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그 공간 안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다. 왜냐고? 그 공간 안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큰 위험이 닥쳐올 것임을 어느 정도 간이라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공포를 만드는 덩굴의 정체를 바로 알지 못했을지라도.
본격적으로 원작 소설 <폐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이 책은 혹자에게는 온갖 엽기 상황이 눈을 침공하는 사악한(?) 소설로 보일 수도 있다. 인간의 타액이나 혈액, 몸 등을 숙주로 삼아 끊임없이 성장하는 덩굴의 설정부터가 겁을 집어먹게 하거니와, 그 직설적 묘사는 더욱 식겁하게 한다. 특히 후반 정신없이 몰아치는 100여 페이지의 향연은? 섬뜩함. 이 말로밖에 표현이 불가능하다. (소설에서는 이탤릭체로 표기된) 덩굴이 인간의 목소리를 흡수하여 내보내는 메아리의 동어반복은 이런 공포에 한 꺼풀의 무게를 덧씌우며, 종장에 이르러 자신의 몸을 깎아내기에 이르는 여섯 사람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그 기현상을 상상하게 만들어 절로 소름이 돋도록 만들어 버린다. 이런 묘사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을 하나 살펴보자.
처음에는 장딴지의 부푼 부위를 째기 시작했다. 쉬운 작업이었다. 나이프로 조금 금을 낸 다음, 피부 바로 밑에서 거의 호두만한 크기에 단단히 또아리를 튼 덩굴 덩어리를 끄집어냈다. 몸에서 그걸 꺼내 옆으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팔뚝 절개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조금 더 복잡한 작업이었다. 벌레처럼 부풀어 오른 곳을 약간 짼 다음, 막 그걸 찾아내려는데... 없어졌다. 에릭은 나이프 끝으로 쿡쿡 찔러 본 다음,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예리하게 쭉 그었고, 피가 줄줄 새어 나오는 절개선은 더욱 길어졌다. 덩굴이 거기에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고, 따라서 반드시 찾아내야 했다. 그는 더 깊이 절개하기로 마음먹었고, 이제는 거다란 절개선 양 끝에서 수평으로 금을 긋고는 피부를 쭉 들어냈다. (중략) - 522페이지 중에서
(어쩌면 독자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을 수도 있을)독자를 현혹시키는 현란한 묘사를 철저히 배제하는 대신, <폐허>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무생물의 무서운 일면을 발견하고 빠져나가려 아등바등하다 결국 그 상황에 굴종하고 마는 인간의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주인공 중 네 명이 미국인이고 그들의 공포가 가장 크게 엿보이는 까닭에 얼핏 보면 ‘어리석은 미국인들’의 연장선상과도 같다. 무리는 아니다. 덩굴에 포위당하고, 마야인들의 방어막에 가로막혀(아마도 그들은 이 덩굴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으리라. 똑똑히!)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그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빠져나가 보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찰나의 실수로 인해 줄곧 위험에 내던져진다.
그러나 단순히 ‘미국인의 삽질‘쯤으로 치부하기에는 <폐허>가 주는 경고가 너무나 굵직하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미국인‘이라는 틀에 사로잡혀 <폐허>가 진짜 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왜냐고? 이것은 한 인종의 이야기를 넘어, 초자연적 현상을 통해 던지는 보다 깊숙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그 공간에 위험하게 발을 들이밀지 마라. 그러다간 다쳐! 작가 스콧 스미스가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는지. 이 책의 끝에 이르러 보여 주는 것은, 앞서 덩굴의 늪에 빠져든 친구들의 행보를 (어쩜 그렇게! 싶을 정도로)똑같이 답습하는 그리스인들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 악몽은 한두 명쯤 죽어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바로 우리 앞에서 꿈틀대며 위협하는 공포의 그림자. <폐허>가 내리는 결론이다.
(2009.09.25 / zinsayascope.com)
* 초반에 잠깐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은 이미 북미에서 영화화되었다. 시놉시스만 보면 원작에 꽤나 충실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흥미로우나, 불행히도 한국에는 개봉하지 못하고 DVD로 직행했다. 작년 개봉한 영화 <롤라>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매력을 드러낸 바 있는 로라 램지가 미국인들 중 한 명인 스테이시 역을 맡아 더욱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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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남기는 건 처음 같네요~ㅎㅎ
평소에 스릴러 소설들을 좋아하는터라...이 소설을 읽었는데 꽤 두꺼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었어요. 사실 초반부는 좀 지루하기는 했는데 읽다보니 무척 흥미진진하더라고요.
스콧 스미스의 오래된 책인 『심플 플랜』도 번역이 되었길래 읽었는데 이 책도 재밌었어요. 이 책도 영화화되었는데, 영화는 <루인스>보다 <심플플랜>이 더 재밌더라고요.
앞으로는 자주 댓글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ㅎㅎ잘 부탁드려요~
아이구-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