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12-17 / CGV 상암 / 19:30
TEXT_ 진사야
주의 : 영화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 있습니다.

개에 대한 감동적 이야기를 짜내는 것은 비단 한국의 이야기에 한정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정도는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에서의 개가 갖는 지위는 - 이른바 ‘충직한’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 ‘때가 되면 왔다가 때가 되면 떠나가는’ 한 식구라는 의미가 조금 더 강한 반면, 서양에서는 애완견(Pet)이라는 단어 그 자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 즉 예뻐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이런 약간의 관점 상의 차이점이 발견되지만 그 내밀한 속에 담긴 의미는 상식적으로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개에 대한 이야기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는, 개라는 동물 자체가 만인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의미나 인식이 강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태생이 미천하든 귀족적 혈통을 가졌든 간에 말이다. 결국 개도 하나의 애완용 동물로 분류할 수 있는 한 종류의 동물이고, ‘사랑받는 존재‘ 로서의 그 지위는 이런 이유가 뒷받침되어 나오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 지위를 발판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개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가 1993년 전남 진도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나왔다는 ’돌아온 진돗개 백구’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어쩌면 이것 자체는 하나의 흐름, 그러니까 어떤 트렌디 드라마 정도의 흐름으로 읽어낼 수도 있다. 그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외피(포맷)에 상관없이.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2008년 작 <볼트>는 한편으로 이런 애완견 트렌디 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작품이다. 여기에 애니메이션이라는 외피를 씌워 놓고 어린이들의 코드에 맞는 캐릭터를 끼워 넣어 겉으로 보면 어린 아이들을 겨냥한 동물 애니메이션 정도로 인상을 심어 주기 딱 좋다. 하지만 단순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재미가 없었는지 아니면 무언가 변화를 꾀하고 싶었는지, 영화는 단순한 트렌디 드라마의 흐름을 일정한 간격을 사이에 두고 빗겨간다. 물론 기본 틀은 어린이들의 취향에 그보다 더 잘 맞을 수 없고, 강력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유머 역시 잘 챙겨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 한없는 가벼움에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신기한 백구 이야기 속에 숨겨 놓은 ‘생각 좀 해 봐야 할 거리’ 들이 - 어떻게 보면 과하다 싶을 정도로 -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딱 <하얀 마음 백구> 정도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갔다가 ‘이 이야기 말고 그 속에 또 이야기가 있어?’ 라는 생각을 하고 나온 느낌이랄까. 단순히 어린이들 취향의 애니메이션을 생각했다가는 한 대 얻어맞기 딱일 수 있다.
영화 속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의 기둥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볼트(존 트라볼타 목소리)와 그를 따르는 ‘길거리 친구’ 미튼스(수지 에스먼 목소리)와 라이노(마크 월튼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의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볼트와 페니(마일리 사이러스 목소리)의 관계를 둘러싼 -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 주변 이야기의 기둥이다. 쉽게 말해서 불투명한 커튼 바깥쪽 세계와 안쪽 세계로 구분되어 있다고 표현해두자. 커튼 바깥쪽 세계는 볼트와 친구들의 세계, 커튼 안쪽 세계는 볼트와 페니의 세계다. 일단 커튼 안쪽 세계는 꽤나 흥미진진하다. 생각하는 것은 모두 이루어지는 마법의 공간이자 볼트와 페니가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며, 때문에 어떤 속박의 공간이라는 의미도 가진다. 특히 볼트의 활동 영역은 그야말로 ‘사방이 꽉 막힌’ 수준으로 좁은 상황이고, 이런 환경 속에서 볼트는 본능적으로 페니를 구출하기 위해 길들여진 존재다. 마치 고등학교 때 일반사회를 통해서 배운 ‘늑대 소년 이야기’를 최근에 어쩌다 다시 찾아 본 느낌이다. <볼트>는 할리우드의 영상산업에 대한 비유 - 어쩌면 디즈니의 고해성사로까지 느껴지는 (디즈니 출신 셀러브리티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사례를 떠올려 보면 더욱 그러하다) - 가 대거 깔린 이런 기본 설정으로 영화 속 가장 큰 이야기의 기둥을 형성해 놓았다. 또 이런 비유를 대입하여 생각해 보면 볼트와 페니는 지금까지 대중들 앞을 거쳐 간 ‘반짝 빛났다가 확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셀러브리티들을 대표하며, 그 기능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자칫 가벼운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영화의 중심에 무게를 부여하는 데 제 역할을 다 하는 캐릭터다. 이것은 영화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의 역할 또한 하고 있다. 무게중심의 추를 이야기로 채우고 있는 것 자체는 잘못 흘러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무게 중심으로 인해 타깃이 되는 세대 층이 살짝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의 그 누군가를 겨냥한 작품이라고 할까. 어린 친구들은 마냥 가볍지 않은 ‘은근히 심각한 이야기’ 에 살짝 적응하기 힘들 수 있겠고, 어른들은 보기에 낯간지러울 수 있다.
두 번째로 커튼 바깥쪽 세계는 바로 볼트와 친구들이 마음껏 세상을 유영하는 공간이다. 어쩌다 할리우드에서 뉴욕까지 떠밀려온 볼트의 곁에 좀 까칠한 검은 고양이 미튼스와 ‘볼트의 팬’ 을 자처하는 원통 속 햄스터 라이노가 합세한다. 이 공간은 속박(혹은 울타리)의 맞은편에 위치한 ‘개방’ 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볼트에게는 - 물론 그 교육 자체가 유동적인 성격을 띠는데다 초반에는 반발이 좀 많지만 여하튼 - 하나의 ‘교육 장소’ 이자 ‘임시 안식처’ 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한계점이 존재하고 있으니, 이 커튼 바깥쪽 세계가 볼트와 친구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공간이라는 역할 외에 큰 역할을 할 수가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바깥쪽 세계는 영화의 흥미를 배가시켜 놓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분명 아니라 할 수 있다. <볼트>에서 이 커튼 바깥쪽 세계보다 중요한 것은 ‘볼트와 페니’ 라는 절대적인 버디 관계가 돌아갈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하던 커튼 안쪽 세계이며, 여기에는 이야기의 또 하나의 축인 페니 캐릭터가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볼트가 돌아가야 할 공간은 정해져 있으며, 이것은 볼트의 운명인 동시에 볼트로 대표되는 셀러브리티들의 근원적 운명을 지칭한다. 아무리 쓰레기 같은 타블로이드에 치이고 상처를 입어도 결국 그들에게 위안이 되는 무엇이란 그들이 진정으로 빛을 낼 수 있는 어떤 무대나 공간에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잔인하지만 그것으로 업을 삼고 있으니 돌아가야 하는 운명.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볼트의 운명은 속박의 운명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냐?’ 라고. 글쎄다, 난 이 질문에 ‘그건 아냐’ 라고 대답하겠다. 아무리 속박의 공간이라도 그 공간 안에 손잡아 줄 사람이 최소한 한 명 이상이라도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속박이라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볼트에게 있어서 그 손잡아 줄 존재란 페니를 지칭하는 것이고 말이다. 결국 <볼트>는 낭만을 절반 정도 거세한 <하얀 마음 백구>쯤 되는 영화로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좀 더 낭만적인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겠지만, 영화는 이것을 맹렬히 거부한다. 어쩌면 제작사에서 알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어떤 운명을 의미하는 영화로 흘러갈 ‘운명’ 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양이 미튼스가 상처를 입은 사연이 살짝 비밀로 남는 등 일부 캐릭터들의 에피소드가 얕고 맞춤법에 살짝 어긋난 것이 보이는 자막이 영화를 감상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볼트>는 비교적 잘 짜인 애니메이션 중 한 편으로 평가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 영역 안에서 챙길 것은 분명히 챙기고 있고, 또 하나의 묘미는 바로 죽이 맞는 캐릭터들의 목소리에 있다. 존 트라볼타와 마일리 사이러스의 비교적 잘 들어맞는 호흡을 감상하기 위해서 자막 버전을 선택하는 것은 영화를 보다 ‘날것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라 자부한다. 무엇보다도 개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한 재미를 보증해 줄 것이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영화가 끝난 후의 씁쓸함은 좀 남겠지만 뭐 어떠하랴. 재미를 충분히 추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트>의 성과는 분명 남는다. 뭐 어때? 흐름을 즐기는 게 이 영화의 또 다른 운명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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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모르게 급 방가운;; ㅎㅎ
사실 덕스 활동한지는 얼마 안됐습니다.
건너건너 알게 되어서 최근에야 개시를 시작했네요.
사이트에서도 한번 인사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욧!!
좋은 감상평 잘 보았습니다~
좋은 의견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