스트의 숲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샘 벨이 타고 있던 정찰차 하비스터가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나고, 이 사고를 기점으로 또 다른 달 세계의 샘 벨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왔던 정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한다. 극 중 샘 벨의 대사 중 하나인 "Rock 'N Roll, 아메리카 만세" 라는 말에서처럼 멈춰 있던 흐름을 송두리째 흔들어(rock) 경이로운 세계로 관객들과 함께 굴러가(roll)는 것이다.

물론 거티의 암묵적 동의를 등에 업고 샘 벨이 진실에 접근해 나가는 이야기의 흐름이 극히 익숙한 흐름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오히려 경이로운 세계처럼 느껴지는 것은 조금씩 속꺼풀을 벗기 시작하는 세계를 엿보는 재미를 고스란히 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앞에서 이야기했던 하비스터 전복 사건 현장에 다시 찾아간 (멀끔한 용모를 갖춘) 샘 벨이 동그란 유리창을 슥슥 문질러 안을 들여다보는 장면이 있다. 혹시나? 해서 들여다보았는데 역시나 그것, (초라한 행색에 피투성이인) 또 다른 샘 벨이 있다.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있는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그 동작, 그 장면이 일종의 전율을 일으킬 소지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는 거다. 미지의 세계와의 조우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라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고 싶은 의도가 나타난다고 할까나. 그래서 참신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순간 "억!"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두 달 전 이미 공개되어 국내에서도 반향을 몰고 왔던 <디스트릭트 9>과 마찬가지로, <더 문> 역시 다른 세계와의 조우, 그리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성을 바탕으로 SF 특유의 재미를 소화하고 있는 영화다. 그러나 둘 사이의 차이점을 굳이 찾아 보자면, <디스트릭트 9>이 다소 날카롭고 잔혹하기까지 한 이세계의 활극이었다면 <더 문>은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사람일까' 라는 질문을 보다 묵직하게 내던지고 그 흐름에 몸을 실은 채 전진해 나가는 영화다. 둘로 쪼개진 샘 벨이 품고 있는 진실에 다다랐을 때 허무하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수긍이 가는 것은, 앞서 조금씩 펼쳐 놓고 있는 꺼풀들이 하나하나 관객에게 설득력을 안겨 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 Liberty Films UK, Xingu Films / 플래니스 엔터테인먼트, 영화사 구안

극단적인 방식을 채택하지 않더라도 이세계에서 벌어지는 풍경에 경이감을 실어 관객으로 하여금 절로 무릎을 꿇게 하는 것. <더 문>을 통해 던컨 존스 감독이 의도했던 것은 아마도 이것이 아니었을는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의도는 매우 충실하게 이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결과를 단 500만불의 제작비로 만들어 낸 성과가 놀랍다. 그 경이로움이 놀랍다. 그리고... 스크린 안에서 수 없이 펼쳐지던 달 세계가 놀랍다. 그 경이로움을 체험하기 위해서라도, <더 문>은 필시 극장에서 그 실체를 확인해야 함이 옳은 영화다. 장르의 특성만큼이나 극장을 찾을 관객들이 어느 정도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2009.11.22)

★★★★★ (Rate: 10.0)

--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것 하나. 잘 알려진 대로 <더 문>은 지난 42회 시체스 국제 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했으며, 그 중 샘 벨 역을맡은 샘 락웰은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전에도 두 차례 <론 덕스>(1997년) 와 <조슈아>(2007년)라는 영화로 같은 상을 가져간 적이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세 번째 영광이 되는데, 이 중 한국에 정식 개봉했거나 알려진 영화는 <더 문>이 유일하다. 다른 영화들은 알려지지도 못하고 잊혀지거나, 정식으로 소개가 되지 못한 채 종종 케이블 TV 등에서 무판권이 나돌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더 문>에 정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해 주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아니 품을 수 없다.

-- <디스트릭트 9> 개봉 직전에 나왔던 "<트랜스포머2> 한 편 만들 돈이면 <디스트릭트 9>을 여섯 편 만들 수 있다 (capcold님의 블로그 - 디스트릭트 9 단평에서 발췌)" 라는 우스갯소리를 기억하시는가? 이걸 바꿔서 말해보자. <디스트릭트 9> 한 편 만들 돈으로는 <더 문>을 여섯 편 만들 수 있다. 참 재미있는 세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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