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헤르만의 홀로코스트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어울리지도 않게) 조용히 홈비디오로 출시됐다. 이 부당한 처사에 대한 분노는 잠시 뒤로 미뤄두어도 좋을 듯 하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영화들 중에서 그래도 관객에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것이 다행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큰 극장에서 보면 더 멋지겠지만, 철조망을 사이에 둔 두 소년의 우정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애써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보고 판단을 하자. 동명의 원작 소설을 읽으며 무수히 머리 위에 떠올린 수많은 이미지들을, 드디어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 세계가 궁금했다. 과연 영화에서 어떻게 그려냈을까. 지금부터 들어가 보자. 그 처연한 세계로, 경계선을 초월하여 두 손을 맞잡은 두 소년의 이야기 속으로.
(2009.06.20 / 진사야 / zinsayascope.com)

 지난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극장가에 느닷없는 2차 세계대전 영화들의 물결이 일었다. 브라이언 싱어의 <작전명 발키리>, 에드워드 즈윅의 <디파이언스>, 스티븐 달드리의 <더 리더 : 책 읽어 주는 남자> 등 2차 세계 대전, 그 중에서도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거나 그 이후의 후폭풍을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 유난히 세계 극장가를 강타했다. 비록 전체적인 스토리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소재가 흡사 마르지 않는 샘처럼 흔하게 쓰인 탓에 이제는 되려 지루해질 법도 한데, 이게 끝이 아니다. 올해 가을에는 그 이름만으로도 골수팬들의 심장을 절로 벌렁거리게 만드는 또 다른 홀로코스트 배경 영화, 타란티노의 <인글로리어스 바스터즈>가 기다린다. 이런 흐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제까지의 흐름을 통해 어림짐작은 가능하다. 이 망령과도 같은 소재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객들의 눈에 들이닥칠 것을.



 이토록 단 몇 개월 만에 꽤 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선을 보여 왔지만, 이 물결의 선두에 한 영국산 독립영화 한 편이 위치하고 있단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본토인 영국에서는 작년 9월 중순에, 그리고 북미에서는 11월 초에 개봉한 마크 헤르만의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yjamas)은 앞서 이야기한 작품들에 비해 힘이 세지는 않을지언정 그 시점의 파격으로 인해 일찌감치 화제선상에 올랐다. 기존 홀로코스트 영화들이 이른바 어른의 시점, 그러니까 험한 일 다 겪는 성인들의 세계를 다루고 있어 폭력의 잔혹함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던 데 반해 이 영화는 불과 여덟 살밖에 안 된 (그것도 유대인 강제수용소 소장 아버지를 둔)남자아이의 시선으로 홀로코스트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007년 독자가 뽑은 아일랜드 '올해의 상' 수상작이자 같은 해 카네기상 후보에 오른 존 보인의 원작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바탕으로 비주얼이라는 매끈한 살을 붙인 이 영화는 인상적인 흥행 성적을 뽑아낸 건 아니었지만 현지 비평가와 관객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데 성공했다.

 한국 개봉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커져 갔다. 가능성은 높았다. 아무래도 독립영화인 탓에 접근이 어렵다는 것 정도가 불안 요소였다. 허나 이 영화를 수입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수입사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성질 급한 누리꾼들은 불법 리핑된 디빅스(divx) 소스로 발빠르게 이 영화를 접했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이 영화를 배급한 미라맥스 측은 한국 개봉에 대한 희망을 버리기에 이르고 5월, dvd 출시 소식이 들려오기에 이른다. 원작 소설을 가슴에 끌어안고 어떻게든 꼭 극장에서 보겠다며 디빅스의 유혹마저 저 멀리 날려 버렸던 팬들의 마음에 기어이 구멍을 만들어 버리는, 허망한 결과였다. 여기에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는 8월 초 개봉 날짜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1. 나라 사이의 거리는 이토록 짧은데, 한 국가에서는 극장에서 볼 수가 없고 다른 한 국가에서는 볼 수 있다는 것이 브루노와 슈무얼 사이를 가르던 차가운 철조망과 다르지 않다.

 이야기가 어찌됐건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정식 개봉할 가능성은 홈비디오 출시가 된 5월 13일 이후 저 멀리 날아가 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홈비디오를 통해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홈비디오라도 볼 수 있는 게 어딘가. 원작 소설을 미리 접한 사람들에게는 읽으면서 되뇌인 상상의 지도들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아직 원작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린 소년의 눈에 보이는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강렬한 영상을 통해 확인할 기회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냐고? 독보적인 완성도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어른들의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시점에서 발생하는 우정과 영혼의 가치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장담하건대 이 영화는 단순 홀로코스트의 이념 표출 영화가 아닌, (비평가 로저 에버트가 내린 평을 인용하여) '바이러스처럼 끈질기게 살아남는 가치에 대한 영화'2 이니까.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치는 홀로코스트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0년대 초. 여덟 살짜리 한 꼬마아이가 있다. 이 소년 브루노(에이사 버터필드)3는 막 승진한 아버지, 그리고 가족과 함께 정겨운 베를린 땅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왔다. 소년은 자기가 어느 지역으로 이사를 왔는지, 그리고 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바로 알지 못한다. 다만 중요한 건 베를린을 떠났다는 것이고, 이것은 바로 몇 시간 전까지 함께 뛰어놀았던 친구들과의 이별을 의미한다는 것 정도. 이 꼬마 신사의 시선에는 이 모습들이 한없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그냥 베를린에서 살 수는 없는 거야? 거기다가 새로운 집은 예전 집보다 낡았고 규모도 작을뿐더러, 주변에 볼거리라고는 울창한 숲밖에 없다. 결국 소년은 스스로 재미를 찾아 보려 하는데, 이사를 온 이후 뭔가 이상한 풍경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저 멀리 보이는 줄무늬 잠옷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주변 세계. 가족들은 그 세계를 두고 '이상하다' 혹은 '그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야' 라고 한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아일랜드 작가 존 보인이 쓴 소설이자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기도 한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너무나 흔해 빠진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삼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울림을 선물했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기존 어른들의 세계가 쓰고 있는 색안경을 벗은 채 한 아이의 시선으로 홀로코스트를 관통하고 있었다는 기본적인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어린 친구들은 아주 기본적인 청각이나 시각, 이야기들을 통해서 자기 세계의 처지를 단편적으로밖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야기는 아주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그들의 순수한 눈을 통해 독자들은 명분 없는 전쟁과 폭력이 사람들의 마음에 구멍을 뚫는 과정을 서서히 목도한다. 전쟁과 폭력, 피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아도 철조망 사이에 피어오른 우정을 통해 전쟁과 인종간 대립에 의혹의 메스를 들이대는 이 기묘한 책 한 권이 그 세계로 빠져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런 영향력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날선 세계를 스크린 안에 녹여내면 어떻게 될까. 모든 소설 원작 영화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역시 원작에서 큰 힘을 빌어온 결과물이다. 허나 그 모습이 살짝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300페이지가 가뿐히 넘어가는 한 권의 책을 불과 95분 분량의 영화로 옮기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고민이 들어가는 법. 그래서일까? 원작 속 자잘한 암시와 요소들이 거세되었고 브루노의 의문 섞인 탐구 시선이 보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동시에 주변인들의 역할이 원작에 비해 한결 부각되는 등, 몇 가지 사항을 빼고 넣은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추구하는 중요한 것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스크린을 통해 투영되는 그 세계가 원작과 마찬가지로 철조망이라는 기본적인 결박 요소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것. 가령 브루노의 가족이 이사를 온 새 집의 (흡사 철조망을 연상시키는) 층계참 구조의 모습이나4 그림자 등이 그렇다. 영상으로 옮겨졌기에 더욱 힘을 싣는 이 장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미묘한 폐소공포를 유발함과 동시에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가늠하는 영상의 미학으로 자리잡는다.



금지된 우정관계가 빚는 무게
 절로 숨이 턱턱 막히는 이런 집 안에서 벗어나 집 밖 탐험을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소용돌이로 소년 브루노를 인도하기 시작한다. 숲 속을 뛰어다니다가 발견한 철조망, 그리고 그 반대쪽 세계에 또 다른 소년 슈무얼(잭 스캔론)5이 있다. 브루노와 슈무얼, 이 두 친구는 만남과 동시에 인사를 나누고, 대화의 선을 튼다. 허나 이 둘 사이에는 마음 놓고 친해질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이 있다. 철조망 바깥에 선 브루노는 강제수용소 소장으로 발령받은 아버지(데이비드 튤리스)를 둔 독일 소년이요, 철조망 안쪽에 선 슈무얼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소리까지 듣는)유대인의 자손이다.

 물론 이 둘은 이 두 신분 상의 차이가 당시에는 얼마나 어마어마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저 외로웠던 차에 나이가 같은 친구를 만났다는 절대적인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함께 체커 놀이를 하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겨역사의 무게를 거세한 이 발칙하고 기묘한 우정 관계가 당시 상황과의 아이러니함을 빚으며 약간의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이 기묘함의 무게가 너무나 묵직하기에 이야기의 말미에 선물하는 충격파가 더욱 아찔하다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수많은 변화가 생겨났지만 그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브루노의 시점에만 의지하지 않고 각 캐릭터들의 정체성이 보다 부각되어 보인다는 것이다. 브루노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어째서인지 줄무늬 잠옷을 입고 감자를 깎는 일만 하는 파벨(데이비드 헤이만)6, 코틀러 중위(루퍼트 프렌드)의 영향을 받아 나치 소녀단에 가입하고 서서히 나치의 사상에 경도되어 가는 브루노의 열두살 누나 그레텔(앰버 비티), 시사 책만 읽을 것을 권유하며 역사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주저하지 않는 가정교사 리스트(짐 노튼), 강제수용소의 진실을 뒤늦게 깨닫고 그 세계에 대한 환멸감을 숨기지 않으며 파리해져 가는 브루노의 엄마 엘사(베라 파미가)7 8. 이런 각 캐릭터들의 모습들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사회망 자체의 아이러니를 실체화시킨다. 따지고 보면 모두 같은 사람들이다. 근데 왜 어떤 사람은 유대인이라 고통받고, 어떤 사람은 유대인이 나쁘다 하고, 어떤 사람은 환멸감에 떨어야 하는 걸까.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이 이유에 대해 굳이 명쾌한 답을 제기하려 들지 않는다. 오로지 이 모습들을 브루노의 시선을 통해 노출시키고, 그 소름 끼치는 현장을 영상으로 옮겨와 관객들의 판단에 맡기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사실 답을 영화 속에서 제기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알 수 있다. 이 온갖 비정상적 아이러니로 직조된 풍경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해피엔딩을 부르지는 못할 것을. 브루노와 슈무얼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함도 들지만 내심 활짝 미소짓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절대적인 사실이 뒤로 갈수록 수면 위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사실의 후폭풍은 흡사 날아갔다 되돌아오는 부메랑처럼 우리들에게 되돌아온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못 슬프다.



그 아이러니함을 목도할 것
 영화의 첫 장면, 존 베처먼의 한 명언이 등장한다. "유년기는 이성의 어두운 시간이 자라기 전에 소리와 냄새와 시각에 의해 재단된다 (Childhood is Measure out by sounds and smells and sights, before the dark hour of reason grows.)"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순수함의 모습으로 재단된 전쟁과 폭력의 참상일 것이다. 작은 쇳덩이를 던지자 찌릿 소리를 내며 반응하는 철조망만큼이나 그 참상은 피의 노출만큼이나 끔찍함을 유발하는 힘을 갖추고 있다.

 원작 소설에서 흥미를 유발했던 몇 요소들이 영화로 넘어오면서 거세된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는 한다. 가령 철조망을 사이에 둔 브루노와 슈무얼이 자신들의 마크인 다윗의 별과 나치 마크를 땅바닥에 그려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는 모습은 안 들어간 게 되려 안타까울 정도로 영상으로 보고 싶었던 장면이다. 허나 중요한 것은 그 분위기를, 그 생각했던 모습들을 충실히 보여 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흡사 못 먹을 것을 삼킨 느낌이지만 이것 자체는 필경 우리 역사의 일부다. 그렇기에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21세기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들 중 한 편이다. 때로는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를 목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각주
  1. 일본 지역에서는 8월 8일에 개봉한다. 그렇게 많은 곳에서 걸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어떻게 홍보물 구할 수 없을까나. 출처_ http://us.imdb.com/title/tt0914798/releaseinfo [본문으로]
  2. 평문 번역은 네이버 영화란 참조. [본문으로]
  3.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이 영화를 찍을 시절 에이사 버터필드는 10살이었고 슈뮤엘 역의 잭 스캔론은 여덟 살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같은 여덟 살로 설정되었지만 실제로는 두 사람 사이에 두 살 차이가 있는 셈. [본문으로]
  4. 정식 라이선스 dvd에 포함된 마크 헤르만과 존 보인의 오디오 코멘터리에 언급되는 내용을 인용하였음을 밝혀둔다. [본문으로]
  5. 사실 이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한 가지 상당히 잘못 소개된 게 있다. 바로 극중 슈무얼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 잭 매툰 오브라이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 극중에서 슈무엘 역을 맡은 배우는 여덟 살 아역 잭 스캔론. 잭 매툰 오브라이언은 극 초반 브루노와 비행기놀이를 하며 노는 세 친구들 중의 한 명으로 등장한다. 엔딩크레딧에서도 멀쩡히 확인이 가능한데 아무래도 크레딧 위치 때문에 많은 분들이 헷갈리신 듯 하다. 아무튼 혹여 아직 이렇게 알고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바란다. [본문으로]
  6. 극중 파벨 역을 맡은 배우 이름은 데이비드 헤이만(David Heyman). 영화의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는 데이비드 헤이만(David Hayman)과 같은 발음으로 불리는 탓에 헷갈리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영문 이름에서 눈치챘겠지만 a와 e의 차이다. 사실 이 영화 자료를 찾으면서 나도 헷갈렸던 부분인데 차이를 알고 나니 어느 정도 알겠더라는.. [본문으로]
  7. 주인공인 브루노와 슈무엘을 제외하고,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 주는 캐릭터인 브루노의 엄마 엘사. 원작 소설과 비교해 가장 존재감이 늘어난 캐릭터이기도 하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름이 특별히 나오지 않는데 여기서는 나온다)방관하는 입장에서 환멸하는 입장까지 다양하게 뻗어나가는 엘사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한 베라 파미가는 이 영화로 2008 영국독립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출산 문제로 인해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하고 대리수상해야 했지만. [본문으로]
  8.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베라의 전작 <두번째 사랑>을 감명적으로 본 관객이라면 정겨움에 절로 몸이 씰룩거리는 장면이 하나 보인다. 바로 뜨개질 장면. 총 두 번 나오는데 난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장면이 <두번째 사랑>의 오마주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아무튼 결론은, '그녀의 뜨개질하는 모습은 여전히 너무너무너무너무 예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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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6/21 00:28 [Edit/Del] [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21 12:20 [Edit/Del]
      아하하 그럴 리가요; 웹진의 방향과 엇갈리는 리뷰들은 일부러 송고를 안 했던지라.. 게시판에도 적었지만 정모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오래 놀지 못한 게 아쉽군요 ㅋㅋ
      방금 송고 날리고 오는 길입니다. 항상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
  2. 2009/06/21 09:19 [Edit/Del] [Reply]
    어찌보면 식상한 보일 수 있는 소재의 식상한 내용이지만 꽤 괜찮은 영화였어요.
    진정성은 어떻게든 통하나봐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21 12:21 [Edit/Del]
      EastRain님, 맨 마지막 가스실 장면이 정말 모든 걸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미 원작 소설로 알고 있는 장면임에도 소름이 쭉 돋더군요.
  3. 2009/06/23 10:20 [Edit/Del] [Reply]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소수영화에도 관심이 많은 편이긴한데...처음 듣는 영화를 발견하고 기뻐서 읽고 돌아갑니다.^^;;;헤헤.특히 중간에 사진 올리신 거...정말 인상적이예요.사진에도 관심이 많아서 한참을 보다 가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23 19:53 [Edit/Del]
      필그레이님, 대개 이렇게 부가판권시장으로 바로 가는 영화들은 묻히는 경향이 상당히 짙어요. 그 중에서도 부각되는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가령 <슈퍼배드>나 <사고친 후에> 등등..) 그건 매체에 실리거나 방송을 통해 알려지거나의 경우가 다죠. 이미 어둠의 루트를 통해 퍼질 대로 퍼진 상황인 경우도 많아서 그냥 단속적으로 알려지고 마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게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도 마찬가지였어요. 북미 시장에 정식 홈비디오가 풀린 게 지난 3월 초였고, 며칠 지나서 바로 웹하드에 디빅스가 나돌아다니기 시작했죠. 그 때만 해도 '저건 꼭 개봉하고 나서 볼 테야' 하고 허벅지를 열심히 찔러댔습니다만(당연히 디빅스로 볼 생각 따윈 없었긴 했네요).. dvdprime 쪽에서 출시 소식 접하고 한동안 멍해 있었습니다 정말 ㅠㅠ 배급사를 폭파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게 참 순간이더군요 -ㅂ-); 근데 마냥 배급사 욕할 일도 아니니 이것 참..
      그래도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통해서 소개도 되었고(06/06 접속무비월드) 워낙 원작 소설이 호응을 얻었던지라 직접 찾아 보신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원작 소설의 영향이기도 하겠고, 저처럼 배우 때문에 찾아 보신 분들^^;;도 분명 계실 것 같네요. 이 점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런 영화들이 안 묻히고 계속 담론이 돌아다니는 건 분명 성과로 쳐 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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