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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 DVD
TEXT_ 진사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영화들은 크게 따져서 두세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게다. 이성적 시선으로 이해해야 하는 작품과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작품, 그리고 이 두 가지 상황을 모두 생각해야 하는 작품이 바로 그 분류 방법이다. 물론 개인이 한 영화를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 어쩌면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는 - 따라 접근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겠지만, 머리를 써서 이해해야 하는 작품이 있는 반면 오로지 그 감상 자체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작품도 있게 마련이다. 오늘 정소동 감독의 1987년 작인 <천녀유혼>을 보고 문득 이 영화를 이해하는 부류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막연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 이론을 대입해서 생각해 보면 이 우주에서 날아온 것 같은 작품은 어디쯤에 속할까. 문득 영화를 보면서 든 여러 느낌들이 마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물결 마냥 굴러다녔다. 결론을 내리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일 수도 있다. 단정하건대 <천녀유혼>을 보기 위해 할애한 90분이 조금 넘는 시간은 소위 ‘머리를 써서 이해할 것이 아닌’ 작품이라는 것을 똑똑히 확인한 시간이며, 이 기괴한 영화에 매료된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떠올리니, 감히 더 이상 머리로 설명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이건 너무나도 강렬하게, 감성적 에너지로 접근해야 설명이 되는 영화다. 너무나도 처절하고 분명하게.
포송령의 괴기소설집 중 짤막한 이야기 한 편을 각색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의 이야기는 눈에 확 들어올 정도까지는 아니다. 아니, 말을 바꾸자. 분명 우리가 익히 들어 온 그것과는 살짝 다른 스타일이다. 인간과 혼령의 사랑 이야기라. 문득 <사랑과 영혼>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천녀유혼>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나그네와 출신이 혼령인 - 물론 죽기 전에는 누구에게는 사랑스러웠을 여인이겠지만 이런 생각일랑 잠시 덮어 두도록 하자. - 여인이 극을 이끌어 나가는 주축 세력이다. 여기서 나그네는 영채신 (장국영 분) 을 지칭하는 것이고, 출신이 혼령인 여인은 섭소천 (왕조현 분) 을 지칭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 명 정도 추가하자면 소위 ’잊을 만하면 나타나‘ 극의 양념을 더하는 연적하 (우마 분) 정도가 되겠다. 여하튼 이런 좀 색다른 설정만 빼고 그 스토리 자체를 생각해 보면 마치 현대 트렌디물을 접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도 든다. 다만 그 소재가 작품 자체의 첫인상에 묘한 비틀림을 주는 정도랄까? 적어도 <천녀유혼>을 집어든 내 첫인상은 이랬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영화가 끝난 후 든 생각은 ’내가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다. 그저 그런 사랑이야기가 아닐까라고 우려를 살짝 품었는데 그걸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머리로 이해해 봐야 낭패만 보기 딱인 영화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몰입을 하지 않으면 그 맛을 제대로 느꼈다고 보기 어려운, 근래 보기 힘든 ’감성적 에너지로 충만한‘ 영화이며, <천녀유혼>을 이해하는 가장 큰 키워드의 축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감성적 에너지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답은 영화 곳곳에 작은 보석처럼 뿌려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 제1요소는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는 종소리나 여인의 웃음소리, 속삭이는 소리 등의 효과음들에 있고, 제2요소는 화려함 대신 소박함 자체의 미를 추구하고 있는 영상에 있다. 그리고 이 요소들 중심에 캐릭터들이 올곧은 위치에 자리 잡은 상태로 발단부터 결말까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형국이다. 이 아기자기한 요소들은 시종일관 영화 속 이야기들을 뒷받침하는 단단한 주춧돌 역할을 하며, 보는 사람들에게 묘한 감성적 느낌을 전달해 준다. 어쩌면 보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것은 섭소천과 영채신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 주변을 맴도는 그 매혹적 요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즉, 이야기의 흐름만 따라올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그 자체의 분위기는 별다르게 노력하지 않아도 영화가 알아서 조성해 준다는 편리성이 존재한다. 이 놀라운 편리성은 <천녀유혼>에 시선을 몰입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며, 역으로 보는 사람들을 압도시켜 어떤 공포감을 유발시키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물론 그 자체가 공포영화를 의도했거나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소재와 보는 것만으로도 매혹적인 느낌을 주는 여러 요소들이 얽매여 한 편의 아름다운 공포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동시에 선사한다. 흡사 예전 TV에서 방송해 주던 최면 프로그램을 요즘 와서 다시 돌려 본 느낌이랄까.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최면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상황 자체에 몰입한다는 느낌이 들고 때에 따라서는 오싹함에 놀라워하기도 했는데, 몇 년이 지난 이후 영화를 통해 그런 비슷한 상황에 또 다시 마주치니 어깨가 절로 씰룩거렸다. 이 섬뜩함과 매혹이라는 두 가지의 큰 기둥의 기묘한 결합은 <천녀유혼> 특유의 미학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 특유의 미학이 만들어 낸 최고의 장면이 바로 그 유명한 원통 욕탕 키스신이 아닐까.
영화 속 섭소천의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처럼 그 자체의 짧은 순간이 하나의 꿈과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 이것만큼 <천녀유혼>을 가장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문장이 어디에 있을까 싶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 꿈은 평범한 꿈과는 질 자체가 다른 그 무엇이다. 쉽사리 잊히지 않고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기에 그것 자체로 섬뜩함마저 드는, 그런데도 기꺼이 다시 빠져들 다짐을 하게 만드는 - 혹은 어떻게든 다시 들어가고 싶은 - 한 편의 구슬픈 꿈. <천녀유혼>의 실체는 바로 이것에 있다. 여기에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그 자체로 아름다운 모습을 자아내는 장국영과 왕조현의 모습은 보너스다. 두 배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특별한 감정적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설령 모르더라도 보는 순간 매혹되는 것을 거부하기는 어려울 게다. 그 붉은 커튼을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그 커튼을 걷는 순간, 당신도 기꺼이 그 늪에 몸을 내던질지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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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영화리뷰 블로그 입니다.~
왕조현 때문에 남성관객들이 부각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만, 비단 남성 관객들만이 아니라 여성관객들도 매혹시킬 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에요.
왕조현을 두고 어느 분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 으로 비유를 하시던데,
그래서 특히 섭소천 역에 어울리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좋은 의견 댓글로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