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런 무어의 원작 그래픽노블 [WATCHMEN]을 읽지 않은 상황에서 작성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까지는 아니지만 영화판 결말에 대한 묘사와 자의적 해석이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익스트림 비주얼 바이블"
우선 고백 하나부터 하고 이야기를 시작합시다. 잭 스나이더의 <왓치맨>을 보고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이상하게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얼마나 멋들어진 녀석인지 어떻게 글로 표현을 해야 하지? 생각하니까 좀 막막하더군요. 영화가 새로운 목표를 정해 줬기 때문입니다. ‘재밌게 봤지? 그러면 그만큼 글로 보답을 하도록 해!’라고 말이죠. 아, 다시 생각해 보니 떠오른 생각이 하나 더 있었군요. 누구라도 좋으니 내 얘기를 좀 들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생각이었죠.
‘오늘 <왓치맨>을 봤는데 말이에요, 그게 얼마나 죽여줬는지 알아요?
와, 정말 상상 바깥의 세계더구만요! 그러니까 그 내용이 어떤가 하면.. 블라블라블라블라.
와, 정말 상상 바깥의 세계더구만요! 그러니까 그 내용이 어떤가 하면.. 블라블라블라블라.
이 말을 하고 싶은 걸 얼마나 참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불행히도 이야기를 들어 줄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좀 안타까웠죠. 아무튼 저에게 <왓치맨>은 이런 감흥을 정말 오래간만에 던져 준 영화였습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성서(바이블, Bible)에 비유를 할게요. 종교계의 성서가 그 존재만으로도 신도들을 절로 꿇어앉혀 왔다면, 저를 꿇어앉힌 범인으로 기록될 작품은 단연 이 영화, <왓치맨>입니다. 그것도 아주 익스트림한 비주얼을 덮어쓴 (블록버스터를 빙자한) 1억 불짜리 바이블이랍니다.

<왓치맨>의 배경은 1980년대입니다. 극중 배경은 소위 대체 역사(Alternate history) 를 바탕으로 해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하고, 소련과의 냉전 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베트남전의 유령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시대. 물론 이것은 영화가 바라보는 현재 시점에 한정되고 좀 더 들어가면 ‘미닛 맨(Minute Man)’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1940년대부터 영화의 주요 시기인 1985년까지 이야기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 배경으로 깔리는 역사 한 번 겁나게 길고 굴곡이 좀 셉니다. 그 역사 안에 온갖 희노애락애오욕이 다 들어가 있어요.
이런 역사는 <왓치맨> 속 캐릭터들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됩니다. 이런 모습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캐릭터가 바로 코미디언(제프리 딘 모건 분)과 닥터 맨하튼(빌리 크루덥 분)이구요. 이 중 한 명은 영화 속의 전체 사건의 시작을 열고, 다른 한 명은 살아남아 남은 책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됩니다. 킨 법령 이후 국가에 소속되어 활동을 계속해 온 히어로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처지의 결과는 다르죠. 물론 깊이 들어가면 결국 공통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만. <왓치맨>이 제기하는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영화 속 히어로의 세계에는 이 두 사람 외에도 네 명이 더 존재하고 (선대 히어로까지 포함하면 여섯 명), 이 친구들은 킨 법령 이후 제 갈 길들을 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코미디언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그 균형이 깨지죠. 멤버들 중 비공식적인 히어로 활동을 하던 로어셰크(재키 얼 헤일리 분)가 수사에 착수하고, 여기에 나이트 아울(패트릭 윌슨 분)과 실크 스펙터 II(말린 애커맨 분)가 끼어듭니다. 수사가 거듭될수록 사건의 목적은 코미디언뿐만이 아닌 왓치맨 모두를 향한 것임이 밝혀지기 시작하고, 그 뒤에 숨겨진 엄청난 이면과 마주하게 되는 순서입니다.

구조가 꽤 특이하게 다가오는 영화에요. 특히 히어로들이 코미디언의 행적을 거슬러 올라가 회상하는 신에서는 이런 특징이 더 두드러집니다. 현재 시점과 과거시점이 마구 뒤엉킵니다. 원작을 안 보고 영화를 보게 될 경우 구조에 적응을 못 할 것이라는 의견이 좀 있는데 웬걸요. 저는 이런 구조가 너무 흥미롭게 와 닿았습니다. 오히려 영화의 새로운 시선이 엿보인 게 신선했지요. 물론 원작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겠지만, 굳이 원작을 안 봤다고 해서 무작정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관객들의 시선을 충실히 잡아 두고 있다는 점에서도 <왓치맨>은 분명 괄목한 결과를 보여 줍니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161분입니다. 2시간 40분이 조금 넘지요. 근데 웬걸. 흡사 120분 안팎의 영화를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체감 러닝타임이 짧습니다. 아무리 길게 쳐도 130분쯤 될까 말까 합니다. 대개 한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게 되면 안 넘는 영화들에 비해 좀 길다 싶은 느낌이 더 가게 되곤 하는데, 이 영화는 예외로 쳐야 할 것 같군요.
여기에는 영화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인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이 그 역할을 합니다. 80년대의 모습을 재연한 세트도 세트지만 귀를 압도하는 사운드나 중반 이후 액션 역시 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특히 저는 그 사운드에 귀가 호강하고 왔고요. 찾아야 할 것을 찾으러 갔다가 의외의 수확을 건졌다는 느낌이랄까. 특히 모든 진실들이 죄다 뒤엉키는 후반부 비밀 기지 액션 장면에서는 그 절정에 치닫습니다. 그저 스크린 보면서 온갖 감탄사를 머릿속으로 뱉다 보면 영화 끝. 신기하기 이를 데가 없지요.

그렇다면 히어로물로서의 <왓치맨>은 어떨까. 아주 간단히 말하면 낭비를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영화의 틀이 되는 ‘히어로들의 어두움’이라는 명제는 신선한 것이 아닙니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이미 일 년 전 우리는 <다크 나이트>를 통해 확인한 적이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왓치맨>은 애초부터 너무 큰 욕심을 부리려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특징이죠. 애초에 원작의 이야기를 크게 건드리지 않았다는 뒷이야기를 생각해 봐도 그렇습니다. 원작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 주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니 다른 게 끼어들 겨를이 있을까요?
<왓치맨>은 딱 상상할 수 있는 것들만 깔끔하게 보여 주고 이야기를 끝냅니다. 좀 더 욕심을 부렸으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은 남겠지만 지금 결과도 나쁘지 않으니 더 이상 걸고넘어질 이유가 없죠. ‘인간의 생명은 너무 과대평가된 것이 아닐까?‘ 라는 무거운 주제를 논하는 히어로 이야기가 적응이 안 될 법도 하지만, 눈과 귀를 호강시키는 영화 속 모습으로 인해 이런 인식마저 무효화되어 버리죠. 마치 왓치맨이 거둔 유일한 업적이 오로지 세상의 멸망을 막으려다 실패한 것뿐이라는, 극중 오지만디어스 (맞나요?;) 의 대사처럼,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질문이었는지에 대한 결론에 도달하고 맙니다.
이 외에 꽤 유효한 잔재미들이 존재합니다. 제가 <왓치맨>을 보면서 가장 폭소했던 장면인 아울쉽 내에서 펼쳐지는(?)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의 정사신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레오나르도 코엔의 ‘Hallelujah’가 흘러나오며 본격적으로 하이라이트가 펼쳐지는데 실크 스펙터의 손이 살짝 움직이더니 버튼 하나를 꾹 누르죠. 그 버튼에는 불 마크가 그려져 있었고.. 버튼을 누른 순간 아울쉽 바깥쪽을 보여 주더니만 아울쉽이 마구 불을 뿜어대기 시작합니다.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기겁해 도망치고요.(문장 오류 - 구름님 제보) 어떻게 보면 사소한 장면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지만 이런 잔재미들은 약간 무겁게 느껴지는 영화 속 스토리에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하긴, 이런 유의 블록버스터가 유머도 하나 없이 시종일관 무게 잡고 가는 건 관객에 대한 고문이니까요.

앞에서 성서 이야기를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지금 우리 앞에 당도한 <왓치맨>이라는 이름의 성서에는 이처럼 온갖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물론 성서 자체의 목적 (여기서는 이야기를 지칭) 에도 충실하고 있구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던 성서들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입니다. 무난히 읽힌다는 차원을 넘어 재미있기까지 한, 굳이 정리하면 ‘익스트림 비주얼 바이블’ 정도가 될까요.
물론 이 성서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안 하는 게 신상에 이롭습니다. 결정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스타일이거든요. 하지만 중요한 건 최소한 저에게는 충분히 유효하고도 남는 성서가 되었다는 겁니다. <왓치맨>은 분명 이런 가치를 하고도 남아요.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놓고 끝낼까요. 이 성서의 뒤쪽은 텅 비어 있는 상태입니다. 마치 모든 것이 다 제자리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영화 속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죠. 이 뒤쪽을 채우는 것은 영화 속 히어로들이 아닌, <왓치맨>을 본 관객들의 몫으로 남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 뒤쪽을 어떻게 채우시겠습니까?
★★★★★
글 | 진사야
2009.03.06
후일담 :
- 오랜만에 예전 글 스타일로 리뷰를 끄적여 봤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쓰니 꽤 재미있네요. 애초에 무겁게 나가기로 작정한 리뷰가 아니라 대놓고 이렇게 쓰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해서 ㅎㅎ
- 혹시 패트릭 윌슨 (나이트 아울 II 역) 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 계십니까? 영화 보고 난 후 이 배우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어요. 아, <레이크뷰 테라스>를 찾아봐야 되나 이거....
- 혹여 원작을 못 접하신 분들은 영화에 대한 기본정보를 한 번쯤 둘러 보고 가실 것을 추천합니다.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왓치맨 공식 홈페이지와 왓치매니아 블로그 속 자료들을 읽고 갔는데 그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읽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그래도 여전히 왜? 는 좀 남습니다만, 이건 원작을 보면 알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크게 걸리는 건 아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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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감사합니다 :-)
하지만 원작에 대한 존중은 커녕 '그거 먹는 건가요?' 로 일관하던 수많은 만화 원작 영화들이랑 비교해 보면 만화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나름 기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댓글을 읽다 보니 원작을 어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사실 오지만디어스 같은 경우에는 주요 인물 치고 너무 존재감이 적은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을 좀 하긴 했습니다만.. 로어셰크마저 비중이 축소되었다니, 답은 원작만이 내려 줄 듯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패트릭 윌슨은 저도 이번에 처음 인지한 배우인데 어느 잡지에서 잭 스나이더의 인터뷰를 보니 원래 몸매가 굉장히 좋은 배우라고 합니다. 영화를 위해서 살을 찌우고 게다가 접힌 뱃살이 드러나길 바랐다고 하네요.
저는 영화가 좀 지루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힘을 준 것 같아서 버거운 감이 있더라구요. 마지막 부분에서 히어로들이 세계평화에 대한 궤변을 늘어놓을 때는 조금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진실이 드러날 걸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과 은근히 잔인하고 아름다운 액션씬은 인상적이었어요.
캐릭터는 로어셰크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으로 반응하는 그 가면은 잊을 수 없겠네요.^^
영화가 버겁게 느껴진 건 아마도 그 주제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여러 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야기의 틀이 되는 원작 자체가 만만한 작품이 아니라더군요.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을 꼭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저는 뭐 보이는 것에 홀리다 와서 그런지 내용이 버겁다거나 이런 건 많이 못 느꼈던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른 거겠죠^^
가면에 대한 이야기는 참 흥미롭죠. 실제로 '로르샤흐 테스트' 라는 것도 있다고 하고요. 댓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
로르샤크 테스트를 하는 장면은 영화 중에도 나오지요. 무늬들 보고 뭐 떠오르냐고 묻는. 어릴 적 온갖 트라우마들이 떠오르지만 머리좋은 로어셰크은 일부러 다른 대답들을 하죠. 나비랄지 꽃이랄지. 이름도 실은 거기서 온 것이고요. 로어셰크=로르샤크.
그나저나 <리틀 칠드런>이라면... Ein's M&M이라는 사명으로 dvd가 판매된 전적은 남아 있어요. DVD는 알토/태원에서 출시해 준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http://www.yes24.com/Goods/FTGoodsView.aspx?goodsNo=2601443&CategoryNumber=004001025002 한국판 dvd 정보도 나와 있긴 한데 여기서는 품절이군요OTL
저 같은 경우에는 영화 볼 때는 그냥 지나쳤다가 리뷰 작성하고 나서 몇 가지 조사를 하다가 이 테스트의 존재를 알게 됐어요. 알고 나니까 영화 속 말씀하신 내용이 딱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더군요. 정말 초인적인 인내심(?)의 로어셰크 후덜덜덜. 테스트 참 흥미롭더군요.
댓글 감사합니다 :-)
<왓치맨>의 로어셰크도 다시 만나실 수 있어서 더욱 좋으실 거예요. ㅎㅎ
로 깔끔하지 못하네요.,ㅠ.,ㅠ 물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은 아니였지만요.
저도 진사야님처럼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지요 ㅎㅎ
자주 놀러 오겠습니다!! 좋은 한 주 되세요~
하지만 그게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맨해튼의 경우 평범한 인간이 신의 능력을 얻게되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라 볼수가 있는데 그가 왜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가의 정답은 그가 4차원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농담이 아님. 진짜로 4차원)
원작을 보면 맨해튼은 과거, 현재, 미래를 전부 볼수 있고 그곳에 존재할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시간을 뛰어넘는 존재이며 그에게 있어 과거와 미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이기 때문에 간섭을 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못하는 겁니다.
원작에서 그는 자신은 그저 자신을 조종하는 실을 볼수있는 꼭두각시일뿐이라고 설명해주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의 정신은 한낱 인간일 뿐이며 그때문에 점점 혼란을 겪으면서 미쳐가지요. 원작에서는 베트남전 종전 직후의 코메디언의 한마디 덕분에 대오각성. 그이후로 팬티를 벗어던집니다.
자신이 이미 옛저녁에 인간이 아님을 그제서야 고찰하게 된거죠ㅡㅡ;;
알고보면 인간을 초월했음에도 정신은 인간을 초월하지 못한 즉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고독한 존재, 등장인물들중 가장 정신적 문제가 많은 인물이 바로 맨해튼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영화 보는 동안 지루함은 거의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비하면 양호했죠 하하; (벤자민 때는 어찌나 몸이 베베 꼬이던지-_-)
그런데 댄과 로리가 아치 안에서 므흣한 시간을 보낼때의 장면에 대한 얘기가 조금 틀리네요.
절정의 순간(?) 로리가 불 버튼을 눌러서 화염이 발사 되는 것은 맞지만 사람들이
기겁해서 도망가는 장면은 없었어요. 그저 하늘을 보며 '저게 뭥미!?' 이런 표정이었죠.
왜냐면 그 전에 댄이 구름 버튼을 눌러서 아치 주변에 안개를 뿜어 아치가 잘 안보이게 했거든요.
그래서 아치가 불을 뿜는 모습도 뿌옇게~ ^^;