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ver 와 Forever 사이에 점을 찍어 주고 싶다"1. 한 영화배우가 자기 시나리오의 한 구석에 적어 놓은 이 한 줄의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Never는 절대적인 어감의 부정어이고, Forever는 영원을 약속하는 활짝 핀 긍정의 단어다. 그 구분되는 문자가 무엇이든 상반되는 두 단어를 떼어 놓아도 위치는 남는다. 허면 왜 점일까. 머리를 쥐어짠 결과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그럼에도...' 라는 의미를 보다 확실하게 부여하기 위한 것. 두 단어를 다른 세계에 각기 놓아 둠으로서 별개의 세계를 구축하려 함이 아닐까. 남들은 'Never'라고 하든 뭐 어때, 정도의 제스처라는 결론에 닿자마자 그 의미가 참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시작하기에 앞서 왜 '한 문장을 어떻게 읽을 것이냐'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지금 이야기할 영화 <호우시절>이 딱 바로 이런 영화라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호우시절>은 '그럼에도...' 가 던지는 아름다움이 영화 전면에 빛을 발하는 영화다. 아니,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중간에 한 번 정도 점을 더 찍어도 되겠다 싶다. 바로 for와 ever 사이를 떼어 보자는 거다. for는 누군가를 위한다는 의미요, ever는 언젠가, 일찍이, 이제까지, 언제나 등의 동시다발적 의미다. 그렇게 이 리뷰의 제목은 정해졌다. 결코 '언제나 유지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를 '위한' 무언가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유지되고 있다. <호우시절>이 주려고 하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 아닐는지.

유학 시절에 친분을 갖고 있던 한국인 남자 동하(정우성)와 중국인 여자 메이(고원원)가 중국 청두에서 재회한다. 그 몇 일 간이라는 재회의 순간이 올 것임을 하늘도 알았던 것인지, 동하와 메이가 만나는 청두의 두보초당에 무럭무럭 자라난 대나무잎들이 흡사 빗소리를 연상시키는 소리를 내며 나부낀다. 반가운 손님을 불러온다는 까치 이야기처럼 <호우시절>에서 빗소리(혹은 그 비슷한 소리)는 반가운 사람이 온다는 사실을 알리는 목소리처럼 들린다. 이 목소리가 메이(May, 5월)의 싱그러운 모습과 겹쳐지며 생겨나는 <호우시절>의 첫 인상은 한 번쯤 관객의 발걸음과 눈망울을 멈추게 만든다.
초장부터 두 사람의 친근한 모습을 보여 주며 멜로의 영역으로 바로 돌진할 줄 알았던 <호우시절>은 바로 이 순간, 잠시 쉬어 가는 방법을 택한다. 후반부 몇십 분 동안 작정하고 치고 들어가는 멜로의 영역과 명확히 대비되는 모습을 띠는, 언어유희가 넘실거리는 이 쉬어가는 시간이 주는 의미는 앞에서 말했던 세 단어 중 'ever'를 닮았다. 각자 놓인 상황에 관계 없이 '언제나' 벌어질 수 있는 일. 친우를 만났다는 사실 하나에 하던 일까지 잠시 내려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동하와 메이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담은 세계는 그래서 재미있다. 가령 동하가 회사에 제출해야 하는 식대를 원래 나간 것보다 많이 적어놓는 내용이나, 하루 더 있다 돌아간다는 사실을 중국 현지 사무소에 따로 알리지 않았다가 한국식당 화장실에서 지사장(김상호)에게 딱 걸리는 장면 등은 절로 미소짓기에 좋은 면모를 갖추었다.

관광영화라는 포장지 안에 담뿍 담긴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동하와 메이는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러다 서서히 옛정을 되찾아가고, 서로를 좋아하게 된다. 이렇게 멜로의 면모가 본격적으로 머리를 드는 순간, <호우시절>은 급속도로 방향을 틀어젖힌다. 쓰촨성 대지진이라는 절대적 사실을 바탕에 깔고서. 영화의 중간쯤 동하와 지사장이 답사하는 지진 현장 모습처럼 생채기는 꾸준히 남아 유령처럼 떠돌아다니며, 동하와 메이 사이에 절대적인 거부(Never)의 영역을 만들려 든다.
전쟁의 황폐화된 모습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구멍을 남기는지를 똑똑히 각인시키던 <어톤먼트>의 그 유명한 뒤르케르크 해안 길게찍기 모습처럼 <호우시절>은 역사적인 사실을 멜로의 영역에 포함시켜 가장 직관적인 방식으로 보여 주지만, 부정적인(never)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이내 영리하게 빠져나온다. 그래서 명백히 초반부의 유연한 분위기와 대조되기에 '역습'쯤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 역습의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다. 지진이 일어났던 현장에 굴삭기가 들어서고 복구가 진행되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언젠가는 이 생채기가 만든 사슬에서 자유로워질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무엇을 통해서? 바로 서로를 위한(for) 배려와 위안, 응원을 통해서. 그렇게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언제나(ever) 벌어지는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간다.

그러니까 <호우시절>이 영화 속에 담아 놓은 알맹이는 이거다. 폐허가 복구되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들과 상대를 위한 마음은 영원함(for+ever=forever)은 언제나 빛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메이가 자전거를 타는 장면은 절로 가슴을 쓸어내리게 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누군가 <호우시절>을 놓고 '사랑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판타지'라고 했던가.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호우시절>은 분명 적극적인 판타지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상황에 걸맞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을 덧붙이자. <호우시절>은 이런 말을 들을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 (Rate 9/10)
(2009.10.10 / zinsayascope.com)
각주
- 하정우 특집 I AM A ACTOR - Dazed & Confused 한국판, 2009년 6월호 중에서.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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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없는 선택이겠죠?
노출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상영관이 텅 텅 비어있던데 극장가에서는 금방 내려올 것 같아서 좀 안타깝기도 하네요. TV의 막장 드라마에는 그렇게들 열광을 하면서 말입니다. -_-a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뭘까요? ^^
둘의 호텔 장면은 [외출]을, 메이가 병원에 입원한 장면은 [행복]을, 마지막 메이가 자전거 타는 장면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켰더랍니다. 쓰촨 지진에 대한 사회성을 가미한 것 외에는 전의 것들을 답습하는 데에 머물고 있는 듯해서 조금 힘 빠졌네요^^
닮아서 깜짝놀랐네요..으으..
영화 본지가 언제인지~~ Orz 혼자 한번 가볼까요~~ ^^;;
아직 쏠로라서.. 심히 마음이 더 숙연해지는..;;
이거 직접 확인하는 방법밖에 없네요..
고원원도 보고싶고.. ㅋ
이야기를 듣자니 [정승필 실종사건]에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음. 좀 난감합니다.
(Life is) N(ot) ever, (but Love is) for ever..
.....뻘짓인가 ㄱ-
그럴때를 알고 준비하는 이가 성공하지 않을까 싶네요..;)
오랜만에 괜찮은 멜로영화를 만났습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근데 트랙백이 왜 전송이 안될까요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