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를 희롱하는 그 날카로운 손길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다, 이 영화. 마치 관습처럼 한 바퀴 비잉 도는 유니버설 로고 대신 다소 반칙의 성격이 짙은 유니버설 로고가 등장하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뒤이어 나오는 타이틀 로고. 보자마자 "뭐 저따구로 생겼나?"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스크린을 빼곡히 채우는 그 몇 자의 문장, DRAG ME TO HELL! 날 지옥으로 끌고 가? 대체 이거 무슨 요상한 영화다냐. 이렇게 도입부부터 요란하게 타임머신을 뒤돌려 제끼며 <드래그 미 투 헬>은 그 자신의 지옥도를 펼쳐보인다.

다소 건조하게까지 느껴지는 부지점장(자막에서는 '팀장'이라고 나온다만)의 빈 자리. 대출 상담원 크리스틴 브라운(알리슨 로먼 분)은 그 자리를 바라보고 동경한다. 크리스틴에게 부지점장의 자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름길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자기만을 바라보는 연인 클레이(저스틴 롱 분)에게 당당한 여자친구이고 싶을 것이고, 자신의 과거와 온갖 비웃음으로부터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어할 것이다. 저 빈 자리에 내가 꼭 앉았으면! 오죽할까. 하지만 온갖 제약들과 뒷담화들은 크리스틴으로 하여금 모종의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 극단적인 선택의 정점이 대출 연장을 요청하러 온 가누시 부인(로나 라버 분)의 애원을 뿌리친 일이 될 것이고, <드래그 미 투 헬>의 손짓이 시작되는 건 바로 그 시점부터.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한 결정이 낳는 돌풍지대. 이런 전제를 깐 상태로 <드래그 미 투 헬>은 정신없이 관객들의 두뇌를 희롱한다. 새까만 줄이 잔뜩 그어진 날카로운 손톱으로 나무 책상을 끼적끼적 두들기는 모습은 미리 말하지만 약과다. <드래그 미 투 헬>에는 이보다 더 불유쾌하고 극단적이며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장면들로 즐비하다. 더 큰 문제는 그 불유쾌함이 불유쾌함을 넘어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다. 피칠갑이 넘실대는 영화는 아니지만(물론 일부 장면에서 피가 넘실거리긴 한다만 전체적으로 불쾌할 정도까진 아니다) 피칠갑의 충격요법,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이런 맙소사!



이와 같은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성난 손짓의 미학, 다른 하나는 귀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 울려 대는 음악과 효과음들이다. 우선 성난 손짓이 전달하는 미학부터. <드래그 미 투 헬>에서 손이라는 신체 부위가 갖는 존재감은 꽤나 크다. 영매사 숀 산 디나(아드리아나 바라자 분)를 초대해 한바탕 벌이는 라미아의 저주 퇴치 시도 장면에서는 서로가 손을 맞잡은 채로 마음을 모으는 모습이 있고, 저주의 화신 가누시 부인이 주로 쓰는 신체 부위는 손(과 팔)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파괴 행위들이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무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손을 통해 일어나는 일인 법.

이해를 돕기 위해 라스 폰 트리에의 문제작 <안티크라이스트>의 한 스틸 속 모습을 인용해 보자면, 정사를 나누는 남녀의 모습 뒤로 수없이 쏟아지던 손길들이 있다. <드래그 미 투 헬> 속 손짓의 모습은 그 강렬함을 놀랍도록 빼닮아 섬뜩함을 자아낸다. 첫 손짓의 충격이 다음 손짓의 충격을 부르고, 그 다음 손짓의 충격을 연쇄적으로 부른다. 나중에는 손짓의 'ㅅ'만 봐도 절로 움찔댄다. 이토록 여러 모습의 손이 겹쳐지며 낳는 파급력은 그야말로 상상하는 것 이상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드래그 미 투 헬>은 등골 오싹한 호러영화인 동시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손이라는 신체 부위가 가장 무섭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음악은 어떠한가. 크리스토퍼 영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온갖 음악들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효과음들은 스크린 속에 투사된 이미지의 영혼에 귀중한 숨결을 불어 넣는다. 특히 효과음들의 공이 크다. 온갖 파열음과 접촉음들은 섬뜩함에 한 꺼풀을 더하고 또 한 꺼풀을 더해 그 모습들을 확실히 각인되도록 만든다. 너무 그 소리가 과하게 울리는 까닭에 불쾌함 역시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효과들이 공포의 질감을 한결 배가시켰다는 것에는 하등의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이런 모습들이 뭉쳐져 <드래그 미 투 헬>은 그 지하 세계의 지옥도를 가상 체험하는 감흥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한 번 붙잡은 긴장의 끈은 쉽사리 놓지 않고, 저주라는 기본 주제에도 꽤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새까맣게 날선 손과 귀를 찢는 음악의 결합, 이게 어디까지 관객을 희롱할 수 있을까. <드래그 미 투 헬>이 애초에 목표했던 건 아마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두 가지 요소의 협력(collaboration)은 실로 무거움과 동시에 약간은 뒤틀린 쾌락을 유발한다. 마치 수십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타이틀 로고가 또 다시 뜨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괴상하게 낄낄대며 상영관을 빠져나와도 아무도 뭐라 안 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 너무 취하다 보면 탈 나지만 가끔은 이런 뒤틀린 쾌락을 만끽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마도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만든 샘 레이미와 이반 레이미는 이런 모습들을 스크린 뒤에서 바라보며 낄낄대고 있을 게다. 아마도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 작전이 성공했어!". 아무렴. ★★★★☆
(2009.06.05 / 진사야 / zinsayascope.com)

  1. 2009/06/05 22:37 [Edit/Del] [Reply]
    평가가 상당히 좋네요^^
    오늘 글 올리신분들마다 다 좋은 평가를 내려주셔서
    정말 기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샘 레이미 감독 영화는 전부 DVD로 소장중인데...

    ㅎㅎ 제 컬렉션에 또 다른 목록이 올라가겠군요...
    내년에 나오는 이블 데드4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지고 있습니다^^

    역시 샘 레이미 감독은 호러 영화를 만들어야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글이네요^^ 북미 컬트 영화의 양대산맥이었던 그의 힘이 느껴집니다!!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06 12:11 [Edit/Del]
      무비조이님, 이 영화 보고 나니 이블데드 시리즈를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 )
  2. 2009/06/05 22:43 [Edit/Del] [Reply]
    오... 재미있을 것 같지만,
    저는 심장이 약한 관계로....
    눈과 귀를 자극하는 영화는 멀리하고 있습니다ㅋ
    무서운 건 못 보겠어요ㅠㅠ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06 12:13 [Edit/Del]
      Design_N님, 그래도 중간중간 코믹 요소들도 살아 있어서 그렇게 크게 부담스럽진 않으실 거에요.ㅎㅎ
  3. 2009/06/06 06:24 [Edit/Del] [Reply]
    별이 네개나..... 움..궁금해지는군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06 12:13 [Edit/Del]
      또자쿨쿨님, 이야기가 색다른 건 아닌데 우선 호러영화 본질에 충실하고, 무엇보다 재미있더군요 ^^
  4. 2009/06/06 08:34 [Edit/Del] [Reply]
    으아. 저 이거 완전 보고 싶어요.

    근데 최근에 이직하면서 야근에 주말 출근까지 ㅠ_ㅠ
  5. 2009/06/08 10:49 [Edit/Del] [Reply]
    오... 이거 재미있을 것 같아요..+_+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08 12:05 [Edit/Del]
      Mr.번뜩맨님, 호러의 본령에 충실하기도 하지만 끝장나게 재미있는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지요. 꼭 극장에서 확인하실 것을 권장합니다 :-)
  6. 2009/06/08 20:07 [Edit/Del] [Reply]
    음냐... 영화를 보고는 싶은데, 사진 몇장을 보고 나니..
    커억!! 혼자 봐도 안무섭겠죠? ^^;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09 07:30 [Edit/Del]
      만물의영장타조님, 중간에 몇 번 나오는 거 말고는 피가 낭자할 정도까지는 아니구요, 되려 재미도 어느 정도 느끼실 겁니다. 보다 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분위기에 피식 웃을 수도 있는 영화에요. 저는 혼자 한번 더 보러 가려고 합니다. 개봉하면 ㅎㅎㅎ
  7. 2009/06/09 03:47 [Edit/Del] [Reply]
    ^_^ 저도 아주 유쾌하리 신나하며 봤어요 ㅋ 비급 감성넘치던 초반 노파와의 대결신이 너무 강렬해서 마판 반전이 조금 상투적이었지만 ㅎ 공포영화에 거부감 없는 분들이라면 낄낄대다가도 최고수준의 음향효과와 함께 깜짝 놀라면서 볼만한 영화같아요 . 좋은 하루되시길~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09 07:36 [Edit/Del]
      닥터오진님, 아니 어떻게 이 누추한 곳까지 직접 찾아오셨습니까요(부끄)
      막판은... 마케팅 쪽에서 좀 잘못 건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쉬운 구조에서 섬뜩함을 자아내는 영화였기 때문에 말이죠. 전단에 '흔해빠진 호러영화에 지친 관객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라고 되어 있던데, 영화 보고 나서 이 문구가 좀 우습게 보이더군요 - -a
      노파와의 대결신은 완전 압권이죠 ㅎㅎ 그나저나 그 부분 웃겼다는데 저는 대체 왜 웃겼는지 모르겠어요. 유머 지점을 놓쳤나?ㅜㅜ
      참고로 저는.. 그 막판 장면 보면서 원판 <13일의 금요일>이 생각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경향인 것 같아요 ㅎㅎㅎ
  8. 2009/06/09 16:56 [Edit/Del] [Reply]
    진사야님 이름은 건너건너 많이 듣다가 처음으로 리뷰를 읽어봤는데
    와- 정말 잘 쓰셨네요.
    좋은 글 많이 읽고 갑니다 :)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09 18:06 [Edit/Del]
      Joa님, 아이고 직접 찾아와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
  9. 6월이야
    2009/06/09 17:10 [Edit/Del] [Reply]
    보고싶내..

    공포.. 후덜덜.

    옆에 누구라도 델꼬 봐야지 ㅋㅋ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09 18:07 [Edit/Del]
      6월이야님, 옆에 한 명 끼고 보는 것도 괜찮겠군요 :-D 하긴 저도 동행인과 봤으니 ㅎㅎ
  10. 2009/06/12 14:01 [Edit/Del] [Reply]
    시작부터 끝까지 버릴것이 하나도 없는 영화였습니다. 이런 80년대 감성을 가진 공포영화를 현재 시점에서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게 진짜 행복했어요.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12 16:25 [Edit/Del]
      ssita님,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영화에 동의해요. 은근히 웃기기도 하고요..ㅋㅋ 한국 호러영화들도 이렇게 만들어 주면 참 좋겠건만 최근 국내 호러들은 어째 너무 피로 승부를 보려하는 것 같아서 (곧 개봉하는 여고괴담5 동반자살도 그렇고..)쿨럭. 피가 많이 노출되지 않아도 이토록 멋진 호러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걸 국내 호러영화 제작진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11. 2009/06/12 15:03 [Edit/Del] [Reply]
    염소의 연기가 좋았어요. ㅎ.ㅎ
  12. 2009/06/13 23:13 [Edit/Del] [Reply]
    은행직원들에게 단체 관람을 허하라!

    제가 대출 연장받으려고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
    • OpenID Logo 진사야
      2009/06/14 20:48 [Edit/Del]
      아쉬타카님, 정말 은행 대출원들에게 강추할 영화 맞습니다 :-)
      흐흐. 전 개봉하고 한번 더 봤어요. 다시 봐도 너무 잼나더군요 ㅎㅎ
  13. 블러베어
    2009/06/17 21:51 [Edit/Del] [Reply]
    미녀배우를 괴롭히는 것만큼, 자극적이고 짜릿한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준 영화더군요^^
    '제니퍼 코넬리'의 '페노미나'가 연상되기도 하고 말이죠
    근데 화면톤에서 특수효과까지, 전체적으로 B급 스타일로 치장된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전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걸까요?^^;

    (돈 얘기가 나와서 그런가?)
    • OpenID Logo 진사야
      2009/09/25 22:45 [Edit/Del]
      블러베어님, 알리슨 로먼 너무 불쌍했어요 ㅠㅠ
      (댓글을 지금 확인했네요. 뒤늦게 답니다 ;;)
  14. 2009/07/14 17:02 [Edit/Del] [Reply]
    이거 무지 보고 싶었는데 도란스2 때문인지 다들 너무 일찍 상영관을 빼버리더군요. 아직도 스포일러는 피해다니고 있지만 볼 곳이 남아있는지 모르겠습니다ㅠㅠ
    • OpenID Logo 진사야
      2009/07/14 18:07 [Edit/Del]
      okto님, 에구 이를 어쩌나.. 아마 지금쯤이면 찾기 어려우실 겁니다 ㅠㅠ 이런 영화들은 정말 개봉할 시점 아니면 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에요. 특히 이 영화 같이 1~2주 후에 대작이 끼어드는 경우에는 더 그렇죠. 보다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으면 했는데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쉽습니다 ㅡㅜ dvd로 출시되면 반드시 구매해서 또 봐야겠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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