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히 일상의 모든 것이 포장되어 생중계될 수 있는 세상이다. 소위 ‘리얼리티 버라이어티 쇼 (이하 리얼 버라이어티)’ 라 불리는 것들이 TV와 케이블을 잠식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다. 소소한 세상살이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심플 라이프(Simple Life | 패리스 힐튼, 니콜 리치 출연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급’의 셀러브리티 혹은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들까지, 가상 결혼을 주제로 삼은 이야기부터 사회 폐단 및 도덕적 해이 고발 성향의 이야기들까지. 그 특유의 확장성을 발판 삼아 - 지금 이 시각에도 - 무한정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영역은 실로 앞을 예측하기 힘들게 할 정도로 막강한 스펙트럼을 자랑하며,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몰아넣는 어떤 마약의 역할을 한다. 이런 리얼 버라이어티 유의 프로그램들은 2008년 한국 사회 속에서 시청자들의 호응과 시청자 취향의 동종 프로그램들이 쌓은 어떤 성과를 등에 업고 ‘전례 없는’ 절대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오죽하면 얼마 전 삼성경제연구소(이하 SERI)에서 선정한 ‘2008년 10대(大) 히트상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까지 했을까. 심지어 이런 포맷은 단순히 TV 프로그램의 영역을 벗어난다. 심지어 CF에서까지 ‘인생은 쇼’ 라는 말이 버젓이 먹혀드는 신기한 세상이 아니던가. 지금 이 시각에도 시청자들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보면서 쇼 자체의 사실성(Reality)에 적응하고 그 바탕에 깔린 상황(Reflection)에 열광하며 출연진들의 대인관계(Relationship)에 동화되고 있다. 더 이상 TV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 먼 안드로메다 방향의 인물쯤으로 치부할 시기가 아니다. 그 인물이 바로 옆 집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음에 섬뜩해지기도 한다. 개인의 모습이 개인의 이야기에 한정되어 명확히 보호되는 시기의 끝이 통하는 세계가 있음을 알리는 전언의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동시에 ‘조용한 공포’ 의 역할까지 하는 것이 바로 작금의 리얼 버라이어티를 둘러싸고 있는 지위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실체다.
피터 위어 감독의 1998년 작 <트루먼 쇼>를 뒤늦게 감상하면서 현재 TV와 케이블을 골고루 잠식하고 있는 이런 리얼 버라이어티들의 부흥 추세를 불현듯 떠올렸다. 영화와 리얼 버라이어티 사이의 어딘가를 유영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트루먼(짐 캐리 분)은 평범한 샐러리맨을 가장한 ‘트루먼 쇼(Truman show)’ 라는 리얼 버라이어티 속 이야기의 주축을 이끌어 나가는 존재이며, 이 존재를 감싸고 있는 배경은 바로 시헤이븐(Seahaven)이라는 이름의 바다로 둘러싸인 작은 소도시다. 마치 쿠보 타이토의 만화 <블리치> 속 반 구체에 싸인 정령정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 작은 세계는 평범한 소시민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다. 잠자리에서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아내가 있고 출근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서면 변함없이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며, 평범한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직장 생활을 하고 정시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 평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힘들 때는 친구의 조언을 받고 때로는 감동적인 상황과 마주치기도 하는, 흡사 소시민이 마주칠 수 있는 최대한의 낙원을 담은 곳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연히 제한선이 존재하고 있으니, 바로 앞에서 구구절절 이야기한 소위 ‘각본’ 속 몇 가지 영역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구성 속에 숨겨진 ‘무언가 빠진 것 같은’ 어떤 것의 실체는 바로 이런 - 프로그램 제목인 ‘트루먼 쇼‘ 라는 말의 뜻과 살짝 어긋나는 측면도 적지 않은 - 작위적 ’리얼 버라이어티‘ 라는 포맷을 뒤집어쓴 장치에 있다. 이 장치를 조종하는 사람들은 소위 우리가 ’프로그램 제작진‘이라고 부르는 그들이며, 그들이 만든 작위적 세계에서 트루먼은 정해진 환경 안에서만 웅크려 살 것을 조종 받는다. 모든 것이 비교적 잘 구성되어 있지만 결론적으로 ’충동적 행위‘가 거세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극명하게 결합된 도시. 바로 이것이 시헤이븐의 실체이며 그 속에서 트루먼은 마치 조작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마리오네트(Marionette)와 같은 존재처럼 살아 숨 쉰다. 그리고 수많은 바보상자들을 통해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시청자들)은 이런 트루먼의 모습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도록 조종 받는 또 하나의 마리오네트라는 역할을 이행한다. 이 거대한 ’트루먼 쇼‘ 라는 이름이 생성한 기괴한 마리오네트들의 결합이 최소한 결말 이전까지는 영화 속 내용을 온전히 잠식하고 들어간다.
어쩌면 영화가 개봉하고 10년 후 태평양 건너 어느 나라의 미래 사회에서 리얼 버라이어티가 맹위를 떨치게 될 것임을 예측하기라도 했다는 듯, <트루먼 쇼>는 보는 사람들에게 ‘리얼(Real)’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을 뒤집어 쓴 프로그램들이 만드는 작위적 설정이 자칫하면 가져다 줄 수 있는 무미건조함을 사전 경고하고 넘어가는 영화다. 극중 트루먼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바보상자 속 마리오네트가 되는 것을 타의에 의해 주문받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야 하는 삭막한 환경에서 설정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 - 예를 들면 실비아(나타샤 맥켈혼 분) 같은 인물들 - 은 가차 없이 ‘빨간 딱지’를 받고 전선에서 퇴장 당한다. 영화는 이런 작위적인 시헤이븐의 모습을 통해 작위적 설정의 이면을 경고하며, 진정한 ‘인생의 쇼’ 가 성립할 수 있는 절대조건을 인지시킨다. 그 절대조건이란 바로 트루먼 쇼에서 - 제작진이 의도했다는 전제를 깐 상황에서 - 유일하게 빠져 있는 ‘충동적 행위(혹은 시나리오의 영역을 벗어난 애드리브의 그 무엇)’ 이며, 이 충동적 행위의 실체화된 모습으로 제기되는 것이 바로 주인공 트루먼이 가고 싶어 하는 피지 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피지 섬은 단순히 지리학적인 위치에서의 그것이 아닌 트루먼 자신의 어떤 위안을 만들어 내는 유토피아이자, 시헤이븐 바깥쪽 세상을 지칭하는 은유적 존재이기도 하다. 이 존재를 발판 삼아 트루먼은 본격적으로 일탈을 꿈꾸기 시작하고, 마치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볼 수 있는 애드리브가 주는 그 무엇처럼 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정해진 시나리오를 거스르는’ 탐험을 멈추려 들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트라우마 - 물론 이 트라우마도 의도한 방향으로 만들어진 것이긴 하지만 - 에 부딪친다 한들 말이다.
<트루먼 쇼>를 감상한 뒤 든 생각은 어떤 불편함이었다. 리얼 버라이어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희로애락을 느꼈던 내 자신의 모습이 겹쳐져서다. 마치 어떤 인위적인 환상을 보고 난 뒤에 지금까지 생각했던 모든 생각들이 깨지면서 든 무언가의 씁쓸함과 허탈함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내가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보아 온 것은 각본에 기재된 ‘극히 제한된 일부’ 일지도 모른다. 소위 시청자들의 취향을 반영하여 포장된 ‘극히 제한된 일부’ 말이다. ‘인생은 쇼’ 라고 당연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 ‘쇼’의 영역이란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있는 것일까? 영화를 본 뒤 내린 결론은, ‘거기에는 답이 없어.’ 다. 그 영역을 조정하는 자유도는 프로그램 제작진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도 아닌, 바로 개인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수많은 리얼 버라이어티들은 끊임없이 어떤 ‘모범답안’을 관객들에게 제기하고 인식시키려 들겠지만 어디 세상이 그러할까. 단순히 TV 프로그램 하나쯤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기에 부족할 정도로 세상은 아직 ‘알 수 없는 게 더 많은’ 탐험의 공간이다. 마치 트루먼이 저 먼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폭풍을 헤치고 먼 곳까지 나아가듯이 말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TV를 틀면 각종 리얼 버라이어티가 쏟아지는 상황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은 더욱 머릿속에 맴돈다. 이런 면을 들어 <트루먼 쇼>는 두꺼운 벽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세상 속으로 나아갈 것을 어쩌면 너무 때이른 시기에 주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영화가 개봉한 시기인 1998년보다 지금에 와서 더욱 깊게 이야기할 수 있는 ‘숙성된 간장’ 격의 영화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 영화의 진가를 명확히 확인하고 자신을 둘러싼 ‘그 두꺼운 벽을 허물어’ 주체를 확보할 수 있는 또 다른 시기는, 장담하건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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