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반두비제작위원회, 인디스토리, 비아신 픽처스, 시네마 달
올바르게 [이해하는 자세]는 예법의 기본이다
“올바른 어법은 예법의 기본이다” <반두비>를 보고 나서 문득 <드래그 미 투 헬> 속 크리스틴의 자동차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이 말이 떠올랐다. 저 말을 ‘어법’이라는 한 음절만 바꿔서 이야기하면 <반두비>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그 다음 머리를 스쳤다. 바로 ‘한 음절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으니, 소통과 접근이라는 주제로 대략 2~3개의 대체어가 지나갔다. 그 중에서 어렵사리 고른 말은 ‘이해하는 자세’라는 말.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말이 증명하는 것처럼 어떤 문화권이나 언어권의 인물과 쉽사리 가까워질 수 없다면 최소한 ‘이해하는 자세’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신동일의 손을 거쳐 탄생된 <반두비>는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첫 만남은 다소 쌉싸름했다. 이주노동자 카림(마붑 알엄 펄럽)이 떨어트리고 간 지갑을 그 옆에 있던 당돌한 여고생 민서(백진희)가 줍게 되면서 시작하니까. 카림의 지갑 속 녹빛 배춧잎들(아마도 고향에 보낼 돈이거나 출국하기 위해 필요한 비상금이었을 게다)을 바라보는 민서의 눈빛이 1초간 블링블링 반짝인다. 원어민 강사의 강의를 내심 듣고 싶어 했던 민서의 사정을 생각하면 대단한 일도 아니겠지. 하지만 그 환상은 머지않아 깨지는 법이었다. 그 지갑을 찾으러 온 카림과 다시 조우하면서 두 사람의 악연(?) 아닌 인연은 물꼬를 튼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모든 건 민서의 이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다음에 도움 필요할 때 도와줄게, 여기서 우리 접자!“ 얼핏 들으면 도둑으로 몰릴 위험을 피해 가는 모습이니 거 참 영악한 친구일세, 하는 생각이 든다. 헌데 이 한 마디가 뒤에 가서 불러오는 것들은 실로 의미있는 것들이다. 그 한 마디가 민서와 카림의 관계를 연결하는 초석이 되었고, 그 초석이 바탕이 되어 함께 다니며 말을 섞으며, 이로 인해 두 친구는 외로움에서 구제받고 한 꺼풀씩 성장하고 깨닫는다. 민서는 보다 주변인들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법을 배웠으며, 카림은 끝이 아름답지 못했을지언정 말미에 소통의 짜릿함과 따스함을 느끼지 않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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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씬한 성장영화의 초상
이쯤 되면 <반두비>가 늘씬한 성장영화라고 칭해도 별 무리가 없지 않느냐고? 맞다. <반두비>는 타자를 올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동시에, 그 질문의 답을 제시하고 그 부수적인 증거로 두 주인공의 성장한 모습을 비추는 성장영화다. 그 영악함이 다소 (한국의 인식과 비교하여)도를 넘는 것 같아 ‘어, 위험해!’ 소리를 지를 법도 한데, 그런 생각이 끝끝내 들지 않는 것은 이 영화 속 서사들이 하나하나 살아 움직이며 소통과 이해에 대한 개론서 역할까지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굳이 말로 풀면 이렇다. “자 여러분, 이제부터 소통과 이해의 본질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헤집고 나가 볼 거예요. 동의하기 어렵다면 안 따라와도 돼요. 하지만 이 시간을 거치면 여러분들은 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질 거랍니다.”
그렇다면 그 ‘성장영화의 틀을 덮어쓴 소통과 이해의 개론서’가 갖는 본질은 대체 어떠할까. 이 영화를 통해 신동일 감독은 진정한 소통과 이해란 남이 자신의 물결에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남의 물결에 뛰어들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관객에게 설파한다. 가령 민서가 카림에게 질문하는 ‘때 색깔’ 질문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극중 민서가 카림에게 묻는다. 몸 속의 때 색깔이 어떠하냐고. 카림이 대답한다. 너(민서)랑 똑같다고. 따지고 보면 피식 소리가 날법한 우스운 질문이지만 이 짧은 대화가 다른 사람의 물결에 어떻게 뛰어들면 되는지에 대해 가르쳐준다. 중요한 것은 이는 열일곱 여자 고등학생이나, 스물아홉 이주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가르침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 허나 너무나 몰랐던 것들.
이런 ‘뛰어들기’의 미학은 민서의 집에서 민서가 카림의 모습을 따라 방글라데시 식의 식사를 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극중 민서는 자신이 살아 온 세계의 문화를 일부러 카림에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카림의 세계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고, 엄마와 엄마의 애인에게 카림을 거침없이 소개한다. 그것이 호기심의 일환일 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적응의 미학이다. 한국이라는 세계에 흡수되기 위해서 굳이 한국의 문화를 따라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김치를 좋아하고 한복을 즐겨 입고 한국의 전통 문화의 열렬한 팬이라고 그것이 개념 충만한 외국인의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간단한 사실조차 모르는 우매한 한국인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이 무심코 지나갈 법한 장면은 이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똑똑히 기억시키고야 만다.
후반 들어가는 시점에 등장하는 민서와 카림의 키스 장면 역시 이런 미학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섹슈얼한 상상을 개입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 상상을 거세하고 생각하면 명백히 두 사람이 드디어 진정한 의미의 소울 메이트가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 한 칸이 흐뭇해진다. 앞서 진행되었던 모든 과정들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종착점이자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모습의 실체. 이 장면이 약간 길게 느껴졌던 건 그 소울 메이트의 성립이 놀랍고 과격하기도 했지만 따스함이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일 것이다.

ⓒ 반두비제작위원회, 인디스토리, 비아신 픽처스, 시네마 달
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영화
모처의 <반두비> 리뷰에 달린 댓글 하나가 기억난다. 댓글의 요지는 대략 이러했다. 이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첫 번째 촛불 영화가 되겠느냐고. (익스트림무비 류상욱님 리뷰 - 'A셀'님 댓글에서 인용) 물론 <반두비>에서 작금의 아고라와 정치계 블로고스피어, 촛불 문화의 분위기를 읽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조롱당하는 현 대통령의 초상이 그대로 드러나고 보수언론에 대한 경계심이 하늘을 뚫을 듯 치솟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허나 한 마디만 해 두자면, 그 위험 가능 수위만큼이나 이 댓글의 요지는 초점이 다소 어긋났다는 거다. 분위기가 그럴지언정 본질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분위기의 그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구구절절 이야기했다시피, <반두비>는 그 소통과 이해의 기본 메시지가 너무나 강렬하기에 이 세상 모든 이에게 필요한 영화다. 당신이 어느 성향을 지지하고 있는가는 상관없다. (아, 진보 세력에 악감을 품고 있는 일부 보수 세력은 예외이려나?) 꼴통보수든 패션진보든, 진정한 의미의 진보든 진정한 의미의 보수든, 이도 저도 아닌 것이든지 간에 상관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공식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2,467명의 누적 관객 수는 그야말로 혀를 차게 만든다. 물론 도의적인 차원에서 <반두비>를 꼭 보세요! 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중요한 건 관객들의 의사에 달렸으니까. 허나 한 번쯤은 이런 말끔한 성장 개론서에 발을 디뎌 보는 것은 어떨까? 기회가 닿는 길에 용기 내어 접한다면, 마음에 쏙 들지 않을지라도 가슴 한구석에 거대한 울림을 영접할 수 있을 것이다. ★★★★ (Rate 8.5/10)
(2009.07.04 / 진사야 / zinsayascope.com)
*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과연 정치계 블로고스피어 속 그 수많던 ‘진보 표방’ 블로거들이 이 영화를 과연 봤을까? 하는 거였다. 다음 뷰에서 검색한 결과 눈에 띄는 건 한 분밖에 없더라. 분명 이들에게도 큰 생각거리를 던져 줄 영화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보고 피드백이 넘쳤으면 좋겠으나 유감스럽게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아고라와 웹 속의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인해 너무도 빨리 이 영화에 등을 돌려버린 건 아닌지 싶은 생각마저 들어 갑갑하다. 아니, 지금 다시 생각하니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영화가 있다는 사실마저 모르는 건 아닐까? 라고. 그러면서 일부는 “나도 트랜스포머 볼래!” 라며 로봇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겠지. 소독 차량 뒤를 마냥 쫓아가는 호기심 왕성한 어린 친구들처럼 말이다.
만약 이런 로봇들에 홀려 이 영화를 몰랐다고 잡아뗀다면, 그건 그만큼 그들만의 아고라와 세계에 갇혀 있었다는 증거임이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 좁은 세계에서 나와 세상을 조금 더 들여다보시기를. 그런 차원에서 이 리뷰를 포함해, <반두비>의 리뷰들이 모쪼록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를 직접 보고 이야기한 사람과, 안 보고 궤변을 일삼는 사람은 엄연히 다르니깐. :-)
* 이 글에 실린 <반두비>의 모든 포스터, 스틸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립니다.
해당 자료들에 대한 저작권은 ⓒ 반두비제작위원회, 인디스토리, 비아신 픽처스, 시네마 달에 있으며,
영화의 국내 판권은 인디스토리가 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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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블로깅을 추구하는 진사야의 놀이터입니다. 부디 여기서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peace :-)





격론이 있었습니다. 운영진 세명이 모두 정치적 입장이 틀리다보니..
처음 글 적은 친구가 엄청 과격하게 적었고...
그것때문에 도와주시는 2분까지 합해서 5명이서 엄청나게
격론을 벌이고 이야기를 나누었죠...
결국 서로 이야기를 해서 편집권을 가지고 있던 제가 엄청 부드럽게
유화시키기는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서로 다른 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야기하고 서로 으르렁 거렸지만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어주고해서 다섯명 전원이 함께 참여한 영화평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반두비는 올해 들어서 무비조이 운영진 모두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영화가 되었습니다.
관객수가 참 안습이더군요. 순간 저게 내가 제대로 본 숫자 맞나 싶은 의문이 잠깐 들었습니다. 아무리 트랜스포머에 밀렸다고 해도 저 정도인가.. 싶었고요.
저도 이 곳에 있으면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만났던 네팔분이 생각나요.
뭐랄까, 편견이란게 저도 모르게 제 속에 없지 않아 있었는데,
나중에는 정말 존경하게 되더라구요. 대단한 분이면서 멋진분이었어요.
그 이후로 늘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편견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봐서는 안되겠다고.
글을 참 잘 쓰시네요^^ 위드블로그에서도 인터뷰 기사를 뵌거 같은데 ㅎ
반두비 보고 리뷰쓰다가 포털사이트들의 영화게시판의 댓글들보고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편견이 이정도로 심했던가, 거기에 왜 이렇게 공격적인가...
'영화의 완성도'는 논외로 치더라도 사람들이 이런 영화를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의견과 고민들이 '토론'속에서 정제될거라는 생각도 해보구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저는 바로 몇 시간 전에 다음 아고라 국제 토론방 쪽에 올라온 비방 글을 읽었는데 그야말로 기가 차더랍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 마음에 안 드3'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들 꺼내시는 게 무섭더랍니다. 그 제한된 영역의 상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더 떠벌릴지 참 걱정됩니다 :-/ 좀 알아서 자제하셨으면 좋겠어요.
참..그렇죠..? 밑에 추신으로 다신 말씀이 저도 씁쓸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시사회에서 봤는데, 보고 난 며칠 후 평들이 어떤가하여
네이버에 들어가보았는데, 참 영화를 보는 시선이 다종다양(?)하더군요.
진사야 님 말씀대로 영화에서는 줄곧 소통을 하자고 주장하자고 있는데,
왜 그렇게도 기본적인 혹은 최소한의 소통도 안하려드는 사람들이 많은지요..;
그건 영화의 내용이나 주제의 문제가 아닌, 분명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이와 별개로 저는 이 영화가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조금은 동떨어진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조금 더 세련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소위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가끔 때로는 '진심은 통하게 마련이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탓에, 조금은 거친, 조금은 불편한, 또는 조금은 덜 정제된 언어로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만, 가끔 그게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왜 그렇게 매끄럽고, 유려하지 못하는 걸까...하고 말입니다.
매끄럽고 유려하다고 해서 덜 진심인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뻘소리 같지만, 이 영화를 보고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저도 '일단은 보고 말하세요'라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만...
뭐..아무튼 간에 저도 트랙백 남기고 가도 괜찮겠지요..?
남기고 가겠습니다.
ps. 진사야 님은 씨네21 사이트에서 종종 이름을 뵈서 그런지
낯설지가 않군요.^^ 저도 가끔 놀러가거든요.
트랙백 창구는 항상 활짝 오픈하고 있습니다 ^_____^ ㅎ 감사합니다.
* 으하하하; 저 단단히 이름이 날아다녔나 보군요. 앞으로는 언행을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T_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