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지옥 (2009)

Posted at 2009/08/17 19:19// Posted in 영화담론/긴 영화리뷰

ⓒ 영화사 아침 & 타이거픽쳐스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굳이 읽으신다 하면 말리지 않겠으나 <불신지옥>을 보실 예정이라면 읽지 마시고 극장으로 향하실 것을 권합니다.

잔혹한 믿음의 테제

 절로 암담함이 느껴지는 저체온의 방 안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꾸역꾸역. 모여든 사람들이 어딘가를 응시한다. 그 따가운 눈빛들이 닿는 곳은 침대 위, 그 곳에 한 소녀가 멍하니 내려앉는다. 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이 하나둘 주저앉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왼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이 말들이 터지고 터져 입과 손에 피가 배어나는 지경까지 이르러서도 소녀는 말이 없다. 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야 하는 순간에 내지른 떨림처럼, 어딘가 불안하고 멍한 눈빛만을 비출 뿐.

 그러니까 이걸 무어라 표현하는 게 좋을까. <불신지옥>이 스크린 전역에 잔뜩 그려대고 있는 이 낯선 빛의 아파트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냐는 말이다. 그 결론의 향방은 의외로(?) 쉽게 정리되는 듯 보이지만 “그거다!”라고 선뜻 외치다가는 내 목이 툭 꺾이는 찰나의 고통을 부를지도 모른다. 굳이 정의내리자면 이것은, (우리가 신념이라고 부르며 꽁꽁 묶어 온) 잔혹한 믿음의 테제(독일어로 These, '정립(定立)'이라는 의미)가 만드는 공간이다.


ⓒ 영화사 아침 & 타이거픽쳐스

 <불신지옥>의 스토리라인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소진이라는 소녀가 실종되고 그녀를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광포한 믿음의 현장, 다른 하나는 소진의 실종 사건을 맡은 형사 태환(류승룡)의 가족이 겪고 있는 병마와의 싸움이다. 미묘하게 다른 골격을 가지고 있는 두 스토리라인은 믿음이라는 주제로 묶여 있고, 치유와 안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지만 득보다 실이 더 많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믿음이라는 것에 대놓고 집착하거나, 그 믿음에 묶이지 않으려 발버둥 치다 스스로 무너져 (불신을 가장하고)상대방에게 화살을 겨눈다. 둘 중 어느 쪽이든 그 원인이 되는 건 믿음과 불신의 부조화. 믿든 안 믿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겠지만 <불신지옥>의 세계는 그런 자세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스크린 속 캐릭터들을 쥐어짰다가 놓아 주고, 뺨을 마구 내려치다 어느 순간 그만둔다.

 그것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이 살풍경한 현장들은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는다. 이 영화를 만든 이용주 감독은 무서운 장면이 많은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무서운 공포영화를 해보고 싶었다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타고 비춰지는 현장들이 섬뜩함을 자아내는 거라고 하는 편도 나쁘지는 않겠다. 시나리오가 빚은 괴물에 잡아먹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 이 생각을 하니 절로 으스스함이 몰려든다.


ⓒ 영화사 아침 & 타이거픽쳐스

 <불신지옥>이 좋은지 나쁜지를 여기서 굳이 더 논하지는 않겠다. 내가 아니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그것을 증명해 줄 테니까.(실제로 증명이 되고 있기도 하니 긴 말을 하진 않겠다) 하지만 이건 꼭 얘기하고 넘어가야겠다. <불신지옥>은 한국산 호러영화라는 명찰을 떼고 이야기해도 그 결과 자체가 하나의 성취이며, (그 관객이 종교를 믿는 사람이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관객에게 믿음과 불신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이 물음표에 앞으로 또 어떤 느낌표가 새겨질지. 실로 재미있는 풍경이다. ★★★★ (Rate 8.0)
(2009.08.16 / zinsayascope.com)

http://www.zinsayascope.com/trackback/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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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7 20:30 [Edit/Del] [Reply]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한마디씩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품이죠. 간만에 제대로 된 공포영화 한편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저희쪽도 공포호러 영화를 무지하게 즐겨서 거의 다 보고 나서 극찬하는 분위기였습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7 21:14 [Edit/Del]
      무비조이님, 엔딩 장면에 대해서는 말이 정말 많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 번 더 볼까 하고 있어요. 후반부가 이해가 좀 덜 되어서 ㅠㅠ
  2. 2009/08/18 09:59 [Edit/Del] [Reply]
    전 무서운 영화 못보는데 이건 재미있게 본 것 같습니다. 보고나서가 더 무서웠던듯.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8 19:28 [Edit/Del]
      평범님, 말씀하신 대로 보고 나서가 더 무서울 수도 있는 영화네요 그러고 보니 :) 워낙 안팎으로 호러블하잖아요. 그걸 대입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저는 되도록 그 생각까지는 안 하려고 했습니다만(워낙 많은 분들이 얘기해 주고 계시니..^^) 은연중에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3. 2009/08/18 11:04 [Edit/Del] [Reply]
    다들 평이 좋네요.
    꼭 보러가야겠습니다.
    흐흣.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8 19:29 [Edit/Del]
      EastRain님, 최소한 후회는 안하실 것 같습니다. 모처럼 잘 나온 한국 호러인걸요.
  4. 2009/08/18 16:50 [Edit/Del] [Reply]
    평이 좋아서 봐야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공포영화의 벽을 한번 넘어볼까도 하는데.....^^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8 19:29 [Edit/Del]
      PLUSTWO님, 이번 참에 뛰어넘어보세요!! (이러다가 나중에 맞으면 어쩐다..;)
  5. j준
    2009/08/19 08:55 [Edit/Del] [Reply]
    음...진사야님이 쓰신 글을 보니 상당히 궁금해지는군요. :)
  6. 2009/08/19 15:53 [Edit/Del] [Reply]
    이 영화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그간 한국 호러들이 해 온 삽질들 덕분에라도 더 빛나는 영화지요.
  7. 2009/08/19 23:50 [Edit/Del] [Reply]
    왠지 일반 공포영화와는 다른 분위기네요. 이런게 더 무섭던데..ㅎㅎ
  8. 2009/08/20 07:28 [Edit/Del] [Reply]
    오호...영화를 굉장히 좋게 보셨네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목에 미치지 못한 영화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출연진의 연기력은 상당하더군요. 남상미도 엄청 늘었고...내용은 그다지...^^;; 개인의 생각입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21 11:42 [Edit/Del]
      MyName!!™님, 말씀하신 대로 연기는 좋습니다. 특히 소진 역의 심은경 양은요. ^^
  9. 2009/08/21 22:34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무비조이입니다.

    무비조이에서 오른쪽 항상 따라다니는 아이콘으로 매일 1분의 블로그 글을 추천해서
    링크 시켜드리는 서비스를 베타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진사야님의 <불신지옥> 글을 선정했습니다. 내일 오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링크 걸리게 됩니다.

    무비조이 사이트 http://www.moviejoy.com 을 방문하시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10. 비밀방문자
    2009/08/24 00:34 [Edit/Del]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24 21:03 [Edit/Del]
      아하하; 요청 주신 내용은 제대로 처리하였습니다. 저도 가끔 그런 실수 할 때 있어요 ㅜㅜ 왠지 모를 동질감이....허허허.
  11. 2009/08/26 22:56 [Edit/Del] [Reply]
    경비아저씨 연기 굿이었어요. ㅋ.ㅋ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27 22:51 [Edit/Del]
      하로기님, 드뎌 보셨군요!! ㅎㅎ 정말 경비아저씨 시신 수습되는 장면은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 어째 죽어도 그렇게............뜨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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