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Posted at 2009/07/18 21:46// Posted in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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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Wizard Bakery
구병모 저
창비(창작과비평사)
2009년 3월
ISBN_ 9788936433697(13) 8936433695(10)
양장본| 252쪽| 195*132mm



 빵 냄새로 시작해 빵 냄새로 끝나는 이야기. 제 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위저드 베이커리’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라면 아마 이렇게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작은 소설 속의 내용은 빵 냄새로 시작해 빵 냄새로 끝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빵 냄새가 결코 허울 좋은 유혹이 아니라는 점이죠. 그 기저에는 성장드라마라는 멋진 바탕이 존재합니다.

 주인공(이름 없이 ‘나’로 통일되어 나옵니다)이 동네 구석에 있는 위저드 베이커리를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자기 새엄마의 딸을 성추행을 했다는 누명을 어쩌다 쓰고 쫓기듯 빠져나와 피할 곳을 찾고 있었죠.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동네 구석에 있는 아담한 빵집이었고... 빵집 이름은 위저드 베이커리(Wizard Bakery). 빵집 오븐 속에 몸을 숨긴 채 기약 없는 도피가 시작됩니다. 잘못된 누명이라고 하면 될 것을, 싶은 생각이 슬쩍 들지만 그 도피 기간 드러나는 이 친구의 사정은 그 깊이가 너무나 큽니다.

 여러 모로 같은 해 옆 동네 문학상(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와 겹쳐지는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묘사 이야기로 가 보면 더 그래요. ‘내 심장을 쏴라’의 화자 이수명과 ‘위저드 베이커리’의 화자 ‘나’는 비슷한 상처를 안고 있고, 그 상처의 결과로 인해 보통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고 분란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또 이 친구들이 생각하는 걸 보면 보통 사람들의 그것을 뛰어넘어요. 희한합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열심히 도피생활을 하지요. 그 상처의 근원에는 정신적으로 결핍된 그들의 친어머니가 존재하고요.

 좀 더 들어가 봅시다. ‘내 심장을 쏴라’의 이수명은 툭하면 자살을 시도하는 어머니를 제대로 지켜 주지 못했다는 상처에 시달리고,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주인공은 어릴 적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것에 대한 상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이수명의 도피처는 수리 희망병원 폐쇄병동이고, ‘위저드 베이커리‘ 속 주인공의 도피처는 빵집 오븐 안입니다. 두 공간 모두 분명 폐쇄적인 공간임에도 열린 공간처럼 느껴지죠.

 이쯤 되면 묘한 데자뷰가 흐릅니다. 이 두 작품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죠. 거기다가 무려 같은 해, 같은 시기에 수상의 영예를 안아 버렸거든요. 아마 둘 중 한 작품을 먼저 읽고 다른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 느낌이 보다 확연히 들 겁니다. 흐름 이야기까지 걸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이건 제가 손댈 영역은 아닌 것 같아 넘어가기로 합니다. 이 글의 요지는 어디까지나 ‘위저드 베이커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거니까요.

 본격적으로 ‘위저드 베이커리’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일단 각 파트의 제목들이 재미있어요. 생명력을 의미하는 매개체인 ‘개암나무 가지’를 공식적인 첫 파트의 제목으로 지정해 놨는데, 소설 속에서 ‘개암나무 가지’가 의미하는 건 모든 일의 원천입니다. 생명력(여기서는 중요한 일)을 일으키는 원인. 비단 이 제목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제목들은 각각의 개별성을 띠고 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악마의 시나몬 쿠키, 마지팬 부두인형, 몽마, 타임 리와인더....

 ‘위저드 베이커리’는 환상문학의 그것을 닮은 기본 플롯을 살짝 빌려온 드라마입니다. 여기에 청소년서적이라는 딱지가 붙었으니 청소년들에게 보다 읽히기 쉽게 설계됐고, 문자수도 많지 않으며 페이지수도 가벼운 정도죠. 드라마의 모양새나 책의 만듦새나, 휙휙 넘기며 보기 딱 좋아요. 문제는 이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지느냐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지느냐가 될 텐데, ‘위저드 베이커리’는 (다행히도!)전자입니다. 휙휙 넘겨 읽는데도 그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 날뛰며 독자들 앞에 날아들어요. 덕분에 독자들이 몰입하기 아주 좋습니다.

 여기에는 소설 본연의 문체가 큰 역할을 합니다. 앞에서 문장 하나하나가 살아 날뛴다고 했는데,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게 바로 프롤로그 중에서도 앞부분이죠. “중불에 달구어진 설탕 냄새, 그와 함께 다른 모든 것들이 감각의 뒤편에서 들고일어난다. 지금 막 치대어 풍부한 글루텐을 함유한 중력분 밀가루의 반죽의 탄력, 프라이팬 위에 원을 그리며 녹는 노란 버터에서 일어나는 거품..” 현란한 비유 대신 보이는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데 그 힘이 놀라운 수준이죠. 그냥 책을 읽고 있는데도 그 모습을 머릿속에 고스란히 그려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위저드 베이커리’가 가진 힘의 원천이에요.

 달콤한 빵 냄새로 독자들을 잔뜩 홀려놓은 뒤, ‘위저드 베이커리’는 두 가지 카드를 들고서 Y를 선택할 것이냐 N을 선택할 것이냐를 묻습니다. 개그맨 이휘재가 “그래, 결심했어!” 라고 외치는 추억의 프로그램 ‘인생극장‘이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여기에 컴퓨터 속 프로그램이 주는 감성마저 느껴지지요. Y는 Yes의 줄임이고 N는 No의 줄임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관객에게 선택권을 던져 놓고 손을 떼어버립니다. 뒤페이지 작가의 말을 보면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아예 적어놓기까지 했죠.

 ‘위저드 베이커리’는 자신의 안에서 튀어나오는 땅콩버터 맛 대보름 빵을 닮은 한 편의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홀로 남겨져 주머니 속에서 꺼내 먹은 땅콩버터 맛 대보름 빵처럼 말입니다. ‘빵은 지긋지긋해’ 라고 뇌까리면서도 그 빵맛을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을 이입하여 이 소설 속의 모든 빵맛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이것이 과연 이 소설이 겨냥하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책이 성인 관객들에게 어떻게 느껴졌을지 궁금한 건 바로 이것 때문이겠죠.
(2009.07.18 / 진사야 / zinsayascop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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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19 12:12 [Edit/Del] [Reply]
    진사야님의 책에 대한 글은 상당히 구체적이에요. :-)
    그래서 좋습니다. 책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적어주시니 여러 모로 책을 평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7/19 22:38 [Edit/Del]
      mooo님, 어라라..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_@ ㅎ 항상 좋게 봐 주셔서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채찍(?)도 기대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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