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절로 온 몸을 화끈거리게 하는 뜨거운 돌이 하나 있다. 누구나 한 번쯤 혹하여 손에 쥐고 싶으나 아무도 손을 대고 있지 못하던 차에, 어떤 사람이 그 돌을 보자마자 무언가를 보여 주겠다며 단숨에 움켜쥐었다고 해두자.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그 사람은 돌을 쥔 채 자신만만하게 외친다. 이것 봐, 내가 이런 돌을 주웠다고! 멋지지? 죽이지? 목소리가 점점 커져 갈수록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환성 또한 커져간다. 그 과정이 어떠하든 간에. 여기서 한 가지 설정을 더 끼워넣어 볼까? 이 돌을 움켜쥔 사람은 그 황홀함에 순간 정신을 놓은 나머지, 돌을 쥔 채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굳어버렸다. 어디선가 이런 소리가 들린다. 자네, 왜 뜨거운 돌을 아직도 손에 쥐고 있나?
갑자기 왠 허무맹랑한 이야기냐고? 롤랜드 에머리히의 <2012>가 바로 위와 같은 이야기라서다. 아마도 이 영화를 놓고 대다수의 관객들이 쏟아낸 반응은 위에서 언급했던 수많은 군중들의 환성에 비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과정, 그러니까 내용이 어떠하든 간에 시원하게 부숴 주면 그만이지. 물론 틀린 얘기는 아니다. <2012>가 명백한 오락영화의 한 핵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런 생각에 금세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정말 '시원하게 부숴' 준다. 대단하다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으나 <2012>의 재난 장면들이 하나하나 모두 인상적인데다 절로 온몸이 움츠러든다는 것만큼은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다.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가 눈 깜빡할 사이 순식간에 주저앉는 지진 시퀀스 하나만 놓고 봐도 이는 충분히 증명된다. 재난의 규모만 놓고 보면 <2012>는 분명 많은 사람 헐떡이게 만들 영화인 거다.

ⓒ Columbia Pictures, Centropolis Entertainment, Farewell Productions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토록 눈도장을 강력하게 찍을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음에도 결론에 다다라서는 되려 허무함이 맴돈다. 너무나 강력한 초중반 재난 장면에 대한 단순한 반사신경 때문일까? 아니. 결정적으로 <2012>에는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 외에 영화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난과 함께 인간들도 등장하고 수많은 동물들도 지나가고 그 외 기타 등등 나올 만한 것들은 거의 나오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스케일을 보증해 줄 수 있는 매개체들일 뿐, 문제는 단순히 재난의 흔적을 보여 주는 것 외의 활용을 못 한다는 거다. 아무도 섣불리 손을 뻗지 않는 돌을 잡아챘음에도, 정작 보여 줄 것은 보여 주지 못하고 그저 손에 쥐고 있을 뿐이다.
<2012> 가 거대한 재난의 집합체를 쓸어담은 영화이지만 그 속을 뜯어보면 (관객에게 기본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아주 단순한 만듦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진과 쓰나미, 화산폭발, 홍수 등 각종 천재지변이 창궐하여 인류를 위협한다는 단순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스케일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뒷받침할 수 있는 방법론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최소한 이야기의 방향이 어느 정도 중심을 잡고 있었다면 얼마든지 보완이 됐을 일이다. 그러나 <2012>의 오락가락하는 이야기는 기어코 영화의 발목을 잡고야 만다.

ⓒ Columbia Pictures, Centropolis Entertainment, Farewell Productions
공개 이후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지만, 최소한 내가 본 <2012>는 개인(혹은 가족단위의 무리)의 안위를 추구하는 인간의 속성이 어떻게 재난 상황을 헤치고 드러나는가.에 대한 거대 보고서였다. 수많은 희생들을 애써 외면한 채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수없이 달려 나가는 잭슨 커티스(존 큐잭) 가족을 비롯하여 <2012>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재난이라는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 개인과 가족의 안전을 제일 먼저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초록색 '티켓'으로 대변되는) 일종의 '살아남는 계급' 분류가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누군가는 재난의 상황을 미리 알고 대피를 하거나 살 길을 모색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한 채 쓰러지는 세계와 함께 희생당한다.
초중반에 걸쳐 고르게 등장하는 이런 흐름을 잘 이끌어 나갔다면 좋았으련만, 중반부 대통령 토머스 윌슨(대니 글로버)의 희생과 맞물려 후반부 갑작스레 전개되는 인류 화합의 분위기는 극의 흐름을 180도 흐트러트려 놓는다. 아니, 되려 뜬금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해피엔딩을 어떻게든 만들려는 또 하나의 움직임일까? 그러나 상황만 놓고 보면 해피엔딩이 아니라 배드엔딩이 되어도 크게 반발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다. 항간에 떠도는 말대로, "저런 악독한 상황에 놓인 자들은 결코 끝에 가서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말은 아직까지 하나의 진리처럼 통하고 있으며, 관객들도 이걸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올 초 공개된 또 하나의 재난영화 <노잉>과 직접적으로 대비가 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노잉>이 한 흐름을 뚝심있게 밀어붙여 다른 생각거리들을 무수히 던져 준 반면, <2012>는 기존에 그럭저럭 이끌어 나가던 이야기마저 뒤집으면서 이도 저도 아닌, 비대한 규모가 기형적으로 크게 돋보이는 오락영화가 되어 버린 셈이다.

ⓒ Columbia Pictures, Centropolis Entertainment, Farewell Productions
결국 <2012>는 눈과 귀가 호강하는 블록버스터임에 분명하지만, 감흥이 단 반나절 간의 가치를 갖는 탓에 되려
심심함과 허무함이 역습하는 영화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행보를 엿보자면 재난의 규모를 보다 돋보이게 하는 영화의 방식을
의도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글쎄다. 아무리 멋진 장면들을 담아 놓았다 한들, 그 장면들이 주는 감흥이 단 반나절만
가는 감흥이라면 그건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까. <2012>의 유일한 성취, 재난 시퀀스에 한 번쯤 혹했음에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관을 빠져나오자마자 안개처럼 흐릿해지는 것은 엄연히 이 '반쪽짜리 감흥'만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모종의 반사신경일 것이다. ★★☆ rate 4.5
(200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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