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필름2.0 중에서 가장 아끼는 340호와 364호(창간 7주년 기념호).


뭐라고 첫 마디를 떼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스럽다. 이번만큼 글의 첫 마디를 떼기 힘든 적도 참 오랜만의 일이다. 그러니까 이번 달 17일의 일이다. 나는 평소대로 영화주간지들을 사기 위해 부평역 가판대로 달려갔었다. 당시 나는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판대에 들러 영화주간지들을 사는 것이 거의 습관이 되어 있던 터였다. 가판대에 진입하자마자 보이는 대로 한 권씩 집어서 카운터로 가져가는, 적어도 이 단순무식(?)한 영화주간지 지름 패턴 (굳이 떠오르는 말이 없으니 일단은 이렇게 정의 내리자.) 이 크게 흐트러진 적은 거의 없다. 그 날도 평소대로의 패턴을 고스란히 따르며 한 권씩 집어 들려 했다. 우선 ‘씨네21‘을 먼저 집어 들고 그 다음 ’무비위크‘ 쪽으로 눈길이 갔다. 표지를 슬쩍 보고 난 뒤 이건 잠시 패스하고, 자 이제 ’필름2.0‘을 찾아보자. 그런데.

어라?

그 찰나의 시각 이후 내 머릿속에 끊임없이 물음표가 교차하고 있었다. 분명 가판대 자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어야 할 그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왜 그렇게 긴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다른 데 있나? 없을 리가 없는데..’ 했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주위를 둘러 봐도 ‘필름2.0’의 신간호는 웬걸, 보이지 않았다. 이거 뭔가 불안하다 싶어 주저 없이 가판대 아저씨에게 여쭈었다. ‘혹시 필름2.0 안 나왔나요?’ 이런 맙소사, 어쩌면 머릿속에 숨어 있던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그 말을 내뱉게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약속이라도 한 듯 사실이 되어 내 피부에 차갑게 스치고 지나갔다. ‘응, 안 나왔네? 소문으로는 회사가 상황이 안 좋아서 이제 안 나오는 거라던데.’ 그리고 그 뒤에 붙는 말은 내 마음 속 불안감에 불을 질러 버렸다. 다음호 역시 나올지 말지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무게를 가득 실어 버린 말을 듣자 당혹감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 징조를 아예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 될 테지만 그게 현실로 다가앉은 모습과 마주하니, 뭐라 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무슨 일이 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도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갑갑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해야 할까.



- 예고 없는 휴간에 필름2.0 웹사이트에는 문의를 해 오는 독자들의 글이 쇄도했다.


문득 ‘필름2.0’과 처음 조우했던 때를 떠올렸다. 실질적으로 처음 만난 건 2006년 초 -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잡지들을 기준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 다. 본격적으로 사서 보기 시작한 건 2007년 초부터의 일이고, 같은 해 여름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1주일에 한 번씩 가판대에 가서 사 보는 것이 버릇이 됐다. 어쩌면 같이 사서 보는 ‘씨네21’만큼이나 더 애착을 가지고 사서 봤던 잡지. 여타 타블로이드나 영화잡지들에 비해 ‘필름2.0’이 주는 - 저널리즘이라는 주체성에 기초한 - 글의 감흥이 생각 밖으로 강력해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주 1000원씩 지출하여 모은 잡지들이 어느덧 책장 한 구석을 빼곡히 채우고도 남을 정도의 규모가 됐고, -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 그 모습을 보면서 나름 흐뭇했던 기억도 든다.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필름2.0’을 특별히 마음 한 곳에 두게 된 계기가 된 것은 그 특유의 기사들이다. 개중에는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훨씬 높여 주는 기사들도 있었고,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성향의 기사들도 있었다. 그래서 영화주간지들 간 비교를 하는 것도 의외의 재미가 있었고, 보다 다양한 글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 최소한 잡지를 붙들고 그 속에 든 기사의 내용과 동화되는 그 짧고 긴 시간들 동안 말이다. 최근 들어와서 영화지라기보다는 문화지 쪽에 좀 더 기울어지는 느낌이 적지 않아 예전과 똑같은 감흥은 느끼기 어렵게 됐지만, 매주 즐거움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필름2.0’은 기꺼이 1000원 이상의 금액을 지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품은 적도 있다.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말 외에는 아무 것도 들은 바가 없어 추측이나 상상은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바로 생각나는 것은 어딘가에서 본 ’한국 문화잡지의 위기’ 에 대한 이야기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종이잡지의 위기론 역시 떠오른다. 이런 위기론들이 대두되는 것은 사회적인 인식 문제를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이런 여러 문제들을 뒤로 하고서라도 곁에 가까이 했던 잡지들이 사라진다는 것 자체로 이야기해 보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마치 주변 친한 사람이 갑작스레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 후 느끼는 슬픔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그 두려움과 불안함, 그리고 슬픔은 지금 이 시각에도 머릿속을 꾸준히 잡아먹고 들어간다.


- 이번주 토요일(20일) 발매 예정인 필름2.0 419호. 그런데 문득 불안감이 먼저 드는 건 왜일까?


한 주를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휴간한 이후, ‘필름2.0’은 다음 호인 419호를 예정대로 발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매 예정이었던 419호도 결국 나오지 않았군요. 안타깝습니다. - Thanks 송씨네님) 그러나 이 신간호 소식이 무수히 들려오는 소식과 추측들이 반가움보다는 앞으로 닥칠 또 다른 불안함으로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한 영화저널의 운명과 마주하고 있는,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무언가의 공포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1주일에 1000원씩을 보태 줄 처지에만 묶여 있는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답하기까지 하다. 파도처럼 무수히 돌고 있는 위기론에만 쓸려 떠다닐 뿐, 정작 그 위기론을 타개할 도움을 개인적으로 주기에는 힘이 부치는 일반 시민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필름2.0’의 뜬금없는 휴간은 어처구니없고 슬픈 일이다.  그 스러지려 하는 한 매체를 통해 지금 드는 모든 마음을 그러모아 당장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뿐이리라.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오 제발, 부디, 살아 남아요....‘


(필름2.0 340호 중 - <두번째 사랑> 특집기사 : '검은 눈과 파란 눈의 사랑을 찍다')

이런 멋진 기사들을 앞으로 또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분명 슬픈 일이에요. - by 진사야


http://www.zinsayascope.com/trackback/22

  1. 2008/12/22 15:14 [Edit/Del] [Reply]
    왜 늘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지, 또 왜 그게 당연한 현상이 돼버렸는지.. 아쉬움 금할 길이 없네요..

    참, 네오이마주 게시판 통해 들렀습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8/12/22 18:09 [Edit/Del]
      요즘 들어 부쩍 상황이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이건 비단 필름2.0의 이야기만이 아니겠죠.
      특히 문화잡지 계열은 더 고전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 선전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니... 독자로서는 안타까울 뿐입니다.

      네오에서 와주셨군요. 반갑습니다 :-)
  2. 2009/03/17 22:23 [Edit/Del] [Reply]
    FILMON에서 트랙백 타고 들어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어줍잖은 아마추어 영화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영화전문지는 꼭 살아남아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예전에 키노, 엔키노, 씨네21(온오프라인 모두), 필름2.0(온오프라인 모두) 등등 이 사이트나 잡지를 통해서 영화에 대해 알고 좋은 영화글 보면서 꿈을 키웠던 적이 있기때문입니다. 특히 제가 개인적으로 최고의 영화잡지이자 사이트라고 생각했던 키노와 엔키노 몰락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무너질 것 같이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달전부터 정말 최근에 그나마 아끼던 필름2.0이 이렇게 또 몰락하는 것을 보려니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저 같은 아마추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정말 영화에 대해 박식한 전문가 지식을 가지고 영화를 보시는 분들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영화잡지는 이런 전문가분들이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보금자리 같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 잡지보면서 저도 배우게 되는 것이구요 ㅠㅠ

    그런데 자꾸 사라져갑니다. 이런 영화전문지들이 사라져가고 그 자리에는 단발성 평점으로 영화를 평가하는 온라인 사이트만 기세를 얻어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온라인 영화사이트 운영하는 입장에서 뭐라할 처지는 안되지만.. 홍보성 배포자료를 마치 리뷰처럼 올리는 기사들 볼때마다.. 엔키노가 그리워지고 필름2.0이 그래도 역시 최고야..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런 단발성 홍보용 기사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는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도저히 받아들이려고 해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이 사라지고 나면 아마추어들 역시 결국에는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 겨우 영화잡지 하나 없어지는데 다른 분들이 보면 무슨 댓글을 이렇게 길게 적나 그렇게 생각하실 것 같네요.. 그만큼 제 마음이 답답한가봅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3/17 22:30 [Edit/Del]
      무비조이님, 이 블로그는 소신이 담긴 긴 댓글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ㅎㅎㅎ 살짝 농이 섞여 있긴 하지만 진심이죠. 댓글 잘 읽었습니다.

      전문지의 중요성은 몇 번 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최근 [키노]를 우연한 경로로 구매해 봤는데 참 멋지더군요. 원론적으로는 무비조이님 말이 맞습니다. 근데 어딜 가나 현실이 문제라고 재정난으로, 각종 문제로 사라지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특성상 재정의 손실을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이 잡지 순수익 외에 광고수입밖에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여러 모로 위험성 다발 (만약 이 광고수입이 뚝 끊긴다면?) 인 수익 모델로 굴러가는 것이 영화잡지가 아닐까 싶어요. 일련의 안전망이 뒷받침되는 게 없으니 기본적 수입이 저조해지기 시작하면 머지 않아 흔들리게 되는 게 다반사구요.

      참 안타까운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 같아요. 근데 윗분들이나 상위 언론들은 오로지 최고!만 추구하시니 참 난감할 따름입니다. (최근 워낭소리 광풍도 이런 분위기가 만든 자화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류가 아닌 이류도 있어야 어떤 문화가 잘 굴러갈 수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너무 눈 앞에 보이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 거죠. 단기적으로는 달콤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정말 안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겁니다.

      특히나 영화잡지를 신주단지 모시듯 모아 온 저한테는 이런 일들이 달갑지 않구요. 주머니돈 탈탈 털어 책장에 모셔 온 잡지들이 하나 둘씩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생각하니까 너무 암담합니다.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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