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 (Up, 2009)

Posted at 2009/08/09 20:49// Posted in 영화담론/긴 영화리뷰
ⓒ Walt Disney Pictures, PIXAR Animation Stodio

(중략)
눈을 뜨며 맞는 아침
똑같은 방향뿐인 삶의 나침반
만만한 세상에 쉽게
무릎 꿇고 쉴새 없이 신세 타령만 아련한
옛 꿈을 쫓던 가련한
두 팔로 화려한 날개를 펴고
You can fly

에픽하이 - Fly (3집 ‘Swan Song‘ 수록곡) 중에서

You can fly, you got to fly sky high
 지금 막 우리 앞에 도착한 픽사의 열 번째 이야기 <업>을 보자마자 생각난 건 한 유행가의 가사 언저리였다. 어린 시절 아내와 약속한 꿈을 위해 자신의 집 굴뚝에 수천 개의 풍선을 매단 노년의 존재. 주인공 칼 프레드릭슨(에드워드 애스너)의 집 주변에 풍기는 도시개발의 냄새만큼이나 똑같은 방향뿐인 세상을 밟고 화려한 날개를 펴는 집의 모습이라니. 여전히 픽사 스튜디오가 꺼내 든 카드는 그들다운 카드라는 첫인상과 함께 <업>은 우리 앞에 재기발랄하게 인사를 한다.

 이야기의 주요 틀은 모험을 꿈꿔 온 할아버지 칼과 뱃지 하나 더 따기 위해 모험에 끼는 꼬마 러셀(조단 나가이)의 모험담이지만, 이 영화를 만든 피트 닥터와 밥 피터슨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몇 가지 흥미로운 요소를 더 넣어두었다. 로봇들에 감화되어 스스로의 벽을 깨고 지구로 나아가는 <월-E>의 엑시엄 호 선장을 연상시키는 강아지 더그(밥 피터슨)의 존재나 오색창연한 몸을 뽐내는 희귀새 케빈의 모습도 출중하지만, 흡사 세계 바깥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파라다이스 폭포와 개망신깔때기(!)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통역기 단 개들의 모습은 단연 <업>의 백미로 칭송할 만하다.

 이 모든 요소들이 <업>을 좀 더 오락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놓았다. 물론 이 와중에도 희귀동물 보호라는 메시지나 마음 내려놓기 혹은 꿈의 미학은 사그라질 줄을 모르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로봇과 그 주변 인간들을 통해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경고하던 <월-E>나, 쥐라는 제도권 바깥의 존재를 통해 인간의 선입관을 조롱하고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날리던 <라따뚜이>에 비하면 메시지의 힘을 다소 뺐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


ⓒ Walt Disney Pictures, PIXAR Animation Stodio

 그렇기에 전작 <월-E>의 매력에 감화되어 그 이상의 것을 <업>에 기대했다면 의외의 심심함에 안타까움을 토할 수도 있겠다. 허나 아쉬움이 하나 드러났다고 영화 전체가 흥미롭지 못한 것은 절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좀 더 오락적인 면모 속에 꿈이라는 목표를 향해 날아오르는 이 픽사의 열 번째 이야기는 재료의 낭비를 모른다. 적당히 재료를 쓸 줄 알고, 거기서 일정 이상의 맛을 만들어 낼 줄을 안다. 메시지는 가벼울지언정 그 가는 길만큼은 명확하단 얘기다. 어린 친구들에게는 후반부 씁쓸한 맛이 다소 어렵게 다가올 수도 있겠으나, 그 맛을 느낄 각오가 되어 있다면 충분히 그 보답을 하고도 남을 거다.

 <업>의 초반 10분에 나타나는 어린 칼의 모습은 영화의 현재 시점에 등장하는 러셀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그리고 러셀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마음 속 그것과도 닮아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칼과 러셀처럼 당장 떠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불현듯 꺼내 보며 그 마음을 이루기 위한 기폭제로 삼아 보는 것은 어떨까.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그것이 필경 의미 있을 것임을 믿는다. 재미라는 이름의 풍선을 한껏 달고 날아오르는 <업>이라는 집이 관객에게 던지는 아름다운 노랫말이다. “You can fly!“. ★★★★ (Rate 8.5)
(2009.08.09 / 진사야 / zinsayascope.com)


http://www.zinsayascope.com/trackback/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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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09 21:11 [Edit/Del] [Reply]
    픽사 작품은 최소한 명작이란 소리를 들을만큼 만든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유감 없이 발휘했죠^^
    하여튼 앞으로는 당분간 적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북미에서는 쿨럭..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09 22:10 [Edit/Del]
      무비조이님, 정말 이동진 기자님의 말대로 "픽사의 구내식당에서는 대체 무슨 요리가 나오길래??" 소리가 나올 법하죠. ^^
  2. 2009/08/09 21:46 [Edit/Del] [Reply]
    제 기억으로는 개망신깔때기, 로 남아있는데 정확한건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말하는 개는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설정임에도 매끄러웠던게 인상적이었어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09 22:12 [Edit/Del]
      boyhood님, 아.. 저 깔때기 이름이 생각이 안 나서 검색해서 나온 민망한- 이라는 말을 썼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개망신깔때기가 맞군요 ㅠㅠ 본 내용은 수정했습니다. 제보 감사드립니다 :)
      이름도 참 기가 막히게 지어놨어요. 알파, 베타, 감마... 그 개들의 자아를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얘들이 찰스 먼츠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녀석들이잖아요. 여기서 프로그램의 알파버전 베타버전 이런 게 생각났습니다.
  3. 2009/08/09 22:05 [Edit/Del] [Reply]
    일다 전 픽사 애니에는 실망한적이 없어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09 22:13 [Edit/Del]
      Fallen Angel님, 아직 [라따뚜이] 이전 작품들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어서 다 보고 싶어요. 특히 피트 닥터의 전작 [몬스터 주식회사]는 어떻게든 봐야지 안 되겠습니다 ㅜㅜ
  4. 2009/08/09 23:12 [Edit/Del] [Reply]
    트랙백타고왔습니다- 단순한 모험담이었다면 실망이컸을겁니다. 말씀하신데로 모험담이외에 많은것들이 빛이나던 영화였네요 ^^
  5. 2009/08/09 23:29 [Edit/Del] [Reply]
    진사야님 [업] 영화평 올라오면 연관글 맺으려고 시동 걸고 준비하고 있었으나... 연관되는 부분이ㅡㅡ 쩝ㅋㅋㅋ

    그나저나 에픽하이의 FLY는 저의 노래방 18번ㅋㅋㅋ 랩 좀 합니다..랩르네군ㅋㅋㅋ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0 19:49 [Edit/Del]
      르네군님, 그래도 먼댓글 다는 센스~ㅋㅋ 그 랩실력 좀 나중에 보여 주세요!!
    • 2009/08/10 21:15 [Edit/Del]
      아..정말..뭐 못 하는 게 있어야지ㅋㅋㅋㅋ 노래방은 제가 골라도 되죠? 울 동네 독일 제나이저 특급 마이크 쓰는 노래방 있어요! 풉- (노래방비는 진사야님이^^ 음료수는 내가!!ㅋㅋㅋ)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2 19:41 [Edit/Del]
      르네군님, ㅋㅋㅋ
  6. 2009/08/09 23:57 [Edit/Del] [Reply]
    휴가기간인데,
    널널한 조조로 봐야겠어요.

    아, 그리고 번개도 쳐볼까,
    그런 쓸데 없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풉.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0 19:50 [Edit/Del]
      EastRain님, 오오 번개 좋지요. 그런데 갈수록 상영관이 줄고 있는 게 좀 많이 안타깝네요 -_ㅜ); 흑.
  7. 2009/08/10 00:10 [Edit/Del] [Reply]
    역시 멋진 리뷰 잘 보고 갑니다. ^^
    매해 여름, 픽사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인생의 큰 즐거움이죠~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0 19:51 [Edit/Del]
      shinsee님, 그러고 보니 토이스토리 3이 내년에 공개되네요. 또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기대됩니다 ㅎㅎ
  8. 2009/08/10 09:07 [Edit/Del] [Reply]
    포스터부터 심상찮군요(!?) 재밌을 것 같네요:)
  9. 2009/08/10 09:22 [Edit/Del] [Reply]
    저는 개인적으로 <월-E>보다는 <UP>이 더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월E 도 정말 맘에 들었긴 한데, 이야기의 흐름이 UP이 더 깔끔하게 느껴지더라구요...
    암튼 픽사의 능력의 끝은 과연 어딜지 ^^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0 19:53 [Edit/Del]
      몬스터님, 말씀대로 [업]이 더 보기 좋다는 얘기도 있어요. 하긴 [월-E]는 얘기가 좀 무게가 있었죠 ㅎㅎ 그래도 저는 월-E를 보고 완전 뻑갔지만요. ㅠㅜ
  10. 2009/08/10 10:29 [Edit/Del] [Reply]
    잘만들었다~ 우와~ 같은 감탄사가 아니라면 영상적인 측면에는 어떤 평가를 내릴 정도로 식견이 있는것이 아니라서 저는 스토리 자체로만 이 영화를 느꼈는데요.. 아주 쉽게 접하는 사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창의성이 정말 어떤 경지에 올라있다고 느꼈습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0 19:54 [Edit/Del]
      어린쥐님, 그게 또 픽사의 매력이죠 ^^ 어른들도 즐겁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니, 뭐 경지에 올랐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11. 2009/08/10 11:43 [Edit/Del] [Reply]
    역시 픽사였죠.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인크레더블2가 더 기대된다는 ㅋㅋ
  12. 2009/08/10 14:11 [Edit/Del] [Reply]
    트랙백 타고 들렀습니다~

    업은 전작들에 비해 메시지에선 힘을 뺴고 오락적인 면모에 신경을 쓴게아닌가 생각했는데
    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어린 관객들을 조금 더 배려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0 19:55 [Edit/Del]
      루이스피구님, 하긴 [월-E]의 메시지가 많이 묵직하긴 했어요 ㅎㅎ 그래도 이 정도로 멋지게 만들어 줬다니 만족입니다.
  13. 2009/08/11 09:17 [Edit/Del] [Reply]
    에픽하이의 Fly라는 노래가 이 영화랑 이렇게 어울릴 수도 있겠는데요,
    초반에 가사를 본 후로 입에서 중얼거리며 포스팅을 읽었었네요.. ^^
    잘 읽고 갑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2 19:42 [Edit/Del]
      꼬미님, 이 글 쓰면서 Fly를 계속 귀에 달고 썼는데 여전히 좋더군요 :-) 흐흐.
  14. 2009/08/14 11:24 [Edit/Del] [Reply]
    애니메이션은 애들이나 보는 것. 이라는 편견을 깨 버리는 곳이..
    픽사와 지브리지요-_- 이번 작품도 굉장히 보고 싶네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08/15 20:15 [Edit/Del]
      제이유님, 꼭 보세요!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 랄까, 일본에서도 지금쯤 개봉하지 않았나요?
  15. 2009/08/14 18:00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무비조이입니다.

    무비조이에서 오른쪽 항상 따라다니는 아이콘으로 매일 1분의 블로그 글을 추천해서
    링크 시켜드리는 서비스를 베타테스트 중에 있습니다.

    진사야님의 <업> 글을 선정했습니다. 지금부터 내일모레 오전 10시까지 링크 걸리게 됩니다.

    무비조이 사이트 http://www.moviejoy.com 을 방문하시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16. 2009/08/15 21:25 [Edit/Del] [Reply]
    정말 보고싶은 애니네요..^ ^토이스토리때처럼 상상력이 막 솟아날 듯~
  17. 2009/08/17 09:34 [Edit/Del] [Reply]
    ㅎㅎ 완전 즐겁게 봤다는..
    살짝 묻혀지긴 하지만서도..난 할아버지의 연애담부터..
    할머니랑 헤어지기까지의 스토리도 참 좋았어요..
    눈물이 글썽해서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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