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따로따로 쓰려고 했지만 모두 한 번씩은 더 읽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머리가 잔뜩 복잡하기도 해서 일단 간단하게 적는 것부터. 이 글을 끄적이며 생각해 보니 둘 다 판권이 팔렸다는 공통점이 있고, 주인공의 일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각 소설의 스타일은 다를지언정 그 방향은 비슷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져 흥미롭게 읽은 것 같다.
「노서아 가비」는 커피(소설 속에서는 러시안 커피)에 대한 예찬론적인 소설이다.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이게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게 되는데 여기에는 따옴표 하나 들어가지 않은 대사들의 연속과 커피에 대한 예찬으로 가득 차 있는 묘사들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대사에 따옴표가 없으니 기존 소설들에 익어 있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대사의 지점이 어디부터인지를 또 찾아야 하니까. 이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낯선 느낌을 가지게 하지만, 이 낯선 기운만 극복하고 한 번 빠져들어가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주인공 따냐와 필생의 연인 이반이 등장하고, 커피를 너무나 좋아하여 궁중 바리스타까지 들인 고종황제가 등장한다. 이 세 인물은 각자의 섬을 완벽에 가깝게 구축하며 책 속에서 나름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특히 가장 열성적으로 그려져야 할 따냐 못지않은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고종황제의 모습은 이전에 우리가 생각했던 고종황제의 이미지(예를 들면 이 책에도 등장하는 '아관 파천' 같은)를 살짝 지우게 하기 충분한 모습을 갖췄다.
혹자는 리얼리티 문제를 걸고 넘어질 수 있겠으나 소설로서의 목적은 충분히 다하고 있고, 역사적인 사실을 일부 끌어와 그것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한 것이 「노서아 가비」의 실체이니 더 이상 크게 걸리는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퓨전 사극이라고 일컬어도 손색이 없을, 멋진 픽션이다.
「스타일」은 예전에 잠깐 읽었다가 잠시 멀리한 후,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판에 힘입어 다시 손을 댄 케이스다. 사실 처음 접했을 땐 흔해빠진 칙릿이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다시 읽어 보니 칙릿으로 끝날 위인(!)이 아니다. 이 소설은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앞에서도 말했던 칙릿으로 읽을 수도 있고, 이서정이라는 캐릭터의 성장 드라마라고 읽을 수도 있으며, 패션잡지계의 보이지 않는 사투를 파고드는 사회적 소설이라고 읽을 수도 있겠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얘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최고 장점.앞서 이야기한 「노서아 가비」에서 고종황제가 아관 파천의 신세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스타일」의 주인공 이서정이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성수대교 붕괴 사건과 얽힌 상처다. (스포일러) 이 사고로 사랑하는 언니 중 한 명을 잃었고, 가정이 붕괴 직전까지 갔던 것에 대한 충격은 자라서도 도통 없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포일러 끝!) 이 늪에서 빠져나오는 건 본인의 몫. 「스타일」은 이서정이 어떻게 자존감을 되찾고 나아가는지에 대해서 날카롭지는 않더라도 진중하게 따라가는 맛이 있는 픽션이다. 여기에 녹록치 않은 패션지계의 이야기를 버무려 꽤 멋들어진 스타일을 뽐낸다. 패션지 피처 에디터의 경력이 있는 작가로서 유리한 점을 아낌없이 뽐냈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래서 이 소설 안에서는 소소한 리얼리티가 작은 꽃을 피운다.
이서정이 소통하는 방법과, 중반부를 넘어간 이후 갑작스레 벌어지는 연애 라인이 다소 기시감을 느끼게 하지만 소설에 큰 해악이 남겨지는 것은 아니다. 책 뒤편에 붙은 말마따나 '다양한 스타일과의 화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건 꽤 괜찮은 트렌디 드라마인걸. 과연 이걸 어떻게 드라마로 옮겼는지는 직접 확인해야 알 일이지만,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를 보면 살짝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원작에서도 크게 드러나지 않던 서정-우진-민준의 삼각관계부터 시작하여, 생각보다 확 드러나 보이는 박기자 차장에 대한 모습까지(원작 소설에서는 잡지사 편집차장이라는 것과 악독한 상사라는 사실만 빼면 정말 미스터리 가득한 캐릭터로 나온다. 소설에 등장하는 각종 루머들이 이를 잘 표현해 준다).
첫 인상이 매우 안 좋은 축에 속하는 드라마판이지만 어찌됐건 나오고 있고, 반응은 처절하게 갈리고 있다. 과연 끝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기대는 접은 상황. 허영만 화백의 <식객>처럼 드라마 판권 따로, 영화 판권 따로 나온다면 어떨까. 만약 영화 판권이 생긴다면 전문직 종사자로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이서정의 위치를 좀 더 부각시켜 줬으면 좋겠다. 지금 직감만 놓고 보면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는 뭐랄까, 방향을 못 잡아도 한참 못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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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커피가 얼마나 지독한지 한번 읽어봐야겠는데요...^^
아직 읽어보질 않았는데~ 진사야님 리뷰를 참고해야 겠어요
따옴표 없는 대화가 이어지는 소설이라..
가끔 생각과 대화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