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타이거 / 아라빈드 아디가

Posted at 2009/04/17 22:19// Posted in 책방

현대 인도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침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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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 화이트 타이거' 로 지칭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달리 말하기 거창하니 '친구' 쯤으로 부르기로 하자. 이 친구는 현재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편지의 내용, 뭔가 심상치 않다. 그러니까 그 내용이 어떠하냐 하면, 원통 주변에 구멍이 있고 마치 여러 자루의 칼을 하나씩 이 구멍에 끼워 넣는 모 보드게임을 연상시킨다. 찌르고, 찌르고, 찌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원통 안에 숨어 있던 해적 캐릭터가 뿅 하고 튀어나온다. 이 모든 과정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아라빈드 아디가의 문제작 「화이트 타이거」는 바로 이런 섬뜩한 '화이트 타이거' 에 대한 이야기다.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저널리스트로의 경력을 쌓은 바 있는 저자 아라빈드 아디가의 경력이 이 책에 힘을 실어 주었을까. 그만큼「화이트 타이거」는 매우 직설적인 블랙코미디다. 첫 번째 밤부터 일곱 번째 밤까지. 총 일주일 동안 '화이트 타이거' 가 중국의 원지아바오 총리에게 사뭇 경고장에 가까운 편지를 보내는, 가상의 환경을 구축한 채 시작하는 이 책은 그야말로 거침없이 흘러간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소 느긋하기까지 한 전개 양상을 띄고 있으면서도 편지와 일대기 형식을 골고루 끌어 온 구조, 흡사 콜라주를 연상시키는 이야기의 전개 양상 등으로 인해 주목도를 배가시키는 힘을 가졌다.

이 모든 요소들이「화이트 타이거」특유의 리듬을 만든다. 마치 주인공 화이트 타이거가 부유층의 자동차 기사를 하며 타고 다녔던 '혼다 시티' 차량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화이트 타이거」의 정수가 있다. 바로 현대 인도의 사회를 바라보는 의식이 바로 그것. 과자와 차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알고 있었던 (할와이 - '화이트 타이거' 의 원래 이름이기도 함) 사람이 운전기사가 되고 싶어 운전을 배우고, 아쇽 선생의 전속 운전기사가 되어 단바드와 델리 등을 돌아다니다가, 그 생활 속에서 느낀 현실감에 환멸을 느끼고, 끝내는 폭발하는 과정들.

일련의 비판 의식이 깃든 요소들이 곳곳에 끼워진다. 그 진폭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곳 하나 폭탄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다. 마치 대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 에서 비공식 타지마할 가이드로 일하던 자말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도의 그늘을 보여준 뒤 '이게 인도의 본모습이에요' 라고 하는 것처럼, 「화이트 타이거」에서도 뿌리 깊은 비판 의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영국의 식민지 시절을 거쳐 오면서 바뀐 인식 (가령 카스트 체계의 붕괴 등) 이 빚는 문화충격 (Culture Shock) 이 한 몫을 한다. 가령 이런 구절처럼.

그러던 것이, 1947년 8월 15일인가요 (영국인들이 떠나던 날이었지요.), 델리의 그 모든 정치인들 덕분에 감옥 문은 활짝 열렸습니다. 동물들은 서로 공격하고 쥐어뜯게 되었으며, 동물원 법칙은 정글의 법칙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가장 난폭한 놈들, 가장 굶주린 놈들은 다른 녀석들을 죄다 먹어치우고 거대한 배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여자든, 무슬림이든, 불가촉천민이든, 상관없었어요. 그저 커다란 배만 있는 놈이면 아무나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 85p

「화이트 타이거」 속 비판 의식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기존 체계가 붕괴되면서 사람들은 무한 경쟁체제를 갖게 되었고, 다른 사람보다 빨리 굽신거리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화이트 타이거」는 현대 인도의 모습을 마치 씹고 씹을수록 그 모습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야기 속에서 질릴 정도로 튀어나오는) 입 속 '파안Paan' 에 비유한다. 입을 청결하게 만들어 준다는 본연의 목적과 달리 씹을수록 그 본연의 추한 모습을 더 보여 주기만 하는 그 파안의 모습. 이런 모습을 화자인 '화이트 타이거' 는 가감 없이 보여 주고 그 곳에 거침없이 침을 뱉는다. '씨X, 농담 까고 있네!' 라는 냉소적인 외침을 흘리면서.

첫 페이지 몇 장이 책에 대한 각종 찬사들로 채워지다 보니 다소 자화자찬적 성향이 짙고, 번역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하지만 베가북스에서 출간된 「화이트 타이거」의 번역판은 꽤 흥미를 자아낸다. 특히 책 곳곳에 달린 각종 인도와 이슬람 사회 용어들을 소개하고 있는 역자 주석들은 이 책에서 놓치면 안 되는 요소다. 주석 특성상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 형식이지만 이 모든 단어들을 먼저 알아 두면 책 속에 들어 있는 인도의 모습을 더 잘 따라갈 수 있다. 그 모양새가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회의 현주소를 담담하게 읊어 내려갈 수 있다면 「화이트 타이거」는 그 기대에 비교적 잘 부응하는 결과로 독자 앞에 다가앉을 것이다.

글 | 진사야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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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이거 - 10점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베가북스

“자수성가한 기업가” 발람은 어느 날 중국 총리가 인도의 “기업가정신”을 배우기 위해서 인도를 방문한다는 뉴스를 라디오에서 듣는다. 그는 곧바로 펜을 들어 총리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아니면 감히 누가” 기업가정신을 이야기한단 말인가! 그렇게 발람은 현란한 내러티브로써 굴곡진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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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이트 타이거(White Tiger) - 부패한 사회를 뜨겁게 밟아버린 우리들의 자화상 // 새우깡소년, Day of Blog 2009/04/19 00:13 [Delete]
  2. 화이트 타이거 // 愚公移山 2009/04/21 13:09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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