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력 있고 아름다운 우주의 향연
대개 시리즈물로 이어지는 영화들에 지금도 지레 겁을 먹곤 하는 이유가 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민하는 대로 이전 시리즈에 대한 '복습 의무감' 때문인데,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을 어떻게든 꼭 챙겨 보고, 챙겨 보지 못한다면 그 정보를 어떻게든 찾아 보려는 강박이 스멀스멀 머리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이것은 아마도 내가 시리즈물을 그다지 유쾌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별의 영화를 보는 것보다 수십배는 더 강도 높은 사전 정보 취합이 중요하게 떠올라 버리니까.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도 해 본 적이 있다. 시리즈물 나오는 거 다 좋은데, 이 의무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작품은 어디 없을까? 하고.
TV 시리즈로만 다섯 번, 영화로 열 편이 나온 방대한 드라마 <스타 트렉>의 시간을 되돌려 시작점으로 다시 옮겨 놓았다는 <스타 트렉 : 더 비기닝>을 마주한 느낌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리부트(reboot) 버전이라고 하지만, 시리즈의 연결고리를 무시한다는 것 자체가 어디 말이 되는 소리냐. 영화를 보기 전 영화지에 실린 특집 기사들을 찬찬 히 읽어 본 후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거 너무 방대하잖아!' 이전 시리즈들을 구해 보기도 난감한 상황. 결국 사전 정보만을 머리에 담은 채 반신반의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물론 '원작을 몰라도 괜찮다' 는 모 평이 구미를 당기기는 했다만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 아닌가. 사실 '그래봐야 얼마나 멋지겠냐' 가 솔직한 내 생각이었다. 최소한 영화를 직접 눈에 담기 전에는.

일단 <스타 트렉 : 더 비기닝> 을 몇 마디로 표현하자면, '새로울 것 없는 재료들을 버무려 잘 차려 놓은 밥상' 같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분명 이야기의 틀은 지금 봤을 때 새로운 것이 없다. <스타 워즈> 시리즈와 같은 우주를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들이 관객의 눈을 거쳐 간 이후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뛰어난 우주선 함장이었던 아버지를 둔 소년 커크 (지미 베넷 -> 크리스 파인) 가 불칸족 출신 부함장 스팍 (제이콥 코갠 -> 재커리 퀸토) 을 만나 상충하다 끝내 손을 잡고 함께 악의 세력인 네로 (에릭 바나 분) 일당의 위협에서 지구를 보호하는 이야기의 기본 틀은 사실 너무 익숙하다 못해 빤히 눈에 보인다. 구조도 단순해서 전투 -> 계획 -> 전투로 이어지는 순환이 반복된다. 여기에 (최근 막장드라마에서 하도 많이 봐서 신물날 정도인) 복수 컨셉이 들어가고, 이 모든 틀을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으로 대변되는 시각적 요소들이 덮는 모양새다.
당연히 중요한 것은 그 틀을 덮고 있는 시각적 요소들이 얼마나 상쇄를 하고 있느냐다. 다행히도 <스타 트렉 : 더 비기닝>은 시각적 장치들이 제 몫 이상의 결과를 낳는 모습을 보여 준다. 흔히 말하는 '화면 속 모습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영화의 모습. 특히 우주선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영화 속에서 큰 축을 형성하는 두 우주선인 USS 엔터프라이즈호 (커크-스팍 일행의 우주선) 와 나라다호 (네로 일당의 우주선) 의 모습은 관객의 눈을 압도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굳이 세부적으로 따지면 USS 엔터프라이즈호는 내부의 모습이, 나라다호는 외부의 모습이 매력을 자랑한다. 나라다호는 내부가 다소 투박하지만 외부는 어떤 우주선보다 강렬한 모습을 자랑하고, USS 엔터프라이즈호는 외부가 다소 평이하지만 내부는 깔끔하고 아름다운 맛을 지녔다. 이 서로 대비되는 (그러니까 굳이 선-악으로만 구별할 필요는 없는 셈) 우주선의 모습은 절로 영화 속 대립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를 하고, 그 우주선들이 낳는 전투신은 극단의 영화적 체험으로 관객을 몰아간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왜 주인공 커크와 스팍의 화해 분위기를 영화가 거의 끝나 가는 후반부에 배치를 했느냐고. 사실 이것은 내가 더 궁금했던 점이다. 차라리 중반부부터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합심해서 싸우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의 결과가 더 파급력이 큰 것 같더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초중반에는 마구 대립하고 쫓아내고 말로 싸우다가 막판 가장 큰 위기에 들어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악을 퇴치하기 위해 힘을 모으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그래, 그랬어야지!' 라는 생각을 기어코 내뱉게 만드는 힘이 있다. 쿠보 타이토의 만화 '블리치' 속에 이런 대사가 있다. '영력은 생명력이 사라지기 직전에 가장 잘 올라가는 법이거든요.' 이 말을 <스타 트렉 : 더 비기닝>에 대입해 보자면 이렇다. 화합의 분위기는 자기와 서로가 사라진다는 위기 속에서 생겨나는 법이니까.
결말 장면이 약간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을 제외하면 아주 박력있고 아름다운 영화다. 이야기는 좀 단순하더라도 어떤가, 아름다운 우주와 이세계의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주선의 모습이 관객의 눈을 압도하고도 남기에, 이 영화는 분명 어느 경지에는 다다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리부트가 의미 있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모든 관객을 끌어안을 만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거다. 당신이 트레키이든 나처럼 일반 관객이든, 상관하지 말고 끌린다면 극장으로 가시길. 의외로 그 모습에 매료되어 나올지도 모른다. (당연히 이것은 <스타 트렉 : 더 비기닝>의 최고 장점이자, 이것 자체가 능력이다.) 아, 물론 <스타 트렉> 시리즈에 대한 사전 정보는 읽고 가는 게 좋겠지만, 최소한 '시리즈가 있으니 좀 힘들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힐 것까지는 없으니, 이 얼마나 좋지 아니한가. ★★★★
(2009.05.08 / 진사야 / zinsayascop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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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이트 운영자라고 하면 대부분 저나 무비조이 운영진이 무슨 예술 영화에 정통한 사람인줄 아는 분들이 많아서 조금 당혹스럽고.. 특히 이런 영화 극찬하고 나면 무슨 이런 영화에 평점을 그렇게 높게 주느냐고 하는 항의 메일도 가끔씩 받죠^^
그런데 저한테는 정말 이런 영화가 너무 잘 맞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단 감독은 같아야겠죠(다음 작품이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중에 하나인데...)
그만큼 무비조이 컨텐츠가 좋은 게 아닐까나요. 물론 글에 모범답안은 없습니다만 ㅎㅎ
그래도 기대가 줄지는 않습니다. ㅜ 빨리 가서 보고싶어요.
진사야님 말씀처럼 전작들이 너무 많다보니 볼 엄두가 안난것도 있을테지요 ㅎㅎ
암튼 꽤나 재미있어보이는 영화라 볼 생각인데...
남들이 재미없다고 해도 제가 보고싶은건 꼭 보는 성격이라서 쿄쿄...
시간날때 혼자 조조로 조용히 보고 와야겠습니다 캬~울
다음 편에 대한 기대감을 극대화시키고자 한 전략이 아니었을까요 ㅎㅎ
저도 문외한인 상태에서 봤습니다만 꽤 재밌게 봤습니다.
앞으로 나오는 시리즈는 계속 챙겨보게 될 것 같아요~
떡밥의 제왕이신 아브라함님의 작품이라 기대만빵인데 언제쯤 보게될지는...
혹?? 둘째가 태어난 뒤에 봐야하는 걸까요? ㅠ,.ㅠ
원작을 몰라도 즐길 수 있다는 얘기예도 망설여지네요.
할리우드가 그동안 잠들어 있던 스타트렉 시리즈에 괜히 시동을 건 게 아니겠죠. 흐흐.
극장에서 또 보고 싶은 올해 첫 '블록버스터'입니다.
뭐 이런 대작 영화만 극장가에 즐비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영화적 쾌감을 즐길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정말 흥미롭게 봤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가끔은 이런 쾌감을 즐겨 줄 필요가 있지요. 나아가 벌써부터 미국발 블록버스터가 이렇게 주목할 만한 모양새로 나와 주니 다음 행보들이 궁금해집니다. 5~6월에 개봉하는 충무로 영화들 (특히 김씨표류기와 마더 - 이 둘은 개인적으로 흥행하기를 바라는지라..) 긴장 좀 타야겠구나 싶군요.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지만, 여긴 영화관이 없어서...^^
1. 스타트렉을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2. 스타트렉의 팬들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걱정도 되고...
살짝 고민스러운 영화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